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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봄 Nov 13. 2021

제 삶은 드라마가 아니라서요.

그래서 상처도 받습니다


  발령 4년차에 1학년 담임을 맡았다. 등교 첫날 친구 얼굴을 익히기 위해 자기소개를 했다. 이름과 내가 좋아하는 것 정도만 간단하게 말하기. 첫날이니 일어나서 이름만 말할 수 있어도 훌륭하다. 다들 집에서 연습을 한 번씩 하고 오는지 어려움 없이 자기소개를 마쳤다. 그런데 유독 동원(가명)이만 쑥스러워하며 아무 말 못 하고 자리에 앉아 있었다. 나와 눈을 마주치지는 않았지만 얼굴엔 예쁜 미소를 띠고 있었다.

 "일어나서 친구들한테 이름 말해줄 수 있어요? "

 "......"

 "괜찮아요~ 이름만 말해도 괜찮아요."

 아무리 설득해도 입을 꾹 다물고 앉아 있었다. 경력이 짧은 나에게 1학년 담임은 쉽지 않은 일이다. 뭐든지 조심스러웠다. 더 말을 걸었다가  '으앙~' 울어버릴까 겁이 났다. 내가 반 아이들에게 대신 동원이의 이름을 말해주었다. 하교지도를 하며 키가 작은 동원이의 손을 잡고, 내일은 친구들에게 이름을 직접 말해줄 수 있는지 물었다. 내 말에 대답 없이 미소만 짓는 동원이의 마음을 알 수 없었다.


  운동장에서 두꺼비집 짓기 놀이를 했다. '두껍아, 두껍아, 헌집 줄게 새집 다오'노래 부르며 손 위에 모래를 단단히 쌓아 집을 만들고 손을 슬그머니 뺀다. 단순한 놀이에 아이들은 신기해하고, '까르르 까르르' 거리며 좋아한다.

 "얘들아 이제 그만~. 우리 모여봅시다."

 아이들이 하나 둘 손과 엉덩이를 털고 선생님 앞에 줄을 섰다. 동원이가 말릴 새도 없이 친구들이 만들어 놓은 두꺼비집을 하나씩 발로 밟았다. 아이들은 울상이 되었다. 얼른 달려가 동원이를 붙잡았다.

 "밟으면 친구들이 슬퍼해."

 동원이는 말을 하는 내 눈을 보지 않았고, 대답도 없었다. 하루 종일 동원이의 목소리를 듣기 힘든 날이 많았다. 그러다 어떤 날은 갑자기 소리를 지르며 교실 앞으로 뛰쳐나오기도 했다.


  예전에는 학부모님들이 당번을 정해 급식 배식과 방과 후에 교실 청소를 해주셨다(15년쯤 전이다). 복도에서 배식을 받고 교실로 들어와 밥을 먹었다. 하루는 동원이가 식사를 받아 왔는데 먹지 않고 가만히 앉아 있었다. 수저를 깜빡하고 받아오지 않았다.

"동원아, 밖에 엄마들한테 수저 주세요~ 하고 받아오세요."

 몇 번 말했지만 대답 없이 앉아 있었다. 말로만 하다가는 급식 시간이 끝날 때까지 수저 없이 앉아 있을 것 같아 동원이 손을 잡고 복도로 나갔다.

"자, 동원아 할 얘기 있지?"

"......"

"동원아 수저 주세요.라고 말할 수 있지?"

"......"

 배식 당번 학부모님들도 동원이가 직접 말할 때까지 먼저 수저를 건네지 않고 미소 지으며 기다려 주셨지만 결국 동원이는 스스로 말하지 않았다.


  체험학습을 갔던 날은 동원이가 줄에서 자꾸 빠져나가 혼자 뛰어다녀 내가 손을 계속 잡고 다녀야 했다. 나중에는 도우미로 함께 와주신 학부모님께서 선생님은 다를 애들 챙기시라고, 동원이는 본인이 손 잡고 걸으신다고 데려가셨다.


  답답한 마음에 ADHD에 관한 책을 샀다. 동원이가 보여주던 많은 행동들이 ADHD 증상이라 했다. 하지만 내가 섣불리 동원이를 판단할 수 없었다. 학교에서 이 만큼의 어려움을 보였다면 가정에서도 동원이의 상태를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을 거라 판단했다. 동원이 어머니께 교육청과 연계된 검사 기관을 알려드렸다. 얼마 후 동원이 어머님께서 학교로 찾아오셨다.  


  4교시 수업 중이었고 교실 뒷문 밖에 서계신 동원이 어머니와 눈인사를 주고받았다. 동원이 어머니는 수업시간 내내 복도에 서서 동원이를 지켜보셨다. 종이접기 활동을 하고 있었다. 친구들은 내 설명을 듣고 이미 종이접기를 시작했지만, 동원이는 책상 위에 아무것도 꺼내 놓지 않고 가만히 앉아 있었다. 동원이는 스스로 도움을 요청한 적이 없다. 평소라면 전체 설명 후 당연히 동원이 자리로 가서 서랍에서 색종이를 꺼내 주고 종이 접는 방법을 다시 설명했을 것이다. 그날은 동원이가 다른 친구들과 조금 다른 모습을 보인다는 것을 어머니도 정확히 아셔야 할 것 같아 전체 설명만 하고 동원이에게 따로 설명해주지 않았다. 동원이 옆을 지나며

"동원아 책상 서랍에 있는 색종이 꺼내세요"라고 얘기했지만 동원이는 가만히 앉아 있었다. 그리고는 여기저기서 "선생님! 선생님!"하고 부르는 소리에 정신없이 가서 접어주고, 설명해주고, 또 접어주었다. 수업이 끝났고 동원이는 종이접기를 못하고 집으로 갔다.


  하교 지도를 끝내고 돌아와 보니 동원이 어머니가 교실에서 기다리고 계셨다.

 "안녕하세요, 어머니. 동원이 지켜보셨지요?"

 어머니가 친구들과는 조금 다른 동원이의 행동을 알아보셨으리라 생각했다.

 "선생님 자격이 없네요, 선생님 그만두세요." 

 기대하지 못한 차가운 대답이었다. 동원이 어머니는 정서행동 검사를 권유하는 나의 말을 듣고, 학원 선생님과 먼저 상담하셨다. 학원 선생님은 동원이가 학원에서는 그렇지 않다고, 선생님한테 문제가 있는 것 아닌지 학교에 가서 몰래 한번 지켜보라고 말씀하셨단다. 그 말을 듣고 학교에 와보니 담임 선생님이 동원이한테는 신경 쓰지 않고 다른 학생들만 챙겨주고 있었다는 거다. 말문이 막혔다. 나는 동원이 어머니와 눈인사를 주고받은 후에 일부러 동원이에게 평소보다 관심을 덜 줬던 건데. 어머니는 일을 하며 학교의 급식당번이나, 청소 등의 봉사에 참여하지 못하셨고 그래서 평소에 내가 동원이를 미워해 차별대우를 한다고 생각하셨다.


  동원이 어머니께서 오해하실 수 있는 상황이었다. 교사로서 동원이 어머니의 오해를 풀어드리고 동원이에 대해 상담을 해야 했다. 그런데 선생님 자격이 없다는 동원이 어머니의 말에 몸도 마음도 얼음이 됐다.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수업 때 지켜보셨던 상황에 대해 어른처럼 설명해야 하는데, 바보 같은 눈물만 줄줄 흘렀다. 동원이 어머니의 큰 소리에 복도에서 청소를 하고 계셨던 학부모님이 들어오셨다. 그런 게 아니라고, 담임 선생님이 평소에 동원이를 얼마나 챙기는지 아시느냐고, 급식시간, 체험학습, 하교 시간마다 다른 학생보다 동원이를 더 많이 챙기신다고, 어머니께서 오해하시는 거라고 말씀해 주셨다. 큰소리가 오고 갔다. 바보 같은 담임은 옆에서 울고 있었다. 자칫하면 학부모 싸움이 될 수도 있던 상황에 옆 교실 부장님께서 출동하셨고 함께 교무실로 갔다.


 부장님과 동원이 어머니, 나, 교감선생님 4명이 교무실에 마주 앉았다. 자초지종을 전해 들으신 교감선생님께서 동원이 어머니께 물으셨다.

 "어머님, 혹시 검사는 받아 보셨나요?"

 "아니요."

 "학교에서는 집에서와 다른 아이들의 행동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담임 선생님께서 그동안 지켜보시고 권유하셨으니 검사를 한 번 받아보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동원이 어머니는 교감선생님 말에 수긍하셨고 집으로 돌아가셨다.


  얼마 후 동원이 어머니가 다시 학교로 찾아오셨다. 동원이가 검사 결과 ADHD 판정을 받았다고 하셨다. 죄송하다는 사과의 말씀도 하셨다.

 "전 괜찮습니다(괜찮지 않습니다. 마음이 많이 아팠고, 자고 일어나면 동원이 어머니의 '자격 없네요. 그만두세요'라는 말이 제일 먼저 생각납니다. 며칠을 울었습니다. 교사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다짐했던 시간들이 다 부정당하는 느낌이었습니다. 정말 큰 상처를 주셨습니다.). 동원이를 어떻게 도와야 할까요? 저도 알아보겠지만 혹시 병원에서 알려주시는 방법이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학교에서도 최선을 다겠습니다."

 마음의 말은 (   ) 안에만 담아두었다. 난 동원이의 선생님이니 떠오르는 생각을 다 말할 수는 없다. 동원이의 검사 결과를 듣고 어머니의 마음이 얼마나 힘드셨을지, 사실 그것까지 생각할 수 없었지만, 이번에는 어른처럼, 담임 선생님처럼 말했다.  






  지인의 추천으로 '나의 아저씨'라는 드라마를 보기 시작했다. 부서 회식에서 자리에 없는 부장님(이선균)을 욕하는 대리의 뺨을 때린 직원(아이유)이 있었다. 부장님(이선균)이 그 얘기를 전해 듣고 뺨을 때린 직원(아이유)에게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묻는다.

 "김대리 왜 때렸어, 뭐라고 했길래 때렸어. 아니 어디 겁 없이 사람 뺨을 때려. 뺨 때리고 뺨 맞고 그런 거 드라마에서나 하는 일이야. 일반 사람들이 평생 살면서 한 번이나 있는 일인 줄 알아?" 드라마에만 나와야 하는 행동이다.

 

  "이럴 거면 당장 회사 때려치워!"라며 서류 뭉치를 던진다. 그러면 주인공은 슬픈 얼굴로 서류를 주섬주섬 추린다. 퇴근 후 술에 잔뜩 취해

 "내가 그놈 가만두지 않겠어!"라며 복수의 서막이 시작된다. 드라마에만 나와야 하는 대사다. 내 삶은 드라마가 아니라서 현실에 등장한 아픈 대사를 어떻게 잊어야 할지 알 수 없다.


  그 일 이후 나는 ADHD 검사를 먼저 권유하지 않는다. 굳이 조금 다른 아이들의 행동에 무슨무슨 장애라고 이름 붙이고 구분지어야 하는 걸까 싶기도 하고, 동원이 어머니 같은 반응이 두렵기도 하다. 간혹 먼저 묻는 학보모님도 계신다.

 "저희 아이, 검사를 한번 받아봐야 할까요?"

 평소에 집중하는 걸 많이 어려워하고, 친구들에게 방해되는 행동을 자주 해서 의심되는 경우라도 선뜻

 "네 해보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라고 말하지 못한다.

 "어머니께서 걱정되시고 원하신다면 해보셔도 될 것 같습니다."라고 말씀드린다. 말의 작은 차이. 그것으로 검사를 권유하는 듯 아닌듯한 뉘앙스를 만든다. 보호색 뒤에 살짝 숨어 비겁한 선생님이 된다. 그렇게 말씀드려도 상담이 끝나고 나면

 "담임이 뭘 안다고 검사를 하라 그래?"라는 학부모님의 말이 돌고 돌아 다시 내 귀에 들어오기도 한다. 담임이 보는 모습은 학교에서 생활하는 아이의 일부분일 뿐이다. 내가 뭘 안다고 자신 있게 말 수 없고, 그래서 난 또 뒤로 물러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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