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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m Oct 13. 2022

날 선 송곳니처럼 첨예하게 대립하는 욕망과 억압의 상아

영화 <송곳니>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영화 송곳니는 부모와 자식이라는 혈연으로 인해 결속된 상관관계를 보호와 욕망의 상호 등치적으로 성립되는 관계를 통해서 어떤 갈망하는 특정한 것을 쟁취하기 위한 비도덕적, 부정적인 의미의 초상식적 조공 행태가 보호에 대한 무의식적 자기 파괴 욕구를 지배-피지배 관계로 형성될 수 있는 태연자약한 모습을 조공이라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상대에게 피지배자에 대한 지배자 욕구를 충족시켜주면서 심연의 자기 파괴 감을 즉각적으로 표현하지 못한 채로 점진적으로 증폭시켜 능동성을 기본으로 하는 성숙함으로의 진보를 지연시킨다는 것으로 함축적으로 묘사합니다.


권력이라는 말초적 쾌락을 제공하고 받는 사소한 매개체로부터 점진적으로 확대되는 연결관계가 여유를 즐기고 한가로이 있는 가족의 구성원을 향한 몸싸움으로 폭력의 형태로 발전하고 갖고 놀던 비행기 장난감을 금지되어 있는 집 밖의 담 너머로 던져 부숴버리는 극단적인 파괴성을 보이는 상당히 미약한 개인을 각인시키고 억압에서 파생되는 욕망과 방어기제에 의해 일그러진 수동성이란 인지적 형상을 발현시킵니다. 대표적으로 철저히 상명하복의 노동 원칙을 준수하는 경비원의 눈을 안대로 가린 채 돈이라는 권력의 매개체로 회유하여 강압적으로 갇혀 있는 아들의 성적 욕구를 해소시키도록 지시하거나 사냥개를 훈련시키는 장면으로 본능적 기질을 보존하되, 갑-을 관계의 확고한 복종관계를 병적으로 지키는 훈육방식을 모방하며 자식들을 일렬로 집합시키고 4족으로 엎드려 개 짖는 소리를 강요하여 폭압으로 길들이는 과정으로 몸싸움과 사냥개의 훈련 장면에 유사성을 부여하고 내면의 진실한 목소리를 무시한 채로 수동적으로 아버지라는 권력자에게 가축화되고 복종화되는 단계에 진입해 명령-보상이라는 짐승 훈육의 틀과 연계성을 띄고 있는 상명하복 인과관계의 논리로 점철된 양태를 보여주며 인간이 열망하는 이상적인, 문명화된 경로에서 이탈한 야만성이 충만한 짐승과 인간 사이의 혼종을 어떠한 간섭도 못하는 채로 관객이 가만히 지켜보도록 설정합니다.


이는 백지상태(Tabula rasa)의 선험성이 내재된 인간의 순수성, 그 반대로는 속세의 거친 성질을 극복하는 강단이 결여된 미약함을 상징하며 우리(cage) 안에 갇힌 가축과 같이 정해진 행동양식대로 행동하는 미성숙한 인간과 그저 흘러가는 대로 방조하는 무위의 초자연적 존재인 자연에 완전히 반하는 성숙 하다고 착각하는 인간의 오만함을 3인칭의 시점으로 보도록 하여 괴상한 부분을 지적하고 싶어도 들을 수 없는 인물들에 무기력감을 느끼며 마침내 억눌려있던 욕망의 분출의 표상으로서 여과 없이 드러냅니다. 여기서 독재의 최전방에 있는 아버지라는 존재는 회사에서 키우는 식물에게 물을 빠짐없이 주며 부하직원을 믿지 못해 본인이 스스로 다하는 결함을 용납하지 못하는 완벽주의자적인 면모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감정이 없는 상당히 무미건조하고 무표정한 얼굴로 시종일관 맞대응을 하며 무소불위의 나연(leader)을 모방하려 하는 피상적인 가면과 오만함을 내포한 인간성을 표면적으로 드러냅니다. 극 중 단선적 매개체로서의 '비디오 갑'이라는 VHS는 외부를 철저히 불가침 한 타자화된 대상으로서 치환되는데, 촬영된 기간과 변화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는 전체적인 과정론적 인과관계가 드러나 순간은 소멸되고, 목격 가능하며 실존하는 현재는 원하는 부분만 담긴 '실재'로 강요받습니다. 더 나아가 보인 '음부'라는 단어의 의미를 딸이 물어보고, 엄마는 그런 은밀하고 지극히 사적인 내용을 얼버무리며 단순히 친구라고 언급하며 감추기에 급급한 장면을 통해 준자율 성과 혼합된 자발적 감정 형성의 점진성은 철저히 배제시켜 내면의 성장의 뿌리를 단절하여 오직 이 순간에만 머물도록 세뇌시키고 심리적 판옵티콘을 설계하여 단면을 내재화시키고 그 외에 감추려는 진실의 극단적 외재화의 수순을 역설적으로 한 시퀀스에 녹여냅니다. 이러한 부모의 강압적인 가스 라이팅의 정도가 심해질수록 그들은 베일에 쌓여있던 폭력성과 조공-피 조공의 기계론적 균형관계의 이면을 알게 되고 철저히 순수성을 억누르는 제도에 반항심을 품고 아버지와 어머니가 정한 엄격한 규율의 철옹성으로 바깥세상에 나가 운전면허를 취득하고 독립을 할 수 있는 시기를 계산적으로 정하여 위험성이 0%인 안전함을 추구하는 등의 자연적 이치와는 모순되는 냉혹한 진실에 대해 눈이 먼 장님과 같은 송곳니의 함축적 심상을 근친이라는 터부시 된 은유로 설파합니다. 그에 대한 참혹한 말로는 권력과 철저한 원칙의 우뚝 솟아오른 상아탑과 같은 존재였던 신체의 고작 일부분인 자그마한 송곳니를 아령으로 깨부숨으로써 통념을 깨부수는 용감함과 능동적 행동 대신 가축화의 부작용으로 발현된 은둔성을 촉발시켜 트렁크에 숨고 자취를 감춥니다. 바로 다음 컷으로 근친상간을 하는 터부와 아버지의 다급한 모습이 몽타주적으로 배치되어 독재의 공든 탑이 무너진 아나키즘의 나비효과로 인한 관계의 전위를 가로수 빛만이 짙은 어둠이 드리운 공허를 강조하여 줌 인으로 확대되는 자식을 향한 보호와 안정, 사랑의 어긋난 표현법인 독재적 권위는 가정 내에서 일반화된 체계가 붕괴되자 갈피를 잡지 못하는 정처 없이 떠도는 나그네처럼 묘사되며 상보적으로 되돌아오는 독재성을 내포한 폭력적 억압은 거품처럼 부푼 일시적인 만족감 뒤에 공허감이라는 허무주의적인 결과를 내포하고 있음을 익스트림 와이드 샷으로 시사하며, 일그러진 욕망과 파괴된 내면이 한데 융합된 '실패작'이 고스란히 담긴 채 판도라의 상자가 단독샷으로 클로즈 업 되면서 막을 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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