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선시트

by 이수


며칠 전 W와의 데이트를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 조수석에 앉아 '세 번째 글은 어떤 주제로 쓰면 좋을까요?' 하고 혼잣말처럼 넌지시 물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따뜻해진 엉덩이를 깨닫고선 말했다. ‘이번엔 따뜻한 엉덩이에 대해 써야겠어요!’ 뱉어놓고 반박자 늦게 이상한 걸 깨달았지만 부끄러운 마음은 무엇을 어떻게 써야 할지 생각하기 바빠 구석으로 밀려나버렸다. 두리뭉실한 이 기분을 어떻게든 써내어야 한다는 의무감 반, 따라 흘러온 간지러움 반으로 글을 시작해 보겠다. 이름하야 따스운 엉덩이메이커, 열선 든 카시트~


아직 서른 살도 안된 애 같은 20대지만 유행에 살고죽는 10대는 또 아니기에 순간 스쳐 지나가는 것보다 내 옆에 오래 남아있는 것들에 눈이 가는 것 같다. 내 성격부터도 흥미 있는 게 아니면 둔하고 무관심한 편이라 ‘세상 진짜 좋아졌다’, ’ 기술이 엄청 발전했구나 ‘ 같은 말을 달고 산다. 휙휙 바뀌는 세상흐름에 감탄할 때 나오는 날숨 같은 것이다. 아무리 이해해보려 해도 하지 못하는 비행기 같은 것도 있는데 (아니 어떻게 그 무거운 철덩어리가 뜨냐고요) 다행히 내가 앉은 조수석 열선시트정도야 식은 죽 먹기다. 시트 안에 전기저항이 높은 발열선이 들어가 있어서 버튼을 누르면 전류가 흐르며 열이 나는 거라나.


좋아하는 것에 기준이 확고한 내가 또 한 가지 읊어보자면 내 맘에 드는 따뜻한 시트는 내가 켜면 안 된다. 물론 내가 눌러 켜도 좋지만 같은 느낌은 아님이 분명하다. 내 옆 운전석에 탄 사람이 켜줘야 몽글하고 확실하게 눌어붙을 수 있는 것이다. 여기에 화룡점정은 밖에서 내내 떨다가 차에 올라탔을 때 이미 차 내부가 히터로 데워져 있을 때다. 이건 W의 주특기이기도 하다. 언제 켜뒀냐고 물으면 ‘아까 나올 때요~’ 하고 답해주는데 난 본 적이 없다. ”언제지? 난 본 적이 없는데..? “ 하고 뒤이어 중얼거리지만 사실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조차 좋다. 그리고 이건 여기에서 처음 말해보는 거다. 좋아! 좋다고!


같은 류로 여름에 시원한 시트도 있다. 여름과 겨울을 야무지게도 보내는 나를 위해 W는 의자그림이 그려진 작은 버튼을 눌러서 겨울엔 노랗고 여름엔 파란 불을 켠다. 내 손으로 켠 건 언제더라- 생각해보려 했는데 잘 떠오르지 않는다. 반대로 조금만 더 있으면 정말 잘 익겠다 싶을 때 줄이거나 꺼본 적은 종종 있다. 껐던 기억의 대부분은 차에서 내릴 때다. 날 생각하며 켜준 것이니 나는 잘 꺼야 한다는 생각을 쭉 했었기 때문에 잊지 않으려 무던히 애썼다. 그렇게 몇 번 끄다가 며칠 전, W가 시동이 꺼지면 열선도 꺼져서 괜찮다는 말을 해줬지만 아직 나도 뭔가 같이 해주고 싶은 마음이 크다.


아무튼 나도 모르게 엉덩이가 따듯해져 있다는 건 W가 날 사랑하고 있다는 뜻이다. 내가 직접 말하지 않아도 신경 써주는 것을 느낄 때면 엉덩이뿐만 아니라 마음도 같이 따스워진다. 운 좋게도 사랑한다는 말에 메이지 않는 사랑을 하고 있다. 오늘도 W를 만난다. 그전까지 열심히 따뜻해질 준비를 해야겠다!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