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왜' 그럴까? 저건 '왜' 그런거지?
이러한 말들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인간은 욕구를 쫓는 동물이다.'
'인간은 의미를 추구하는 동물이다.'
무엇이 옳다, 그르다라는 개인의 판단을 감히 타인에게 강요할 수는 없다.
그저 개인의 가치와 신념으로 결정하고 나아가야 할 문제인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난, '인간은 의미를 추구하는 동물'이라고 판단했다.
그렇기에 우리는 저마다의 존재 이유를 품고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
그렇다면,
“나는 ‘왜?’ 존재하는가?”
이러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본 적이 있는가?
아마 해보지 않은 사람들이 더 많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오해하면 안 되는 것이 있다.
“나는 커서 '무엇'이 되고 싶지?”
“나는 커서 '무엇'을 하고 싶지?”
이러한 질문들은 '왜?'에 대한 질문이 아니다.
그저 ‘무엇’에 관한 질문일 뿐이다.
우리는 스스로에게,
'왜?' 무엇을 하고 싶은데?
'왜?' 무엇이 되고 싶은데?
이와 같은 질문을 던질 수 있어야 한다.
——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우리는 저마다 존재 이유를 갖고 살아가야 한다.
그리고 바로, 그 존재 이유를 찾기 위해 우리는 '왜?'를 던져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수많은 상황을 그저 '무엇?'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상황에 휩쓸려 판단하고 결정한다.
그러나 이런 무수히 많은 상황 속에 '왜?'를 던짐으로써 우리는 좀 더 본질을 볼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우리는 그 과정을 통해 나를, 인간을 알 수 있으며, 결정의 퀄리티는 당연스레 올라간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다양한 상황과 인간의 행위들에 '왜?'를 끝까지 던지다 보면 추상적인 관념이 남게 되는데, 이러한 관념은 인간의 다양한 욕구와 연결이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매슬로우의 욕구이론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인간은 결국 생존, 안전, 소속, 존경의 욕구를 넘어 최종적으로 자아실현과 이타심의 욕구를 해소하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이 이론을 언급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존재 이유' 또한 결론적으로 자아실현과 이타심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정리하자면, 인간은 최종적으로 자아실현과 이타심의 욕구를 추구한다는 것.
이 욕구는 존재 이유와 연결되며, 존재 이유를 알아야만 해소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존재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왜?’라는 질문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
물론 '왜?'를 던진다고 아무 현상이나 상황 속에서 존재 이유가 발견되는 것은 아니다.
아무렴 존재 이유란 내가 살아가는 이유이자, 삶의 전부이자, 비전인데 그리 쉽게 발견되면 오히려 말이 안되지 않겠는가.
그렇기에 존재 이유를 찾는 일이란 상당히 오래 걸리는 일이며, 어쩌면 평생을 물어야 하는 일 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우리는 계속해서 '왜?'를 던지며, 반드시 존재 이유를 찾아야만 한다.
너무나 많은 이유들이 있지만 그중 한 가지는,
존재 이유가 삶을 능동적으로 살아가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가치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행동은, 행동을 일으키기 위해 구동력을 필요로 한다.
구동력은 반드시 납득이 되는 무언가 있어주어야 생기는데, 존재 이유가 없는 인간은 대부분의 구동력이 수동적인 행동만을 일으킨다.
그러나 예상 가능하듯, 존재 이유를 통한 구동력은 능동적 행동을 일으킨다.
+우리는 행동을 해야 목표를 이룬다. 목표를 이뤄야 목적에 다가간다.
그리고 목적은 존재 이유, 비전과 연결된다.
(목표와 목적에 대한 통찰도 이후에 다루어보려 한다.)
이렇게 선순환이 이루어진다. 그리고 그 시작이 바로 '왜?'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다.
——
‘왜?’에 대한 이야기는 아무리 해도 부족하지만, 너무나 길어질 것 같기에 여기서 이야기를 마무리하려 한다.
결론은! 항상 ‘왜?’를 던지고, 또 ‘생각’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