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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봄 May 06. 2022

평화로운 1학년 국어 수업

가족의 이름을 써 봅시다.

국어활동 교과서 활용 수업 중이었다(수학-수학 익힘, 과학-실험관찰처럼 국어활동은 국어 교과서와 짝꿍이다.). 아버지, 어머니, 나.’ 글자를 따라 쓰고, 가족의 이름을 쓰는 활동이다.



실물화상기에 내 교과서를 비추며 시범을 보였다. '아버지'라는 글자를 따라 쓰고 나서, 아버지의 이름을 써야 하는 칸에서 잠시 머뭇거렸다. 돌아가신 아빠의 이름을 써야 하기 때문이다. "이곳에는 여러분의 아버지 이름을 쓰세요"라고 말로만 설명하고 빈칸으로 둔다면, 그걸 보고 선생님처럼 빈칸으로 그냥 제출할 착한 어린이들이 있을 테고, 검사하다 배꼽과 뒷목을 동시에 잡을 수 있다. '아빠 이름을 마지막으로 써 본 게 언제였지?' 마음을 가다듬고 아빠 이름을 천천히, 정성껏 쓰며 속으로 따라 읽어본다.


선생님과 똑같이 따라 쓰지 말고 자기 부모님 이름을 쓰세요.


돌아가신 아빠가 생각나 눈물이 쏟아져 버릴 것 같았다. 어디서든 갑자기 찾아오는 눈물은 막을 수 없지만, 이곳은 야생의 1학년 교실. 잠시 숨 고를 틈도 없이 어린이 4명이 앞으로 나왔다.


“선생님, 우리 아빠 이름이 뭐예요?”

"선생님, 저는 아빠 이름 모르는데요?"

"저희 아빠 이름도 알려주세요"

"저도요~ "


'느그 아부지 이름을 와 내한테 묻노?' 어린이들의 해맑은 표정과 허를 찌르는 질문에 눈물 조금과 웃음이 동시에 나온다. 어린이들이 이렇게 나오신다면, 나도 다 방법이 있지.


<1학년 담임으로 야생에서 살아남기>

챕터 1. 학생생활지도자료를 적절히 활용하라! 


학생생활지도자료는 학기초 깔려 허우적대던 수많은 가통 회신문 중 가장 중요한 자료 되시겠다. 학생에 대한 중요한 정보가 가득하다. 최첨단 보안시스템을 뚫고(그런 건... 없..어요) 서랍에서 종이 파일을 꺼내 아이들은 모른다는 아빠 이름을 찾아 불러주었다.


“아~. 맞다”


'우리 선생님은 모르는 게 없는 척척박사님이야~(척척박사님은 다소 라떼인가?)'하는 존경의 눈길을 온몸으로 받는다. 도움을 청하는 어린이는 여학생, 남학생이 섞여 있었지만, 신기하게도 모두 아빠 이름을 묻는다. 8살은 아직 아빠와 서로를 알아가는 단계인가? 아빠와 아이들이 조금 더 친해지길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지만, 사실 나도 아빠와 그리 친한 사이는 아니었던 것 같다.


어린이들 하교 후 교과서 검사를 했다. 아이고, 두야~. 출처를 알 수 없는 참신한 이름을 자신 있게 써낸 어린이가 있다. 양쪽 부모님 모두, 성도 이름도 내가 가진 자료와 완벽하게 다르다. 이름도 몰라요~ 성도 몰라~ 그분들은 뉴규? 태권도 학원 관장님? 영어학원 원장님? 나를 혼란에 빠트린 교과서 주인도 자신이 써낸 이름의 정체를 모르겠다 했으니, 엉덩이 탐정(접니다.)은 밝혀낼 수 없는 미제사건으로 막을 내렸다. 끝날 때까지 끝나지 않는 1학년 교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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