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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봄 Jan 24. 2022

올해 설엔 친정에 간다.

조금 신났습니다.

  결혼 후 15년 동안 명절이 되면 거르지 않고 시댁에 갔다. 당연한 이야기인가? 결혼 후 15년 동안 명절 때 친정에 가지 못할 때가 더 많았다. 이것 또한 이상할 것 없는 이야기인가? 시댁은 차로 30분이면 갈 수 있는 곳이고, 친정은 겁나 먼 제주도다. 만약 반대로 친정은 차로 30분, 시댁이 겁나 먼 제주도라면? 그때는 어떤 이야기가 당연하게 느껴질까?  


  명절에 제주도를 다녀 오는 것은 평소보다 훨씬 비싼 비행기를 타고 내려가서, 쥐똥만큼 남은 연휴를 잠깐 보내고 바로 올라와야 한다는 말이다. 결혼 초에는 명절에 꼬박꼬박 제주도에 다녀왔다. ‘시댁을 갔으면 친정도 당연히 가야지’라는 사명감 같은 걸 안고.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나도, 남편도 조금씩 달라졌다.

“비행기 표 예약했어.” -> “비행기 표 예약할까?” -> “......”

이젠 내가 먼저 가자고 말하지 않으면, 안 가도 괜찮은 곳이 되어버렸다. 부모님은 서운하셨겠지만

“복잡헌디 명절에 오지 마랑, 나중에 봄방학 허민 왔당 가라(복잡한 명절에 오지 말고, 나중에 봄방학 하면 왔다 가라)”고 말씀하셨다. 가성비만 따진다면 그쪽이 훨씬 낫다.




  이번 설은 꼭 제주도에서 보내고 싶었다. 폭탄선언... 은 아니고 양해를 구하러 시댁에 갔다.

     

상상 #1.

“어머니, 이번 설은 제주도에서 지내고 올게요.”

“뭬~야~!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절대 안 된다. 세상에 그럴 수는 없다.”     


상상 #2.

“어머니, 이번 설은 제주도에서 지내고 올게요."

“그래. 그래야지. 잘 다녀와라”    

 

대형마트가 손질해준 해물탕 재료와 꼬막무침, 생새우를 들고 가는 길에 막장 드라마와 휴먼 감동 드라마를 번갈아 찍었다. 아, 모르겠다. 어떤 반응이실지.     

 



  실제 장면. 식탁

“어머니, 이번 설은 제주도에서 지내고 올게요.”

“그래. 엄마 수술은 잘 되셨고? 힘들게 뭐 요리하지 말고 차례상 음식도 간단하게 사다가 올리고 그래. 우리는 차례 지내는 것도 아니니, 너 제주도 다녀오면 그때 맛있는 거 해 먹자.”

며느리, 눈에서 뜨거운 물이 흘러내린다. 옆에 놓인 키친타월(행주가 아니라 다행)로 눈물을 훔친다.      


아버님께서는 잘 다녀오라고 세뱃돈을 미리 주셨다. 아싸라비아 콜롬비아~!




  엄마가 갑상선 수술로 제주도 집을 비우고 서울로 오신지 한 달이 되어간다. 온기 없는 집에 엄마 홀로 들어서지 않아도 되니 다행이고, 엄마가 회복하시는데 가까이에서 힘과 잔소리가 될 수 있어서 다행이다. 덤으로 난 이번 설에 제주도에서 띵가띵가. 완전 땡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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