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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m Oct 27. 2022

영화 <서스페리아 2018> 리뷰

시대상의 모든 산물에게 전하는 위로의 한숨

​서스페리아 2018
감독 : 루카 구아다니노
개봉 연월: 2018년 10월 26일 (북미 기준)
2019년 5월 16일 (국내 개봉)
등급: R
러닝타임: 152분​

다리오 아르젠토 감독의 원작 <서스페리아 1977>을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의 독특하고 조금은 현실과 맞닿은 실화와 연계시켜 원작과는 다른 축축하고 눅눅한 냄새를 물씬 풍기는 멜랑꼴리 한 분위기를 내재한 영화 <서스페리아 2018>입니다.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은 <아모르>, <비거 스플래쉬>,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의 욕망 3부작의 기나긴 제작을 끝내고 본격적으로 희망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마치 스크린 속에 정지되어 있는 과거의 시대상을 현실처럼 재구현하여 과거에서부터 전승되어온 비극의 원인과 이런 비극을 만들어낸 사건들을 파헤쳐 그들이 형성해놓은 긴밀한 관계성을 파악하여 아름답고 미적인 과정에 근거한 결과를 내지는 못하지만 굉장히 키치하고 극단적인 방법을 통해 희망과 유사한 재시작의 불씨를 다시 키워놓은 상태에서 현재까지도 그 불씨를 꺼뜨리지 않고 이어나가고 있다는 사실을 간직한 채 실제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의 과거에 영원히 갇히게 된 그들에게 건네는 위로와 공감의 말을 자크 라캉의 말을 빌려 여성성이 내재된 사고방식이 두드러지는 연출로서 전달합니다.

이 영화는 원작의 설정인 무용학원의 탈을 쓴 마녀들의 소굴과 독일의 근현대사 중 비극이라고 널리 알려진 홀로코스트와 동독과 서독으로 나뉜 단절의 이미지를 공유하는 시대에 존재한 바더 마인호프의 테러와 연관된 사회주의 타파 운동과 그로 인해 파생된 비행기 사고를 연계함으로써 드러나는 과거와 현실의 관계성은 비단 극 중 인물들과 말을 전하려는 외연적인 존재 간에서만 형성되는 것이 아닌 본질적인 매개체로서 영화 대 영화로서 과거와 현실의 변화한 시대상을 동시적으로 향유하여 그 이음새를 만들어내어 단절된 독단성이 아닌 비단절적 계승으로서 그 의미를 더하고 있습니다. 즉 현실 속 인물들이 남긴 발자취에 대한 경의이자, 영화 간의 존경심을 묘출하는 오마주적 태도 역시 견주 하고 있습니다. 동시에 영화로서 사회라는 확장적 범위를 축소시켜 대비를 이용한 유사성을 토대로 사회를 가상으로 외연 시켜 압축화하는 형식으로 사건의 병치로 시대를 말하는 전위적인 방법론을 채택하여 이질감이 들지만 동시에 어디에도 없는 영화를 기여코 만들어냅니다.

https://youtu.be/BTZl9KMjbrU

이 영화의 멜로디의 기반이 되는 테마곡

서스페리아의 음악감독인 톰 요크의 가냘픈 목소리로 채워지는 오프닝 시퀀스로 시작하는데, 이 도입부로 영화 전반적으로 어떤 분위기로 극을 이끌어 나갈지 확실히 각인시키며 suspirium (한숨의 마녀)에 대한 온갖 복선을 통해 암시를 하며 빌드업을 시작합니다. 원작과 동일하게 수지가 간 무용학원은 학생들의 정신을 교묘하게 조종하면서 회유하고 세뇌시키는 마녀들의 소굴이며 무용학원이라는 체계에 균열을 일으키는 올가라고 불리는 원자와 같은 존재들을 향해 처형을 집행하는 시퀀스들이 등장하며 위협적인 심상을 각인시킵니다. 이윽고 그 체계 안에 아무 말 없이 그저 유약하고 무력하게 방관하고 가슴 아파하는 이는 소리 소문 없이 자살을 하는 방식을 택하면서 시위와 맥락 관통하는 흐름을 형성하여 점점 그들만의 세계에 균열을 일으킵니다. 이는 할 수 있는 것이 무력이나 죽음을 통해 주체적인 인생에 존재하는 삶이라는 생명적 이미지와 디스토피아적인 심상을 지닌 무력에 의한 억압된 죽음이라는 황무지의 이미지를 간접적으로 등장하는 시위 장면과 무용학원의 처형 및 제물 시퀀스로 철저히 병치시켜 제공합니다. ​

처형과 의식의 이미지 유사성

​아무래도 원작의 리메이크작이다 보니 전반적인 전개 방식이 거의 유사합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연출적인 부분에 집중할 수밖에 없는데, 이 영화의 연출적인 면은 루카 구아다니노가 구현할 수 있는 무용이라는 인간의 육체를 이용하여 마치 마리오네트처럼 마녀들이라는 비가시적인 억압의 속성을 지니고 있는 사회적 시스템에 조종당하며 온갖 잠재성을 짓밟힌 채 그저 그들의 시스템 유지를 위한(무용학원의 전통적인 대를 계속 잇기 위한) 추상적인 사상을 분출하는 이미지로 굉장히 그로테스크한 시퀀스를 형성하고 테러의 시대에 당착한 패트리샤의 오염과 자아의 죽음에 발목을 잡혀 결국 억압과 조종에 잠식되는 장면을 인서트 샷으로 영화를 진행시키고 그 뒤로 소굴을 견고하게 이어온 육체로서 가시적으로 전이된 세월의 흐름을 지닌 휠러라는 인물과 그 시스템 위에 꼭대기로 향하려는 마담 블랑과 이를 경계하는 마르코스파가 진행하는 의식 장면은 선형적 유사성을 자아내어 무용과 마녀의식의 심상을 동일시하여 무용학원이라는 작은 사회 안에 시민처럼 존재하는 학생들을 부품의 일부처럼 다루며 그들을 제물로서 망령들을 이곳에 가두어 젊은 인간의, 특히 생명 순환의 시발점을 만드는 존재인 여성의 혼으로 생기를 불어넣으려는 환원적인 태도를 기반으로 의식을 거행합니다.

​​​극초반에 등장한 영화의 시대적 배경인 동서독의 사회주의 사상의 온상지에 만연한 테러에 평행적 이미지를 부여하여 이곳에 있는 패트리샤와 사라, 그 이외에 존재하는 무용학원의 학생들은 전부 시대상에 불필요하게 발생한 피해자로서 그려지고 이는 자궁이 존재하는 복부 부분의 이분을 통하여 꺼내는 장기를 마치 태아의 탯줄처럼 비추어 재탄생한 시스템의 또 하나의 산물이라는 것을 굉장히 은유적으로 드러냅니다. 그러고 난 후, 무용학원의 시스템을 위협할 마치 갈라진 배속으로 들어갈 것 같은 수지의 직선성이 드러납니다. 그리고 이런 복잡한 구조로 이루어진 조그마한 시스템을 비추는 스크린을 붉게 물들여 마치 시스템의 종말을 암시하는 시퀀스를 시작합니다.


의식 도중, 수지의 가슴을 열어 심장을 드러내고, 그 모습을 마치 여성의 생식기로 나오는 새로운 생명처럼 비추고, 그 부분을 자궁과 일맥상통하는 이미지로 묘출합니다. 그런 후, 견고한 시스템의 산물이었던 마르코스파를 처형하고, 사라와 패트리샤와 같은 피해자들에게는 위로의 말을 건네며 하강적 이미지로 점철된 현세에 육체를 버리고 더 안락한 곳으로 보내줌으로써 강직한 사회통념과 피해자들을 향한 집행과 위로의 성격을 동시에 지니고 있는 의식을 거행하며 그들의 눈물을 착취한 이들의 피로 환원시켜 되갚아주며 의식을 끝내면서 수지는 모두가 몰살된 황무지에서 새로운 이로서 생명을 탄생시키는 순환의 과정을 새로이 시작합니다.

홀로코스트에 고통받던 이들에게 위로를 건네는 생명순환적 이미지의 의식

이 부분을 이니셜이 새겨진 하트 모양을 익스트림 클로즈 업으로 잡으며 참상을 마주한 스크린도 눈을 감으며 새로운 세상을 향한 상승적 이미지를 품으며 엔딩 크레디트를 보냅니다. 그리고 끝에 쿠키 영상에는 사라와 패트리샤가 도달한 수지의 품에 도착하며 위로의 의미가 스크린 밖으로 확장되며 스크린 밖에 제삼자로서 존재하는 관객 또한 바라봅니다. ​


새벽에 보면 더욱 칙칙하고 심연에 빠져들 것 같은 느낌을 잘 받을 강렬한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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