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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봄 Jul 26. 2022

나의 방을 갖기로 했다.

...고 선언하기


 오랜만에 글쓰기 모임의 오프라인 만남을 가졌다. '자기만의 방'에서 책을 읽고, 글을 쓴다는 동무님이 부러웠다. 부러우면 따라 '하면 된다'. 만남에서 돌아와 남편에게 툭 한마디 해봤다.

"끝 방 내가 써도 돼?"
"그래라"

어, 이 싸람 봐라. 고민도 없이 대답이 너무 쉽다. 내가 거기에 뭘 만들 줄 알고. 나중에 후회해도 소용없다.

  끝 방으로 말할 것 같으면...


2015년 2월 이사 온 첫날부터 정체성을 찾지 못해 아직까지 버퍼링 중이다. 그 공간의 이름은 영혼도 느낌도 없는 '끝 방'이다('안방'에서는 영혼이 느껴지나? 그리 묻는다면 할 말 없네.). 조그만 방에 스타일러, 책꽂이, 안마 의자, 아이의 장난감 수납장, 5단 서랍장, 그 옛날 시집올 때 들고 온 오래된 티브이까지 자기주장 강한 아이들이 테트리스처럼 들어찼다. 라면 박스와 쌀 포대, 대용량 두루마리 휴지도 빼꼼.

  나의 계획은...


1. 아이의 장난감: 싹 버린다. 5학년이니 토이 스토리와 이제 안녕할 나이가 되지 않았나 싶지만, 나 중학생 된다고 부모님이 말도 없이 인형을 싹 버려서 눈물짓던 기억이 있다. 아이에게 물어보고 '꼭' 버린다.


2. 재활용 센터에서도 안 가져가는 골동품 티브이: 버린다. 남편은 옳다구나 거실에 스마트 티브이를 사놓겠다 했지만 노노! 택도 없다.


3. 책꽂이: 내가 구상하는 방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지만 아끼는 책을 가까이 두고 싶으니 버리지 않겠다. 안 읽는 책만 정리한다. 발해고, 성학집요. 왜 샀는지는 알 수 없다. 까만 건 글자고 하얀 건 종이려나. 알라딘이 허락한다면 감사히 처분한다. 나중에 혹시 아주 혹시라도 읽고 싶어지면 도서관에서 빌려 읽으련다.


4. 덩치 큰 안마 의자: 누가 버린다는 걸 이전 설치비 20만 원을 내고 주워왔다. 아파트 옆 동으로 옮겨 주고 다시 설치해주는 게 20만 원이라니 안마 의자의 세계란 알 수 없다. 독서와 글쓰기에 지쳐본 적 없지만 앞으로 그렇게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으므로, 버라이어티한 코스로 뭉친 어깨를 풀어줄 안마의자는 기꺼이 함께 하기로 한다.


5. 겨울 옷이 들어 찬 5단 서랍장: 에라 모르겠다. 고민하는 것도 귀찮다. 비운다. 비운다~. 정리엔 이게 와따야아~

  빈 공간과 질서를 되찾은 방. (이제부터 러브 하우스 BGM 큐! 따라 라랏따~) 내추럴한 원목 책상과 의자, 편안한 무드의 스탠드, 귀여운 핑크색 러그, 필사 공책 위로 쏟아지는 햇살. 나의 글방 완성. 그리고 관계자 외 출입금지! '오늘의 집'도 울고 갈 머릿속 집들이가 끝났다.

  이 모든 것은 방 문 한번 열어보지 않고 한 생각이다. 대단하다. 실사도 없이 세운 완벽한 계획에 요 며칠 마음이 설렌다. 순진한 상상과 달리 끝 방의 문을 열어 현실을 마주한 순간 조용히 다시 닫게 될 수 있다. 남편은 내가 곧 포기할 걸 알고 고민 없는 빠른 대답을 했는지 모른다.

<참혹한 현실 앞에서 포기하지 않고 내 방을 갖는 방법>


1. 무작정 책상, 스탠드, 러그부터 주문한다. 새 책상을 넣으려면 방에 있는 무언가를 밖으로 내보내야 한다. 새 책상이 휘몰이 장단으로 몰아치면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뭔가는 될 거다. 미루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내 방을 갖는 확실한 방법인 것 같지만 불도저 같은 추진력은 나와 어울리지 않는다. 감당 못할 스트레스로 끙끙 앓아누울 수 있다. 여름 방학 중에 끝내는 것을 목표로 하나씩 버리고 비우는 것부터 시작하자. 일단 내일 아침 끝 방 문부터 열자. 생각은 오늘까지 만이다.

2. 사람들에게 내 방을 만들 거라 선언한다. 난 목표를 주변에 말하는 게 두렵다. 목표 달성에 실패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다. 잘 될지 어쩔지 모르는 일을 미리 말하면 허풍 많은 사람으로 보일 것만 같다. 목표를 말하지 않으면 아무도 모르게 포기하기도 편하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 해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인생을 살았거나, 포기가 난무한 삶을 살아오진 않았다. 피 튀기며 목표를 향해 전력질주하는 사람들이 본다면 안일해 보이겠지만, 난 뭐 그럭저럭 만족하며 잘 살아왔다(안티 자기 계발서. com). 이번엔 내 방을 만들겠다고 선언씩이나 하며 안전한 길에서 벗어나 위험한 도박에 배팅한다. 나중에 어렵다고 포기하게 되면 쪽팔려서 어쩌려고?


그것까지 대비하자.


시나리오 1.
여름 방학 동안 방을 완성한다고 했으니,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여름 방학은 온다고 말한다.


시나리오 2.
내 방 만들기에 실패해 쪽팔린 마음을 글로 쓴다. 브런치 글감을 위해서다. 힘들고 귀찮아서 포기한 게 아니라고 한다.

  이 정도면 완벽하다. 이제 시작만(?) 남았다. 


창작은 고독을 요한다. 방해 없는 집중을. 그것이 열망하는 확실성에 이를 때까지, 반드시 즉각 얻어지는 것은 아닌 그 상태에 도달할 때까지 지켜보는 눈 없이 홀로 날아다닐 수 있는 하늘을. 그리고 프라이버시와 따로 떨어진 장소- 서성이고, 연필을 질겅질겅 씹고, 휘갈겨 쓰고 지우고 다시 휘갈겨 쓸 장소를.

- 《긴 호흡》. 메리 올리버.



  마치 누가 방해해서 글을 못 쓰는 사람처럼. 휘갈겨 쓰고 지우고 다시 휘갈겨 쓸 장소가 생긴다면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처럼. 글을 읽고 쓰고픈 생각이 폴폴 나게 해 줄 뭔가가 필요한 때다. 지푸라기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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