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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봄 May 02. 2022

젊은 개와 딸을 키워요.

그러니 엄마가 참아요.

  퇴근 후 강아지와 산책을 했다. 꽃잎이 바람을 타고 날아다닌다. 꽃잎을 쫓아 이리 뛰고 저리 뛰는 우리 댕댕이 하루. 젊은 개다. 하루에게 전력 질주로 끌려다녔더니 그렇지 않아도 저질인 체력이 완전 바닥났다. 산책을 마치고 초저녁부터 정신없이 곯아떨어졌다.

제가 날아다니는 사진은 집사가 못 찍어요.

  

  아이가 학원 갔다 돌아오는 도어록 소리가 어렴풋이 들리지만 몸을 일으킬 수 없다. 아이가 침대 옆으로 오더니 묻는다.


"엄마, 우리나라 영공, 영해, 영토에는 뭐가 있다고 했지?"


전날 아이와 사회 단원 평가를 준비하며 풀었던 문제다. 우리나라 영역에 다른 나라가 함부로 침입할 수 없는 이유를 묻는 문제였다. 우리나라의 영역에는 우리 주권이 미치기 때문에 다른 나라가 함부로 들어올 수 없다. 다른 나라 비행기나 배가 우리나라에 들어오려면 허가를 받아야 한다... 고 교과서에 쓰여있다. 잠결에도 내가 아는 문제라 다행이란 생각이 스친다.


"... 주권..."


"선생님들은 어린이들 관리하는 것도 힘들 텐데, 어떻게 이 많은 지식을 알고 있는 거야? 그런 사람이 우리 엄마라서 자랑스러워."


평소에 이런 표현을 하는 아이가 아니다. 더구나 사춘기에 막 접어드신 아이의 입에서 나올 거라 믿을 수 없는 스윗한 말이다. 자면서 입에서인지 머릿속에서인지 모르겠는 미소가 지어진다. 



   다음날 아침 남편과 식탁에 마주 앉아 어제 아이에게 칭찬을 받았다고 신나게 자랑하는데, 아이가 막 잠에서 깨서 부엌으로 나왔다.


"어제 엄마한테 자랑스럽다고 말해줘서 너무 좋았어~"


억지로 눈떠야 하는 이른 아침, 짜증 가득한 아이. 어제 초저녁 예쁜 갬성의 그 아이가 아니다. 말이 없다. 아이의 대답은 잔뜩 찌푸린 표정이다. 음, 말 안 해도 느낌 아니까~. 이것으로 커뮤니케이션 종료! 남편과 마주 앉은 식탁도 급 썰렁해졌다. 


  전력 질주하다 뚝 멈춰 서버린다. UFO처럼 순식간에 90도로 방향을 전환해 사라져 버린다. 호르몬이 미쳐 날뛰는 사춘기 아이가 되어간다. 끌려다니다 체력 바닥나는 엄마가 또 등장했다. 



  10대 사춘기 아이들이 엄마의 말을 듣지 않는 이유가 밝혀졌다는 기사를 읽었다. 나를 위한 기사다. 그 시기가 되면 아이들의 뇌가 엄마의 목소리보다 낯선 이의 목소리에 더 큰 반응을 한다는 것이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세상과 소통하고 가족 밖에서 사회적으로 능숙해질 수 있도록 뇌가 이에 맞춰 적응한다는 뜻이다. (나를 위해) 연구를 해주신 스탠퍼드 의대 다니엘 에이브람스 교수는 "부모들이 10대 자녀와 의사소통이 제대로 안돼 좌절감을 느낄 수 있지만, 충분한 이유가 있는 것"이라며 심지어 "용기를 내라"고까지 했단다. 멀리 캘리포니아에서 보내주는 응원에 힘입어 용기를 내겠습니다. 교수님! 우리 아이는 지금 내 말을 듣지 않는 게 아니라 세상의 말을 열심히 듣느라 바쁜 거라 믿고 말없이(어차피 아이는 못 들을 테니) 기다려보겠습니다. 필승!



  요즘 우리 반 1학년 어린이들을 보면 내 아이의 1학년 때가 종종 떠오른다. 커다란 민들레를 보고 깜짝 놀라는 척하며 사진을 찍어 달라던 귀여운 핑크 어린이였다. 그때도 나름대로 힘든 일이 있었겠지만 사진을 보면 마냥 예쁘고 행복한 기억만 떠오른다. 이 사진 보며 다시 용기를 낸다. 그리고 세상으로 나가려 용쓰는 우리 아이를 응원한다. 조금 부드럽게 나가주었으면 하는 소망을 살짝 얹어서. 


제가 이렇게 귀여울 때도 있었잖아요. 그러니 엄마가 참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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