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방 한 구석에는 하얀색 상판의 네모난 책상과 긴 스탠드가 있다. 이 구성을 완성해 내기까지 짧지 않은 여정이 있었다. 기억을 되돌려 십몇년전으로 돌아가보겠다. 이 책상을 사기 전 나에게는 이미 책상이 있었다. 무려 초등학교 6학년때부터 나와 생활해 온 밝은 색의 나무 책상이었는데 엄마가 사준 것이 곧 취향이었던 어릴 적과 달리 점점 커갈수록 내 기준이 확고해지면서 공간을 어마무시하게 잡아먹는 크기라던가 나무 상판의 나이테 무늬, 그 위에 덮인 유리판 하나하나가 무척이나 거슬려 어지간히도 쓰기가 싫었다. 그렇다고 바닥에 앉아 낮은 책상을 쓰려니 무릎이 살려달라며 아우성치고, 침대에 엎드리자니 배가 이불에 닿은 이상 -오늘 제정신은 여기까지입니다- 하는 꼴이 되었다. 결과는 뻔했다. 앉아있지 못하니 어떤 공부든 시작조차 하지 못했다. 고심한 끝에 내가 날 앉혀놓기 위해서는 내가 좋아하는 분위기가 조성이 되어야 한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생각해 보면 나는 내 기분에 내키면 했다. 안 내킬 때가 대부분이어서 문제였지만 하여튼 나는 그 중-요-한 분위기를 단박에 산산조각 내버린 저 고물 같은 책상을 책임지고 처리해야만 했다. 그러다 어느 날, 방을 엎었다.(우리 집에서는 대청소를 엎는다고 표현한다) 이때의 내 행동이야 갑자기 발생하는 사고 같은 느낌이 강했지만 물론 이유가 없지는 않았고 내 나름 그 중--요--한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시작된 방정리는 긴 시간을 거쳐 문제의 책상을 내다 버림으로써 끝이 났다. 갑갑했던 박힌 돌이 빠졌으니 이제 새로운 돌이 굴러들어 올 차례였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고민하다 접이식을 사기로 했다. 애초에 크고 화려한 것보다는 소박하고 심플한 게 내 취향이기도 했고 책상을 펴는 절차에서 조금 더 마음을 다잡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이 있기도 했다. 이쯤에서 서술하자면 내 로망에는 방 한구석, 테이블, 그리고 스탠드가 필히 세트로 있어야 했는데, 마침 스탠드도 내 취향이 아니었다. 원래 쓰던 건 예전 책상과 함께 들어온 하얀색과 연두색 조합의 조그마한 아동용 스탠드였다. 책상과 맞는 좀 더 모던한 분위기가 있었으면 했다. 책상이 작은 편이라 상판 위에 스탠드가 자리하면 내 성격상 무조건 몇 번이고 떨어뜨릴 테고, 쓸 자리도 좁아질 테니 아예 별도로 세울 수 있는 장스탠드를 사기로 했다. 팡 터지는 어느 쇼핑 플랫폼에서 오직 가격과 디자인에만 치우쳐 적당히 시킨 책상과 스탠드. 그리고 결제!
내 룸메이트들이 집에 온 첫날을 아직 기억한다. 물건에 따져봐야 할 항목이 많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그 시절 나는 20대 초반, 예쁜 게 곧 기능이자 합당한 구매이유였고 직장을 다니고 있었어도 급여가 많지 않아 타협했어야 한 했던 터라 어긋나서 온다는 리뷰를 보고서도 설마~ 하며 결제버튼을 눌러버렸다. 그리고 그 도박은 딱 절반만 성공하게 된다. 내가 고른 책상은 다리를 펼쳐 상판 밑에 붙은 고무패킹에 끼워 고정시키는 형식이었는데 그 고무패킹이 아예 뽑혀서 상자 안에 나뒹구는 채로 도착한 것이다. 화보다는 당황이 앞섰다. 어떻게든 수습해 보려고 했지만 해본 적이 없던 터라 잘 되지 않았다. 환불이나 교환을 할까 했지만 마침 살짝 모자란 것을 좋아하던 나였어서 나에게 올 운명이었겠거니 하고 품게 되었다. 열심히 살고자 하던 마음을 더 미루기 싫었던 것도 있었다. 결국엔 분리된 패킹을 책상다리에 끼우고 상판을 받치는 방식으로 쓰기로 했다. 다행히 스탠드는 하자 없이 무사히 도착해 줘서 조립까지 무난하게 진행되었다. 위치까지 정해놓고 그 앞에 앉았을 때의 만족감과 무엇이든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느낌, 여기까지 참 오래도 걸렸다!
나는 낮이든 밤이든 어두운 상태에서 스탠드를 켜는 것을 좋아한다. 방의 문은 꼭 닫아야 한다. 안정감은 내게 아주 중요하기 때문이다. 베란다 창문의 커튼을 칠지 말지는 그 순간의 나에게 맡긴다. 스탠드의 콘센트를 꽂은 다음 스위치를 눌러 켜고 의자에 앉아 알맞은 각도를 찾는다. 머리 위에서 빛이 반짝 쏟아져내린다. 그렇게 스탠드는 나를 비추는 스포트라이트, 네모난 책상은 만족할 때까지 사라지지 않을 나만의 작은 무대가 되어준다. 비록 좌석과 관객은 나 하나로 고정인 데다가 돈도 받지 못하지만 공연내용은 때마다 다르다. 일기, 공부, 어떤 날은 기타 연주를 하기도 하고(E, G, C코드밖에 못해 너의 의미만 주야장천 불렀지만) 또 어떤 날은 공부하며 잠까지 자는 묘기를 보이기도 한다. 아주 긴 나날동안 같은 무대를 반복했던 적도 있었다. 혼자 화내기도 하고 혼잣말도 하고 피식피식 웃기도 하는 이 공연, 아쉽게도 매번 매진상태다.
일종의 가스라이팅이다. 다른 게 있다면 대상이 타인이 아닌 나 자신이라는 것. 드라마나 영화를 촬영할 때 치는 슬레이트처럼 그 공간에 들어서면 나는 다른 사람이 되는 거라며 되뇐다. '나는 이렇게 본격적인 사람이야!', '난 원래 이랬었어!' 하며 다른 생각을 하기 전에 후다닥 세뇌시켜 버리는 거다. 그렇게 무계획도 계획이라 외치는 자유로운 영혼에서 읽고 쓰고 생각하는 그저 계획만이 계획인 열정 가득한 꼼꼼한 사람이 된다. 잠이 많지만 어떻게 서든 잠을 깨려는 간절한 사람이 되기도 한다. 평소의 내게서 찾기 어려운 면을 마주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세 가지의 조합은 날 매료시키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가끔 스트레칭하며 뒤를 돌아봤을 때 보이는 희끗한 내방 물건들과 길게 늘어진 내 뒷모습도 무척이나 마음에 든다. 다행히도 이 가스라이팅 작전(?)은 내게 아주 잘 들어 먹혀서 그 당시 일과 병행하며 준비하던 시험에 착 붙게 되었다.
아쉽게도 지금은 공연을 자주 하지 못하고 있다. 일단 집에 오랜 시간 있지 못하기도 하고 이른 시간 출근에 늦은 시간 집에 돌아와 씻고 나면 내일을 위해 잠에 들어야 하는 시간이 코앞인 것이다. 앞으로 9개월, 아니 그마저도 안되려나. 결혼이라는 큰 행사로 이 공간은 앞으로 9개월 후면 사라지게 될 예정이다. 짐을 미리 빼다 보면 그마저도 안될 수 있겠다. 내가 아주 애정했던 내 방의 이 공간과 잠과 맞바꾼 시간을 잊지 않으려 글로 남긴다. 내년 가을에는 '내 방 한구석'이 어떤 이름으로 불리게 될까. '창문 앞 1미터' 정도가 되려나. 그때에도 돈은 받지 않은 채 여러 내용으로 공연을 해 나가겠지만 딱 한 가지 개편된다면 새로운 관객이 한 명 생긴다- 정도가 되겠다. 앞으로 만나게 될 새 극장을 상상하며 이만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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