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글씨체

by 이수


디지털보다 아날로그를 더 좋아하는 사람, 그중 하나가 나다. 나는 전자기기의 속 글씨보다 종이 위 직접 쓴 글씨를 좋아한다. 메신저로 주고받는 문장과 직접 써 건넨 편지의 차이라 비유하면 얼추 맞을 것 같다. 한 글자 한 글자 시간 들여 내손으로 써 내려간다는 점과 꼼수를 부리지 않고 온전히 담아내는 느낌이 무척이나 좋다. 이번 글은 내 맘에 드는 글씨를 쓰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시간의 요약이 되겠다.


되돌아보면 나는 또래에 비해 글씨를 곧잘 쓰는 편이었다. 모든 활동이 각각 공책(왜인지 여기선 노트가 아니라 공책이라 해야 할 것 같다)하나씩을 정직하게 차지하던 내 어린 시절, 유치원에서는 그중 하나였던 10칸 공책에 숫자 1부터 100까지 쓰기 연습을 하게 했는데 나에겐 다른 친구들보다 바르고 빠르게 완성해 내는 재주가 있었다. 안타깝게도 덩치까지 타고나진 못해서 우리 반에서 제일 덩치 컸던 여자애가 자기와 바꾸자며 곧잘 뺏어가곤 했지만 표지에 적혀있는 내 이름덕에 매번 돌아왔기에 별 문제는 되지 못했다. 더 커서 초등학생이 되고서는 아침마다 회색빛 눅눅한 갱지에 짧은 문장 같은 걸 쓰게 됐다. 바탕체로 인쇄된 글씨를 아침마다 따라 써서 선생님께 제출해야 했는데 솔직히 엄청 공들이진 않았던 것 같다. 핑거 니팅에 빠졌던 시기라 얼른 뜨개질을 했어야 했기 때문이다. 내는 걸 다 받아주던 건 아니었고 지우고 다시 써오라며 돌려보내는 애들도 있었다. 자랑스럽게도 난 다시 받아본 적이 없다. 그저 조용히 뜨개질을 했을 뿐.. 그리고 대망의 졸업식 날, 담임선생님께서는 학부모님께 드릴 안내문과 짤막한 감사편지를 준비해 오셨다. 하얀 봉투도 같이 가져오셨는데 그 위에 받는 사람칸을 내가 썼다. 서른 명이 넘는 우리 반 아이들의 이름만 바꿔가며 'OOO어린이 학부모님께'를 쓰면서 내심 기분이 좋았던 기억이 난다. 왜 본인이 안 쓰시고 나에게 시키셨는지는 그때고 지금이고 너무 궁금하지만 이제 물어볼 수도 없어 아쉽다. 그렇지만 결코 거짓말이 아니다. 엄마도 그 봉투를 기억하고 계셨다. 어린애가 잘 쓰면 얼마나 잘 쓰겠냐 싶지만 저런 걸 맡겼을 정도면 그래도 괜찮게 썼다는 방증 아닐까. 쓰고 나서 다시 읽으니 내 잘난 맛에 학교를 다녔던 것 같아 조금 부끄럽다. 어린이가 어떤 것을 좋아하게 만드는 방법 중 확실한 하나는 분명 칭찬해 주기일 것이다. 덕분에 나는 글씨 쓰는 걸 좋아하게 됐고, 지금까지도 주변사람들이 인정해 주는 김(한) 석봉이 되었다.


글씨체에 대한 본격적인 노력은 중학생 때부터였다. 여기서부턴 내 친구 Y가 증인이 되어 줄 수 있다. 초등학교 6학년 끝무렵 드디어 내게 스마트폰이 생겼다. 자연스레 웹툰세상에 발을 디디게 되고 닥치는 대로 섭렵하다가 '아는 사람 이야기'의 오묘 작가님을 알게 되었다. 소녀소녀한 그림체와 수채화 같은 채색이 무척이나 좋았지만 그것보다 더 내 마음을 사로잡았던 것은 그 작가님의 손글씨였다. 다른 대부분의 작가님과는 다르게 웹툰 내의 모든 글씨를 직접 쓰셨는데 그게 너무 예뻐 보여서 사람이 아닌 글씨체에도 이상형이라는 게 있다면 꼭 이런 거겠지 싶었다. 별생각 없이 익숙한 길만 걷던 손 끝에 첫 목적지가 생긴 시기였다. 필기구와 종이는 그 조합에 따라 미묘한 차이를 만들어냈기에 오밀조밀하고 귀여운 그곳에 가기 위해선 최대한 비슷한 느낌이 나는 펜과 종이를 합을 찾아 헤매야 했다. 하지만 나는 이제 막 중학생이었고 큰 사치를 부릴 수 없었다. 노트는 주변에 있는 걸로 자체적 합의를 본 후 몇 번의 실패 끝에 '파인테크'라는 중성펜을 만나게 되었다. Y가 큰 머그컵 하나를 색깔별로 가득 채워 가져온 덕이었다. (빨주노초파남보가 다 있었던 정말 대단한 친구였다.) 매 쉬는 시간마다 뒤돌아 Y와 노트에 낙서하며 놀고 누가 시키지도 않았던 노트 필기도 정말 열심히 했다. 결과적으로 글씨도 맘에 들게 바뀌었고 얼굴도 몰랐던 다른 반 친구에게 '너 글씨 아주 이쁘더라~' 하고 칭찬받는 쾌거를 이루어 낼 수 있었다.


중학생시절 목적지에 깃발을 꽂고 만끽하다 보니 또 가보고 싶은 곳이 생겼다. 이젠 네모반듯한 글씨체가 갖고 싶었다. 어딘가 성숙하고 바른 느낌이 좋았다. 처음엔 줄노트에 세로로 줄을 그어 네모칸을 만들고 한 글자가 그 칸 하나를 벗어나지 않게 꽉 채워 쓰는 연습을 했다. 손에 익어버린 꼬불거리는 글씨를 펴서 구겨 넣기가 쉽지 않았지만 모든 글씨가 사각형이 연상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이상한 것에 의지가 강했던 나는 예상했던 것보다 빠르게 적응하는 데 성공했고 대학교를 거쳐 첫 직장을 나올 때까지 그 글씨체를 고집해 썼다. 하지만 여기엔 치명적인 단점이 하나 있었는데, 줄이 틀어지거나 글자크기가 달라지면 너무 눈에 띄어서 그냥 넘길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생각 보다 그 부분에 아주아주 취약했다. 내용이 틀린 것도 아니었다. 그저 보기 좋은 정도가 내 성에 차지 않는 것뿐이었는데 스트레스에 잠겨 나 혼자 졸아들어갔다. 시험기간만 되면 더욱 곤욕이었다. 암기할 때에도 노트북 타이핑보다 손으로 써 내려가야만 머리에 들어오는 갑갑한 유형이었던 터라 내가 학습을 하는 건지 글자 줄 맞추기를 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종이의 첫 번째나 두 번째 줄이면 그나마 다행이지, 거의 다 써가는데 무언가 흐트러지면 정말이지 딜레마가 따로 없다. 그대로 쓰자니 거슬리고 다시 쓰자니 막막하고. 그렇게 종이 좍좍 찢어가며 50페이지짜리 노트를 25페이지로 만들어내는 연금술에 성공했을 때 생각했다. '아... 못해먹겠다..'


대책이 필요하긴 한데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곧바로 떠올리기는 쉽지 않았다. 닮고 싶은 글씨체가 있는 거라면 의식하고 따라 쓰면 되는 일인데 내 문제를 해결하는 목적으로서는 도무지 마땅한 해결책이 생각나지 않았다. 쓰는 내내 잘 쓰고 있나 종이를 수시로 들어 확인해야 하나? 연필로 가이드라인을 그어놓고 지우개로 지워야 하나? 개선은 되지 않고 해야 하는 일만 더 생기는 것 같아 불만만 늘어나던 차였다. 그러다 SNS를 통해 '다꾸'라는 세계를 알게 되었다. 일기를 그냥 쓰는 게 아니라 메모지와 스티커를 붙여 예쁘게 꾸며 쓰는 세상이 있었다. (언젠가 다꾸에 대해서도 글을 써봐야겠다.) 이것도 내 마음에 안 차면 다 뜯어고치느라 스트레스긴 했지만 좌우지간 재미있어서 꽤 오래 이어나간 취미였는데 어느 날 조금 삐딱하게 써진 글씨가 너무 맘에 든 것이다. 본 순간 '아, 이거다.' 하는 느낌이 바로 들었다. 그다음부터는 그 글씨처럼 뻗치는 느낌을 내려 애썼다. 원체 삐죽한 글씨는 조금 위아래로 휘어도 그다음 글자에서 바로잡으면 비교적 균형을 잡을 수 있었기 때문에 익히기만 한다면 확실하게 개선할 수 있겠다는 희망이 있었다. 다꾸와 별개로 다른 자격증 공부도 계속하고 있어서 글씨를 넘치게 쓰는 환경이었기 때문에 일부러 시간을 내지 않아도 알아서 연습이 되었다. 혼자 책상 앞에 앉아 같은 글자를 이렇게도 써보고 저렇게도 써보며 가장 이상적인 삐뚤함을 찾아 나섰다. 그 결과물이 지금의 글씨체다.


시간이 지날수록 글씨체에 대해 관대해지고 있다는 걸 느낀다. 내 뜻대로 되지 않아 생기던 스트레스에서도 이전보다 훨씬 자유로워졌다. 글씨 자체에 큰 격차가 없어지기도 했고 다이어리를 꾸미며 무선노트를 달고 살았더니 줄이 없는 환경이 익숙해진 단계에 이르렀다. 어쩌다 어그러져도 '이마저도 내 모습이지!' 하며 마음에 들여버리는 태도도 큰 도움이 되었다. 내게 글씨는 그저 단순한 정보전달의 수단이 아니다. 얼마만큼의 힘을 들여 눌러쓰는지, 어느 정도의 속도로 글자 하나를 완성하는지, 필기구를 감싸는 손가락이 몇 개인지 같은 사적인 요소들의 집합체다. 거기에 살아온 만큼의 시간이 쌓여 마침내 쓰여진 글씨는 또 다른 형태의 자신이 된다. 내가 숱하게 지나온 길을 따라 무의식적으로 발을 들여놓는 것처럼 비슷한 곳에서 자음 혹은 모음을 시작하고 꺾게 되는 것이다.


-위의 공백과 밑의 공백 간격이 다른 'ㄹ'

-갓이 번듯하게 서있는 'ㅎ'

-가로막대 하나 따로, 두 개 묶음으로 나뉜 'ㅌ'

-눈웃음 같은 'ㅆ'

-길게 꼬리를 낸 몇몇 모음들.


이 부문에서 잘하고 못하고는 없다고 생각한다. 본인만이 탄생시킬 수 있는 고유한 것이니 존중해주고 싶다. 고맙게도 내 주변 사람들은 내가 썼다고 알리지 않아도 나를 떠올려준다. 종이 위 글씨만 보고 나를 알아채주는 세상이라니, 나에게 내 글씨체는 내 이름 없이 나를 알리는 방법이자 나만의 것을 지켜내고자 하는 나에게 나를 더 좋아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된다.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