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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봄 Jul 27. 2023

푸더져도(넘어져도) 일단 일어나

다시 교실로



우당탕!

아이스링크가 순간 고요해졌다. 사방의 시간이 멈춘 것 같다. 1초, 2초. 내 앞에 흩어진 정신머리를 수습한다. 그리고 일어나…야 하지만 안된다. 코너에서 오른발을 넘겨 크로스를 하고 왼발이 제자리로 돌아오는 과정에서 오른발 스케이트 날 뒷부분과 왼발 스케이트 날 앞부분이 부딪치며 넘어졌다.  


아이스링크에서 다치지 않게 넘어지고, 무릎을 먼저 세워 스스로 일어나는 방법을 배웠다. 강사님들은 아이스링크에서 넘어진 수강생을 잘 일으켜주지 않으신다.(좀 귀찮아서 일수도…) 넘어지고 일어나는 것도 배움의 과정이다.


이번엔 혼자서 일어나기 힘들 거라는 강사님의 빠른 판단. 강사님이 손을 내밀었다. 정신머리 수습이 끝나지 않아 헤롱거리는 와중에 눈앞에 있는 손을 붙잡고 링크장 밖으로 나갔다(쫓겨났다). 벤치에 앉아 무릎을 살살 문지른다. 아이고 아프다. 김연아 선수는 넘어져도 특유의 당당한 표정으로 다시 일어나 남은 연기를 멋지게 하던데. 초등 수강생 친구들 앞에서 약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지만 내 간은 이미 쪼그라들 대로 쪼그라들었다.


링크 밖에서 오래 머물면 안 된다. 무릎에서 시작된 긴장이 온몸으로 퍼지기 전에 무작정 다시 링크로 들어갔다. 넘어진 기억은 잠시 잊고 절반 남은 수업은 마음에 들게 타보겠다는 25분짜리 목표로. 수업 끝나 집에 가서 아프다 징징대겠다는 목표로.




한 초등학교에서 교육과정에 따라 통일 교육을 실시하고 선생님이 미리 준비해 둔 한반도기 배지를 학생들에게 선물로 나눠줬다. 그 일로 학부모들의 민원이 화차에서 발사되는 화살마냥 학교로 내리 꽂혔다.  


우리 아이한테 통일 교육 시키지 말아라. 한반도기를  나눠주었느냐. 교사는 정치적으로 중립을 지켜야 하는  아니냐?  선생님이 소속된 단체가 어디냐?


학부모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에는 ‘강남 한복판에서 한반도기를 배포한 초등교사 참교육’이란 제목으로 1탄, 2탄 두 개의 영상이 올라갔다. 교장은 공식 사과를 했다.


교사 독서 모임에서 한 선생님께서 본인 근무하는 학교에서 있었던 일이라며 이야기를 해주셨다.  

우당탕!


독서 모임 며칠 후 서이초 선생님의 자살사건. 다음날 아침 출근길 복도에서 바라보는 어두운 우리 교실 천장이 무섭다. 혹시 그곳에 내가 있을까 봐.   

우당탕!




내가 학교에서 행하는 모든 행동이 아동학대 같다.


자음자 ‘ㅁ, ㅂ, ㅇ’을 알맞은 순서와 방향으로 쓰지 못하면 지우고 다시 쓰기를 반복시키며 학생들을 힘들게 했다. 아동학대!


급식 시간에 좋아하는 반찬이 없어 한 숟가락도 먹지 않고 국통에 모아 잔반으로 만든 학생 손을 잡고 배식대 앞으로 갔다. 배식을 다시 받고 조금이라도 먹어보자고 했다. 아동학대!


복도에서 줄 맞춰 이동할 때 사이드 스텝(본인의 걸음을 그렇게 칭했다.)으로 걸어 친구들과 부딪칠 뻔 한 학생을 멈춰 세워 바른걸음으로 3미터쯤 앞까지 갔다 돌아오도록 했다. 아동학대!


방학식날 “악수할까요? 허그할까요?” 묻고 학생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작별 인사를 나눴다. 뒤늦게 깨달았다. 선택지에 아무것도 안 할까요? 는 없었다.

“엄마, 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는데 선생님이 악수할까? 허그할까? 물었어.”라고 한다면 김 선생! 성추행일세!


꼼짝 마라! 김 선생! 당신은 예비 아동학대 피의자! 예비 성추행 교사! 심지어 누군가는 예비 살인자라고도 했다. 훗! 나란 사람, 이 넘치는 가능성이란.


운이 언제까지 계속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존재는 흐른다. 싸움하는 사람은 싸움하지 아니하던 사람이었기도 하니까.

<싸울 때마다 투명해진다> 은유, 서해문집


가능성이 가능성이 아닐 수도 있겠다. 그동안 나는 그저 운이 좋았을 뿐이다.


고통이 고통을 알아보고 존재가 존재를 닦달하지 않는 세상은 어떻게 가능할까.

<싸울 때마다 투명해진다> 은유, 서해문집


넘쳐나는 기사와 댓글을 읽다 보면 정신머리가 미숫가루 앞에서 재채기를 참지 못한 것마냥 사방팔방 흩어진다. 얼얼함이 전신에 퍼지기 전에 벌떡 일어나 다시 링크로 당당하게 걸어 들어가야 한다. 누가 뭐라든, 남은 2학기는  마음에 들게 학급을 운영하겠다는 목표로. 일단 우리 다시 교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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