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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봄 Sep 04. 2022

여름은 갔지만

추억은 아직 그곳에 남아 

  양념 반, 프라이드 반 말고, 난 제주 반, 육지 반이다. 제주에서 나고 자랐고, 서울의 한 초등학교에 발령을 받으며 고향에서 벗어났다. 젊고 서툰 열정에 사로잡혔던 시절 나는 작은 섬과 투박한 사투리, 미깡 농사에 까맣게 그을린 부모님에게서 탈출하고 싶었다. 제주에서 살아온 시간만큼 제주가 아닌 곳에서 살아왔다. 제주 태생이라는 정체성을 가끔 잊고 살기도 한다. 앞만 보며 걷는 나의 뒤통수를 잡아끌어 제주의 파도 앞에 데려다 놓는 것이 있다. 즙이 줄줄 흐르는 한여름의 복숭아와 수박의 향이다.     


  아빠는 동네 절친(‘삼춘’이라 부른다)들과 계모임을 했다. 삼춘들의 아이들도 서로 나이대가 비슷해서 모임이 있는 날이면 어른들만큼 잘 어울려 놀았다. 계모임에서 매년 여름 공세미 바당(공천포 바다)으로 해수욕을 갔다. 1년에 딱 한 번, 공세미 바당에 큰 천막을 치고 또래 아이들과 물놀이를 하고, 수박, 복숭아, 삶은 닭 등 맛있는 음식을 실컷 먹을 수 있는 잔치 같은 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우리 집은 초등 2학년이 되면 바당에 가기 위해 꼭 통과해야 하는 관문이 있었다. 바로 구구단 외우기. 이걸 합격해야 비로소 바당으로 가는 경운기 탑승 티켓을 쥘 수 있었다.

     

  1월생인 나는 7살에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이르게 입학한 아이라고 모두 같진 않겠지만 난 수학을 못 해서 방과 후에도 나머지 공부를 해야 하는 날이 많은 아이였다. 보충 공부를 마치고 어깨 끝을 허리까지 늘어트린 채 터덜터덜 모래 먼지를 날리며 가로지르던 조용한 운동장이 가끔 떠오른다. 

    

  첫 발령을 받은 초등학교에서 함께 청소년 단체(RCY)를 지도했던 후배 선생님 역시 빠른 생일이었다. 후배는 초등학교 때 구구단을 5번 써오라는 숙제가 있어 ‘구구단, 구구단, 구구단, 구구단, 구구단’이라고 5번 써갔다고 했다. 강속구처럼 한 방에 숙제를 끝낼 수 있는 방법이다. 흑역사는 나한테만 있는 게 아니다. 

    

  학업에 부진했던 나에게 2학년 여름방학 시작과 동시에 외인구단도 아니고 공포의 구구단을 9단까지 외우는 건 쉽지 않은 미션이었다. 외우고, 외우고, 또 외웠지만 바당에 가기 전날까지도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했다. 테스트 담당은 8살 많은 첫째 언니였다. 바당에 가는 날 아침, 다른 식구들은 모두 집 앞 올레에 세워둔 경운기에 탑승했다. 짐도 다 실었고, 시동도 걸었다. 털털거리는 경운기 소리에 마음이 더 조급했다. 나와 첫째 언니만 집 안에 남아 틀리지 않을 때까지 구구단을 외웠고, 테스트를 겨우 통과해 출발 직전 경운기에 아슬아슬하게 탑승했다. 언니도 빨리 바당에 가고 싶은 마음에 대충 눈감아 준 것 같다. 오라이~     

  

  얼마 전 첫째 언니가 기억 속에 있는 ‘구구단 사건’의 주인공이 동생 3명 중 누군지 모르겠다고 해서 35년 만에 당당하게 그 정체를 밝혔다. 덕분에 언니의 미제 사건 하나가 시원하게 해결되었다.     

  

  구구단도 못 외워 버벅대던 아이가 자라서 초등 교사가 되었으니, 수행평가지에 비가 쏟아지는 내 아이도 커서 뭐가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겠지.     


  공세미 바당에 도착하면 아이들은 ‘다다다다’ 파도로 뛰어든다. 어른들은 천막을 치고, 돗자리를 깔고, 각자 챙겨 온 간식을 펼쳐 그들의 시간을 보낸다.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놀고 있으면 어른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왕 이거 먹엉 놀라.(와서 이거 먹고 놀아라.)


  바당물이 뚝뚝 떨어지는, 쪼글쪼글해진 고사리 손을 젖은 수영복에 대충 문지르고 수박과 복숭아를 집는다. 곧 바당으로 다시 들어가야 하니 돗자리 끝에 엉거주춤 서서 파도를 등지고 까만 미소를 지으며 베어 문다. 축축한 손과 수영복이 수박, 복숭아 즙과 함께 범벅된다. 찝찝했지만, 뒤돌아 파도로 뛰어들면 곧 씻겨나갈 괜찮은 것들이었다. 등 뒤에서 울리는 파도 소리는 든든했다.     

  

  매년 수박과 복숭아 향은 웜홀이 되어 나를 검은 돌이 깔린 공세미 바당의 파도 앞으로 데려간다. 긴 시간을 돌아온 나를 다시 공세미 바당 앞에 세워, 그 시절의 파도와 마주하게 한다. 돌아가신 아빠도 기억 속 공세미 바당에서는 우리를 보며 미소 짓는다. 파도보다 더 커 보이는 삼춘들은 젊고 너그러우며, 아이들은 몽돌처럼 소리 내어 웃는다. 고향의 파도 앞에선 솔직해져 본다. 떠나왔지만 싫었던 모든 것이 이제 너무 그립다고. 

“다 잊어부런다? 무사 영 아니오람시니?(다 잊었니? 왜 이렇게 안 찾아오니?)” 

서운해하지 않고

“속았쪄.(애썼다)

가만가만 토닥여 줄 완벽한 내 편이 그곳에서 파도친다.





* 공천포 사진 출처: (자칭)공천포 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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