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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땡땡책협동조합 Jan 04. 2018

예스 플리즈, No! 보다 강한 말

착한 소녀가 아닌 진짜 여성의 언어

남을 웃긴다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무엇보다 누군가를 희화화하거나 불쾌감을 주지 않으며 웃기는 건 더욱 어려운 일이다. 예를 들어 올해 4월 <웃찾사>의 ‘실화 개그' 코너에서는 개그맨의 꿈을 반대하는 아버지를 설득하려 피부를 검게 칠하고 머리에 파를 붙이는 분장 개그가 등장했다. 샘 헤밍턴은 SNS에 “흑인 분장 개그 진짜 한심하다! 도대체 이런 말도 안 되는 행동 언제까지 할 거야? 인종을 그렇게 놀리는 게 웃겨?”라며 강하게 비판을 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 개그맨 황현희가 다시금 SNS상에 "단순히 분장한 모습을 흑인 비하로 몰아가는 형의 이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는 어떻게 해석이 되냐면 영구, 맹구라는 캐릭터는 자폐아들에 대한 비하로 해석될 수 있고, 예전에 한국에 시커먼스라는 오랫동안 사랑받았던 개그란 것도 있었어. 그럼 그것도 흑인 비하인 건가?? “라며 반론을 폈다. 다행히 대중의 정서는 흑인 비하를 인정하는 분위기로 흘러갔고, 방송사에서도 문제의 영상을 삭제하고 공식 사과했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내가 즐기는 것들의 많은 것이 정치적 올바름의 기준에서 문제가 없지는 않다. B급 유머를 좋아하고, 유튜브의 패러디 영상과 짤방을 보며 킥킥대며 웃고 난 뒤 다시금 생각해보면 찜찜해지는 경우도 종종 있다. 하물며 나라는 사람은 얼마나 모순적인가. 민주적 공동체를 바라는 마음에 협동조합 교육, 연구자로 활동하고 현재 3개의 협동조합 이사로서, 그리고 한 개 연합회 사무총장으로 일을 하고 있다. 하지만 스스로도 다른 사람과 잘 협동하고 민주적인가 했을 때 선뜻 긍정적인 답을 하기는 어렵다. 바람 풍(風)을 가르치려 하지만 바담풍만 외치는 훈장처럼 스스로도 못하는 부분을 얘기하고 다니는 것은 아닌가 자괴감이 들 때도 있다. 


웃기지만 우습지는 않은 여성들의 이야기



미국 코미디언 에이미 플러의 에세이집 <예스 플리즈>는 이러한 스스로와 사회의 양면성에 대한 즐거운 대처법이다. 에이미 폴러(Amy Poehler)는 코미디언, 배우, 작가, 감독, 제작자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SNL에서 2001년부터 2008년까지 크루로 활약했고, 드라마 <팍스 앤 레크리에이션>에서 주인공 레즐리 노프의 역할을 했다. 역할을 잘 소화해내서 칭찬을 받았다. 애니메이션 <인사이드 아웃>의 기쁨이(Joy) 역 목소리 연기로 니켈로디언 키즈 초이스 어워즈에서 ‘가장 인기 있는 애니메이션 목소리’ 상을 받기도 한 만능 엔터테이너이다.

 

하지만 단순히 유명세에 힘입어 나온 에세이집은 아니다. 이 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책을 출간한 1인 출판사 책덕의 ‘코믹 릴리프’ 시리즈를 이해해야 한다. 코믹 릴리프는 ‘진지한 이야기에 긴장을 완화하기 위해 삽입하는 해학적인 장면이나 등장인물’을 뜻하는 연극 용어이다. 진지하지만 너무 무겁지 않은 이야기, 웃기지만 우습지는 않은 여성 코미디언들의 삶이 이 시리즈에 담겨있다. 첫 번째 <미란다처럼: 눈치 보지 말고 말달리기>은 영국 시트콤 <미란다>의 작가이자 공동 프로듀서이자 주연 배우인 미란다 하트(Miranda Hart)의 이야기를 닮고 있다. 책덕을 운영하고, 번역가이며 표지 디자인도 함께한 김민희 대표는 “'웃기는 여자가 세상을 뒤집는다'는 모토로 웃기는 여자들의 책을 만들고 있다”라고 한다. 세상에는 예쁜 여자 롤모델은 많지만 웃기는 여자 롤모델은 많지 않기에 천편일률적인 롤모델이 아니라 다양한 색의 여자 롤모델이 더욱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담았다고 한다. 


수용하되 부드럽게 요청하기, 예스 플리즈 주문



그럼 이 책이 보여주는 롤모델은 어떨까? 이는 제목에서 드러난 “예스”와 “플리즈”가 결합된 양면적인 매력이다. 먼저 에이미 폴러는 “예스”는 나의 즉흥연기를 배울 때의 젊음, 그때 나에게 주어졌던 기회에서 나왔다“(20쪽)고 한다. 여기에서 즉흥극이라는 우리나라에서는 흔치 않은 공연의 형식을 이해해야 한다. 즉흥극은 관객으로부터 딱 하나의 ‘제시어’를 받아 즉흥적으로 펼치는 공연이다. 관객이 던지는 제시어가 무엇이든지 우선 수용을 해야 한다. 그래서 기본 규칙이 “예스, 앤드”이다. 이때 중요한 건 동료 배우와의 호흡이다. 그래서 에이미는 “즉흥연기는 멋있어 보이기 위한 연기가 아니다”라고 한다. 튀기 위한 연극이 아니다. “즉흥극 무대에서 꽉 끼는 가죽 잠바를 입고 담배를 피우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영리하게’ 군다고 해서 상을 받지 않는다. 그 순간에 존재해야 하며 상대방의 목소리를 듣고 두려워하지 않아야 한다”(130쪽) 


이처럼 상대방을 받아들이는 태도, 내 주변의 상황을 받아들이는 태도는 책 곳곳에 나온다. 에이미는 책 곳곳에서 자신에 대한 사랑, 자신의 삶에 대한 사랑을 얘기한다. 그 비결은 현재의 상황에 대한 긍정,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는 태도에 있다. “자신이 절대 될 수 없는 것은 놓아주자. 이것을 실천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하지 못하는 사람들보다 더 행복하고 섹시하다”(48쪽)라고 한다. 지금 여기의 삶에 대한 강조는 현재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기로 이어진다. “‘중요한 것에 대해 말하기’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을 하기’가 중요한 것이다”(270쪽)라는 말은 일이 되게 하기 위한 비법과도 같다. 


골든 글로브 시상식 오프닝에서 헐리우드계의 공론화된 성권력을 조롱하는 티나 페이와 에이미 폴러


그렇지만 “'예스'라고 말한다고 해서 '노'라고 말할 줄 모른다는 뜻이 아니다."(21쪽)라고 한다. 무한 긍정, 무슨 일이 생겨도 화내지 않기와 같은 철학은 아닌 것이다. 그래서 에이미는 “예스 플리즈”는 강력하고 단호한 말이다. 응답인 동시에 요청이다. 절대 ‘착한 소녀’의 언어가 아니다 “라고 한다. 부드러운 요청인 것이다. 그렇기에 "예스 플리즈"는 "무례한 사람이 바글바글한 이 세상에서, 좋은 예절은 우주를 여는 비밀 열쇠"라고 한다. 


이렇게만 얘기하면 에이미가 구구절절 자신의 철학을 늘어놓는 책이라 오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책 곳곳에는 코미디, 영화, 제작의 다양한 뒷얘기와 자기 삶의 여러 분기점을 솔직하고 재미나게 쓰고 있다. 그러다가도 워크북처럼 독자로 하여금 '내가 태어나던 날' 같은 글을 써보게 하고, 일상의 팁을 제시해준다. 코믹 릴리프 시리즈의 취지대로 진지한 이야기를 하되 결코 무겁지 않게 유쾌한 리듬을 유지한다. 예를 들어 사과를 해야 하지만 망설여질 때 쓴 ‘뇌가 쓴 사과편지’와 ‘마음이 쓴 사과편지’의 버전처럼 기발한 그녀만의 생활의 팁을 얻을 수 있다. 


다시 앞의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에이미는 스스로를 의기소침하게 만드는 악마의 목소리를 잘 다스릴 것을 얘기한다. 모순된 세상에서 나를 지켜나가면서 그렇다고 안주하지 않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양면적인 태도이다. “양면적인 태도가 성공의 열쇠이다. 자신의 일에 대해서는 신경 써야 하지만 결과에 대해서는 그러면 안된다”(243쪽)라고 한다.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현재의 나를 사랑하며 세상에 조금씩 요청해가는 방법을 익혀나가 보자. 마법의 주문 “예스 플리즈”를 외치면서. 



글쓴이. 주수원

협동조합 연구. 교육자로서 땡땡책협동조합 이사로도 활동중이며 땡땡팟캐스트도 진행중이다.




예스 플리즈

에이미 폴러 지음 | 김민희 옮김 | 책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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