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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봄 Jan 04. 2022

Handmade 큰 글자 브런치 북

엄마를 위한 방구석 출판

  브런치에서 글을 쓰기 시작한 지 3개월이 되어간다. 브런치 작가로 선정됐다는 소식을 엄마에게 전하고 싶었는데 '브런치'라는 것을 설명하기가 어려웠다. 컴퓨터? 모르신다. 핸드폰? 통화할 때만 사용하신다.  


  올해 7학년 3반이 되신 엄마에게 브런치 설명하기!


"엄마, 다음이라는 포털사이트가 있거든?"


 다음을 모르신다.


"그건 네이버랑 비슷한 건데..."


 아, 네이버를 모르신다. 설명의 'ㅅ'도 시작하지 못하고 난관에 부딪쳤다. 차 떼고, 포 떼고 그냥 인터넷에 내 글을 써서 올리기 시작했다고 말씀드리기엔 뭔가 조금 서운하다. 20년 차 초등학교 교사가 이 정도밖에 설명을 못하다니 우리 아이들 교육을 우짜노. 디지털에 익숙하신 외숙모는 알아들으셨다. 다행이다. 교육의 앞날이 조금은 밝아졌다. 보내드린 브런치 링크를 확인하신 외숙모가 깜짝 놀라며 축하해주셨다. 엄마는 외숙모의 리액션을 보시고 딸내미가 뭔가 좋아 보이는 것을 한다고 대충 짐작하셨다.


  한 번은 어떻게 하면 내가 쓴 글을 읽을 수 있는지 물으셨다. 휴대폰 글자 폰트를 최대로 해 놓고도 돋보기를 껴야 겨우 연락처를 찾아 전화를 거실 수 있는 엄마가 어떻게 코딱지만 한 브런치 글씨를 읽으실 수 있겠는가?


"엄마, 글씨가 너무 작아서 보기 힘들어~"


  직접 읽어 드릴 수도 있었겠지만 브런치 북 <육지 왕 살암수다>의 글은 돌아가신 아빠와 제주도에 혼자 계시는 엄마, 제주도 집에 관한 이야기다. 당사자인 엄마와 나는 눈물 없이 읽을 수도, 들을 수도 없는 이야기다. 인정머리 없는 딸내미라고 서운해하셨을까?


  며칠 후 받을 갑상선 수술 때문에 서울 동생네 집에 올라오신 엄마가 또 내 글을 읽고 싶어 하셨다. 지난번에 글씨가 작아 엄마는 못 읽는다고 말씀드린 게 죄송해 이번에 오시면 읽어드려야지 했는데... 역시 엄마 앞에서는 안 되겠다. 끝까지 못 읽고 눈물 흘릴 것이 뻔하다.


  엄마는 눈이 안 좋아 못 읽고, 나는 슬퍼서 못 읽는 글을 모아서 큰 글자 브런치 북을 만들었다. 제목은 16포인트 진하게, 본문은 14포인트. 11편의 글을 묶어 총 41페이지에 달하는 얼렁뚱땅 큰 글자 브런치 북이 탄생했다.



얼렁뚱땅 큰 글자 브런치북 by 봄봄


  막상 큰 글자 브런치 북을 받으신 엄마의 반응은 심드렁. 너무 대충이었나? 나름 하트도 넣어 표지까지 만들었는데. 제주도 집에 가시면 읽어보시겠다고 쿨하게 캐리어에 넣으신다. 심지어 티브이가 재미없을 때 읽어보신다며. 그럴 때가 있긴 있지요. 아주 가끔.


  한 꼭지 정도 읽어보시고 살짝 눈물을 감추며 "우리딸, 잘 썼네." 혹은 "재밌네." 정도를 기대했는데, 에잉 나이를 여러 살 먹었는데도 칭찬이 이렇게나 고프다. 하긴 슬픈 드라마를 보면서 한 번도 울어본 적 없는(옆에서 아빠랑 나는 울고 있다.) 쿨내 나는 우리 엄마가 내 글을 읽고 싶다 말씀하신 정도면 엄청난 애정표현이다.


  앞에서는 쿨한 모습이지만, 제주도 내려가셔서는 <얼렁뚱땅 책> 들고 돌아다니시면서 우리 딸이 책 썼다고 동네방네 자랑하실지도 모르겠다. 설마스럽지만 심히 걱정되는 바이다. 제발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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