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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m Oct 13. 2022

영화 <랑종>

일상과 신앙의 비정형적 이합집산의 산물, 생계형 광적 레퀴엠

영화 <랑종>은 인간의 권능자로서의 욕구를 지니고 있는 랑종(무당)과 밍을 둘러싼 불순한 혈연관계의 순환고리에 종속된 그들의 외재적 우주를 내재적 우주와 분리시킴으로써 사탄의 소굴처럼 저주와 비슷한 현상의 일련이 범우주적 존재로부터 도사리는 불확실성에 대한 '지'의 비가시성에서 비롯된 배타적 태도로 전이되는 민간신앙에 대한 무결한 신뢰를 생계적인, 친밀함을 내포한 낭유도식한 안전과 평화 하에 있는 섬처럼 격리된 유배지로서의 심상으로 대변합니다. 그리고 기독교적 관점으로 '메시아'라는 피상적인 표상을 띈 채로 기생하는 불신과 천지의 규율을 어기는 악의 굴레에 속한 제물을 순차적으로 소거하는 집행을 하며 영화적인 대기(atmosphere)를 가지고 있는 공간에 유사성을 동반한 역설적 괴리감으로 극적인 임장감을 형성합니다. 밍이 삶을 연명하는 일상적이고 가변적 평화로 둘러싸인 장소는 전반적으로 채색도(saturation)의 강도를 미드톤으로 낮춘 먹구름이 자욱한 칙칙한 시내로 가시화하여 덧없이 흘러가는 무위의 자연처럼 그저 업보와 예정 조화의 상치된 이치대로 구성된 입자인 '모나드'의 일부로서 '천도'에서 주어진 과정을 밟는 생계의 탈을 쓴 게슈탈트적 조합의 혼원을 페이크 다큐멘터리라는 영화적 구성으로 관객들이 수용하며 현실로서 임의로 인식할 준비를 하도록 유도합니다.



영화가 진행될수록 일상을 침범한 다큐팀은 환청을 들을 뿐 아니라 흰자위만 보이는 늙은 여자를 본다는 밍의 환각을 마주하는 장면에서 저주의 장막에 육체와 정신이 사로잡히는 밍의 곁으로 다가오는 악인지 선인지 알 수 없는 불가지 한 성질의 초자연적 현상 앞에 1인칭 POV의 시점으로 일상의 고요한 영역에 검은 묵을 흘리는 폭력적 양태의 배타적인 행태를 점진적으로 포착합니다. 이런 흐름에 다큐팀이 만난 님이 믿는 '바얀신'은 정신적 영역의 가시적인 범위 내에 속하는 자의성이 내포된 절대적 믿음 외에는 이신론적 자연에 어긋나는 특정 다수의 외재적 존재들을 힐거합니다. 그 뒤로 밍과 그녀를 지켜보는 님을 미행하는 듯한 POV시점으로 느린 속도의 줌-인이나 푸쉬 인-아웃 같은 촬영기법을 통한 관음적 시선과 이를 강조하는 굉음과 고요한 소리 간의 단절성을 활용한 점프 컷을 인서트 하여 궁금증과 불안감을 조성하는 배치로 재구성되는 범존재(ubiquitous)적 편집증에 의한 공포감과 더불어 활동하는 주인공의 불안정하고 시종일관 무던한 표정을 영상화하는 다큐팀 관점의 핸드헬드나 버스트 줌-인 기법으로 개인적 공포감을 전하는 사실적인 연출로, 불가지 한 사건을 동시에 목도하는 님과 같은 랑종들이 바얀 신에 대한 믿음이라는 비호적 존재로서의 비가시적 장막을 위협하는, 내면적 세계에 철저히 고립된 불행한 의식들의 불신과 금기행으로 인해 보편적으로 도사리는 불안감과 불확실성이 생성하는 불멸성이 내포된 판옵티콘적 폐쇄 공포감을 묘출합니다. 오컬트와 코즈믹 호러의 그로테스크하고 기괴함이 이합 된 '추'라는 속성을 내재한 인간이라는 영-유기적 매개체가 불쾌감이 동반된 곡선적 변화로 정적인 분위기에서 동적인 내적 에너지로의 상승과 하강을 연계하는 사실주의적인 변환을 자아냅니다. 특히 어디에나 존재하는 약자, 어린아이, 노인과 같은 외부적 요소들로 인해 순간순간 응감 하며 무성의 성질과 가변성이 공존하는 인간 내면의 공포감을 일상의 재앙을 촉발하는 기능적 장치로 드러내는데, 극 중 주인공 님과 긍정적인 내적 연결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바얀'이라는 수호신으로 '내재화'된 인물들과 그렇지 않은 신에 대한 피상적인 믿음으로 외재화 된 밍을 포함한 '타인'들 사이에서 다큐팀은 그 중간 어딘가에 위치하여 롱 렌즈를 포함한 로우 앵글과 미디엄 샷, 클로즈 업 샷, 풀 샷으로 목격하여 원거리에서 가만히 관조하는 감시자의 격으로 밍이라는 내재적 존재의 외재화 과정을 목도하도록 인도합니다.



또한 영화 <랑종>이 선사하고자 하는 범적 심상은 도덕적으로 터부시 된 개고기를 팔며 영리적 이득을 취하고 밍은 남동생과의 근친 등의 어둠의 이면에 함몰된 이들을 불현듯이 찾아오는 무위와 등치 되는 자연의 냉혹한 중성적 성질로 인해 운명론적으로 발생한 재앙을 묘사함으로써 운명론적 업보의 복선을 암시하고 일상 속 무위한 모나드들을 괴롭히는 악과, 후반부에 가족과 퇴마 의식을 행하는 이들을 옥죄는 악을 처단하는 선이라는 형이상학적 개념이 공존하는 광적인 디스토피아(Pandemonian Dystopia)의 비명소리와, 고통으로 울부짖는 신음소리가 가미된 광적인 레퀴엠을 일관적으로 무관심한 다큐팀의 심리상태를 빌려 구현한다. 필연성을 띄는 우주는 그 누구의 편도 아니며 그저 흘러온 대로 지나가며 그 자연에 귀속되어 있다는 이데올로기에서 볼 수 있듯이 인간이라는 생명체는 단지 영겁회귀를 바라며 생을 유지할 뿐이며, 모든 인간은 보호받고 존중받아야 하는 인본주의적 가치를 부여한 형이상학적 진실과는 멀어지는 원순수성을 내재적 근본으로 삼는 우주는 정도(The absolute way)로부터 전파되는 '공'의 의미를 내포한 현상학적 무력감과 순수성의 대척점에 존재하는 우화와 신화의 범적인 모티프를 페이크 다큐라는 장르적 프레임에 차용하여 믿음과 불신, 그로 인한 죄악에 점철된 모나드들을 암묵적으로 습격할 기회만을 호시탐탐 노리는 소리 없는 투쟁의 심상을 시청각적 불쾌함과 서스펜스와 함께 다수의 일상적 개인이 이합집산한 탈일상적 '신앙'이라는 비정형적 이합의 우주관을 기거로 한 질서에 순종적인 지옥도를 보여줍니다. 영화 내에 등장하는 종교적 부동의 실체로서 여겨지는 관념적 존재의 영원함은 없다는 원환적 구조가 바탕인 실존적 숙명과, 애초에 한 생명의 가치가 선험적으로 정해진 상태에서 탄생한다는 천운적 숙명이라는 동음이의어의 중의적 표현을 빗대어 봤을 때, 숙명 귀속적 우주관은 잠시 동안 내세에 머물러 가는 타인의 선택을 배척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태연하게 받아들이고 본인의 신앙에 관련된 선택에 대해서는 그저 온전히 그에 합당한 책임을 지고 살아가는 것이라는 것을 느린 호흡을 바탕으로 한 톤 앤 매너를 통해 함축한다. 그리고 믿음과 배척, 그리고 책임에 파생되는 희망이라는 생동적 에너지의 탈거를 바탕으로 전속되는 절대적 권능자와 같은 무성의 순환적 순리에 무력화되는 인간 중심적 가치를 파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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