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작년 1월 갑상선암 수술을 받으셨다. 남아있는 암세포를 제거하기 위해서 그해 6월, 1차 방사성요오드 치료를 받았다. 오늘은 2차 치료를 받고 병원에서 퇴원하셨다. 그 길로 근처 요양병원에 들어가신다. 봄방학이라 내가 요양병원까지 같이 갈 수 있다. 입원했던 날보다 얼굴이 많이 부은 모습이다.
"아~ 어제 잠을 3시간배끼 못 잤쪄게"
"무사? 방사선 수치 안 떨어질까봐?"
"불타는 트로트에 영웅이가 노래 완전 잘 불러라게. 그거 보당보난 잠이 안 왕."
귀여운 엄마의 말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엄마를 잠 못 들 게 한 범인이 불안, 걱정 같은 녀석이 아니라 황영웅의 노래라 안심이다.
"엄마, 요양병원에서는 불타는 트로트 그거 보지마랑 푹 잡써예."
일주일간 계실 요양병원 입소 절차를 마치고 돌아서는 나에게 한마디 하신다.
"너 글 쓴 거 가졍 올껄"
앗! 안된다. 그건 요양병원 금지 도서다.
지난 6월 남동생에게 전화가 왔다.
"누나, 엄마한테 전화드려봐. 누나가 쓴 글 읽으셨나 봐."
1차 방사선 치료 후 입원했던 요양병원에서 엄마가 우셨다.
내가 쓴 글이라면? 핸드메이드 '큰 글자 브런치북'이다. 브런치에 발행했던 글 중에 엄마와 돌아가신 아빠, 제주도에 관한 이야기만 모아 인쇄해 드렸던. 엄마는 텔레비전 재미없을 때 읽으신다고 가방에 넣어 두셨다. 내내 별말씀이 없어 냄비 받침으로 쓰시나 했다.
몸도 마음도 힘든 시기에 그 글을 읽으셨다니. 엄마 몸에 남은 방사성 물질이 눈물로 배출되었을 테니 요양병원이야말로 브런치북 읽기에 적합한 장소인지도. 어쨌든 이번에는 엄마를 눈물짓게 할 책이 없어 다행이다.
집에 돌아와 엄마가 앉아 계셨던 차 뒷좌석을 닦았다. 보이지 않고, 냄새도 없는 방사성 물질이 혹시 내 몸에도 묻었을지 모른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싹 씻어냈다. 엄마를 만날 때 입었던 옷도 모두 세탁기에 넣었다. 어제 만들어 놓은 소시지야채볶음을 전자레인지에 돌려 늦은 점심을 먹었다.
식탁 위에 핸드폰을 세워 놓고 불타는 트로트를 검색했다. '불타는 트롯맨'이었구나. 황영웅의 동영상이 제일 먼저 보인다.
<영원한 내 사랑>
날 알아보지 못해도 날 기억하지 못해도
당신만 곁에 있으면 난 행복해요 좋아요
젊어서 고생시키고 속 썩인 내가 미워서
당신이 나를 잊은 거 같아 눈물이 납니다
여보 미안해요 여보 고마워요
이 세상 저 세상까지 당신과 함께 하겠소
걱정하지 말아요 영원한 내 사랑
돌아가신 아빠가 떠올랐다. 소시지야채볶음 위로 눈물이 떨어진다. 어젯밤 엄마가 잠을 설친 이유를 이제서야 알았다.
https://tv.naver.com/v/333523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