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TI를 백 퍼센트 맹신하진 않지만 어느 정도 사람의 성향을 판가름하는 데에 유용하다 생각한다. 꽤 오랜 시간 동안 NF로 살아온 나는 이런저런 말도 안 되는 상상을 곧잘 하는 편인데, 일하는 곳이 병원 한 구석이라 그런가 여러 환자의 상황에 내 입장을 대입해 보곤 하는 거다. 엄마와 자식이라면 엄마의 입장에 ( 아직 딸이지만 나이가 쌓여가서 그런가 아이가 어리면 어머님 나이에 더 가까워서 그런 것 같다), 부부라면 아내의 입장에, 혼자 오신 분이든 여럿이서 함께 왔든 혼자온 남자 환자의 경우가 아니라면 짧게나마 상상하게 된다. 마침 W와도 며칠 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딱 우리만 한 체격차이의 부부가 왔는데 아내분이 남편을 부축하는 걸 보고 우리를 떠올렸다는 이야기였다. 그런 식으로 혼자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도 자주 한다. 쓰면서 되새겨보니 그 속에서 나는 항상 누군가 넘어지는 순간 뒤를 받쳐주고 어딘가 부딪히기 전에 손으로 감싸주는 슈퍼맨이었다. 실패의 경우를 생각한 적도 잘 없는 것 같다. 그러다가 어제 일이 하나 생겼다. W와 차로 이동하다 신호를 기다리던 중 어떤 차가 뒤에서 냅다 들이받았다. 말 그대로 사고였다. 그동안에 했던 무수한 시뮬레이션이 떠오를 새도 없었다. 그저 놀래서 몇 분은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W도 나도 다행히 심하게 다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계획했던 데이트는 하지 못했지만 어쨌건 다행이라 생각했다. 운 좋게도 정차된 상황이었고 운 좋게도 앞이 아니라 뒤였고 운 좋게도 아주 세게 들이 받히진 않았고 운 좋게도 둘 다 안전벨트를 잘하고 있었던 거였다. 늦지 않게 응급실에 가서 엑스레이 사진을 찍었다. 어제는 바지만 환자복이어서 덜 그랬나, 오늘 입원한 병원에서 위아래 다 환자복을 입고 있는 W를 보는데 마음이 찡하게 저려왔다. 신체 어딘가에 병이 들어 그런 게 아니란 걸 아는데도 그랬다. 보고 있어 좋은데 좋지 않았다. W가 내게 그랬다. 우리가 아무리 조심해도 상대가 그래주지 못하면 소용없다고. 나도 비슷한 생각을 했다. 근무하며 쓰는 지금도 뒷목은 아프지만 퇴근하고 내 다리로 걸어서 W를 보러 갈 수 있다는 것에 안도한다. 사람일은 정말 한 치 앞도 모르는 거구나, 희끗한 부끄러움과 민망함에 치일 피 일 미루다가 영영 못할 수도 있겠다, 감사와 사과, 사랑표현을 아끼지 말아야겠다 생각하며 마침표를 찍는다. 아 오늘은 왠지 쉼표가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