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자 속의 액자. 영화가 끝나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최근 미국 측에서 지금껏 음모론으로만 거론되던 미확인물체, 이를 넘어서 외계 생명체의 존재가 담긴 파운드 푸티지 영상이 그래픽이 포함되지 않은 순수 촬영본이라는 공식 입장을 밝힌 소식이 전 세계를 휩쓸었습니다. 이렇듯 인간 본연의 존재와 궁극적인 목적지에 대해 마치 비어있는 공의 상태인 흰 종이처럼 호기심이 많던 대중의 상상력의 원천이 되는 소재로서 그 위에 떨어져 다양한 형태로 변형되었고, 어디로 어떤 형태로 튈 줄 모르는 우리의 정신-신체 혼합의 일부로서 가변적이고 결과태 사이에 변화무쌍하게 흐르고 있는 구조적인 세계에 확장되어 마치 증강현실처럼 아무것도 없는 흰 캔버스에 칠해진 색들의 결합체처럼 개개인의 상상과 1인칭 시점에서의 주관이 하나의 사실을 만들어내고 그 사실들의 연속이 곧 진실로서 재현되어 그 끝은 비로소 전부 진실로서 상등화되는 과정. 우리에게 주어진 현상이나 사건들과 같은 모양태는 곧 비로소 그 끝을 보여야만 시작됩니다. 마치 끝나도 끝난 것 같지 않은 기묘한 기시감을 형성하는 연장선처럼.
ACT 1
페인트가 굳어 갈라지고 떨어지는 벽에 마련된 빔 프로젝터가 비치되어있어 그 앞을 보게 되면 다른 무엇으로 시선을 분산시킬 수 없다. 하지만 그 앞에는 이와는 대비되는 정갈한 바닥과 극장 좌석처럼 풍요로운 이용감을 제공하는 의자가 있다.
액자 속의 액자. 그림 속의 그림.
우리는 그 어떤 이질감도 느끼지 못하고 마치 그 사실이 진짜인 것처럼, 그 가상 속 세계가 진짜 본인이 겪고 있는 것만큼 생생하게 모든 변화에 극적인 감정을 느끼며 감상을 넘어 상영되는 실제 있었던 사건을 다루는 다큐멘터리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융화의 단계로 접어든다.
초반 실제 배우 밀라 요보비치의 "이것은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다큐멘터리이다"라는 해설과 함께 중립성을 강조하는 문구가 보이면서 우리가 tv라는 일상에서 쉽게 접하는 매체에서 전달되는 그 자체로 거창하고 보지 못했던 멋진 신세계를 마주하는 것이 아닌 개개인이 다양한 플랫폼으로 집에서 혼자 진지하게 몰입하여 영화가 보여주는 상황에 장소를 불문한 '목격자'로서 두 눈으로 직접 보았던 사건들을 전부 놓인 본인의 모습에 희소성을 부여하고 또한 '메시지'로서 성장 잠재력이 농후한 유기체처럼 날 것 그대로의 현상(인물들이 형성하는 일련의 사건들)을 발생하는 그대로 영화 속 인물이 짜인 각본을 흘러가는 대로 따라가며 포착하여 이목을 집중시키고 진실의 유무를 따지도록 유도합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액자 속 액자처럼 가상현실로서 구현한 극적인 상황이 실제처럼 재현되는 인지적 최면에 걸리게 됩니다. 포스 카인드는 영화와 다큐멘터리간에 벌어지는 사실 그대로를 연출과 설계 없이 그대로 찍어 담는 사실감과 현장감이라는 궁극적 목표에 초점을 맞추어 현실에서는 구두로서 존재하는 상상의 음모론을 주인공의 더 나아가 관객이 영화의 흐름과 한 갈래로 같이 흘러가는 것처럼 이끌려갈 때 씬들의 결합으로 순행하는 과정이 보이는 조악한 화질과 tv시사프로그램에서 차용하는 딱딱하고 정형화된 그래픽에 사로잡힌 자막이 겉으로 화려하고 심미적인 균형감이 잡힌 그래픽을 주로 채택하는 영화로서 보기에는 조잡해 보이지만 일반적인 상식에서 벗어나는 설명 불가능한 최면 현상 시, 혹은 박사 주인공이 끝끝내 사라진 그의 딸을 찾기 위한 최면의 과정에서 정신적, 신체적으로 접선한 외계 존재의 실체가 드러나는 종반부에 수많은 글리치 효과를 통해 마치 진짜 촬영되어 나중에 발견된 듯한 파운드 푸티지 콘텐츠인 것처럼 키치 한 분위기를 만들어 실화라는 가상의 시청각적 공간을 가장 익숙한 공간에서 옛날 잡음과 노이즈가 눈에 띄게 보이는 브라운관과 같이 형성하여 가상을 실제처럼 구현하여 제2의 현실을 관객들에게 선사합니다.
'영화의 정갈함과 실제를 담은 다큐멘터리의 순수성의 합일적 경계선'
이밖에도 시사프로그램에서 보이는 병렬구조적 방식을 차용하여 배우들을 동반해 실제 상황을 연출한 대로 보여주어 내재적인 형상화에 도움을 주는 '실화의 재구성' 연출기법과 저화질의 카메라로 포착한 주인공 박사의 인터뷰 장면을 분할화면, 혹은 병렬적 배치 구조를 기반으로 설계한 교차편집 형식으로 연출하여 동시성을 확보하여 인물의 심리적인 변화와 진실을 향한 분주한 이동성을 분할 프레임의 스케일 변화로 시각화함으로써 다큐멘터리에서 결여된 특정 장르만의 속도감 있는 감정 변화의 과정과 감정이입을 말미암아 관객이 등장인물의 피상자로서 긴박감을 느끼게 되어 상황 그 자체를 불안감과 무지라는 원초적인 스릴감으로 쭉 따라가는 '추적극'적인 전개를 주도함과 동시에 영화 밖에는 존재하지 않는 초자연적인 현상인 최면과 빙의현상과 같이 영화에서 관객들이 요구하는 제3의 외계적 존재의 실체로 치환 가능한 매개체가 드러나는 부분인 '재미와 놀이' 단계를 다루는 방식 역시 '날 것 그대로(RAW)'의 속성을 띄는 순수성과 결을 함께합니다. 우리가 모르는 어디선가 이런 일이 있었을 수도 있었겠다는 이야기를 캔버스로 비유 가능한 무대에 재구성하여 '있을 법한'이라는 경계를 절대 넘지 않는 극영화는 미지의 실체를 드러내는 극적인 순간을 정갈하게 표현하여 시각적인 재미를 선사함으로써 시각적 엔터테이너와 액자 속의 액자라는 무한태의 형식에 걸맞은 원초적인 공포로부터 발현되는 인물의 상상과 현실의 혼동인 '반전'이라는 요소를 가미하여 내러티브적 엔터테이너로서의 면모를 십분 발휘합니다. 그와 동시에 우리가 실제 세계에서는 마주하기 힘든 사건들이 고화질의 깔끔한 꾸며짐과 마치 사전에 합의된듯한 계산적인 카메라무빙으로 무장한 채 관객에게 놓여 다소 이질감이 들고 현실과는 동떨어져있다는 어색함이 차별적 요소로 선택할 수 있다면 페이크 다큐의 차별점은 이런 극적인 클라이맥스를 짜인 씨네마틱 카메라 무브먼트를 최대한 자제하고 그 상황이 일어날 것을 모르는 상태에서 믿을 수 없는 것을 말 그대로 궁극적으로 카메라에 담아내는데 집중하는 날 것 그대로 표현한다. 결과적으로 액자 속의 액자처럼 사건이 일어나는 제1의 액자를 카메라에 담는 제2의 액자에 그 모습을 포착하고 있는 제3의 액자로 표현하며 그 연속성을 인식하여 그 상태를 현실처럼 착각하는 신묘한 가변적 체험(잠시 동안 현실과 가상의 경계를 잊어버리고 현실에 있는 본인의 모습이 또 다른 액자에 포착된 존재로서 인식하게 하는 체험)의 기회를 제공합니다.
공간이 한정된 2차원의 스크린에서 원주율처럼 끝이 정해지지 않은 잠재적인 상태에서 다양한 시청자들의 주관을 통해 특정 미제사건에 대한 무수히 많은 생존 가능성을 이어나가면서 영화가 진행될 동안에도, 심지어 영화가 끝이 나도 그 이야기 순행은 계속되며 확장되고, 우리의 일상으로 스며들어 프라모델처럼 거시적인 생각의 틀에 자그마한 부품들이 모여 비로소 작품이 완성됩니다.
FINAL ACT
영화 상영이 끝난 후 주변을 둘러본다. 주변은 비어있는 상태이지만 마치 끝난 영화가 현실에서도 재생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이때 정육면체로 쌓여있었던 상영관 내부가 분해되어 벗겨지면서 우리가 살고 있는 각자의 공간에서 또 다른 현실을 마주한다. 그 현실에는 전에 인식하던 세계보다 더욱 다양한 색과 투사체가 등장하여 더욱 다채롭게 그 빈틈을 채워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