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은 문으로 찾아왔다. 그것은 평범한 나무문처럼 보였지만, 가까이 다가갈수록 기묘한 문양들이 빛을 발하며 꿈틀거렸다. 뱀이 꼬리를 물며 원을 이루는 형상, 끝없이 추락하는 듯한 새의 날갯짓, 그리고 그 중앙에는 내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나는 그 문 앞에 서 있었다. 문은 반쯤 열려 있었고, 그 안에서 무언가 미묘하게 흘러나왔다. 바람 같기도, 오래된 음악 같기도 한 그 소리는 나를 부르면서 동시에 밀어냈다. 그리고 문 옆에는 한 사람이 서 있었다.
“들어가야 해,” 그녀가 말했다. 낮은 목소리가 공간을 울렸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당연하다는 듯이.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녀는 내 어머니였다. 아니, 어머니 같으면서도 어머니가 아니었다. 목소리와 눈빛은 분명 익숙했지만, 그녀의 존재는 어딘가 뒤틀려 있었다. 생전에 보던 모습보다 더 젊고 선명하면서도, 이상하게 투명했다. 그녀의 발끝에서부터 희미한 빛이 번지며 땅과 섞이고 있었다.
“왜 거기 서 있어?” 그녀가 한 발짝 다가왔다. “여기까지 온 걸 보면 준비는 된 거잖아.”
준비. 나는 그 단어가 기이하게 어색하게 들렸다. 아무도 죽음에 준비된 적은 없었다. 설령 그것이 예고된 것이라 할지라도, 우리는 언제나 어떤 방식으로든 살아있기를 믿는다. 그러나 나는 지금 이곳에 서 있었다. 문 앞에, 어머니 같으면서도 아닌 사람 앞에.
“나는 준비되지 않았어,” 나는 속삭이듯 말했다. “아직 해야 할 일이 많아. 사과도 해야 하고, 고백도 해야 하고, 무엇보다 살아야 해.”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그런 생각은 누구나 해. 살아 있는 동안엔 항상 미완성이니까. 하지만 네가 여기 있는 이상, 선택은 네 것이 아니야. 이건 받아들여야 하는 일이야.”
그때 문이 스스로 조금 더 열렸다. 문틈 사이로 시커먼 공기가 한 줄기 뻗어 나와 내 발을 감쌌다. 공기는 차가운 손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그 안에서 무언가 움직이고 있었다. 그림자 같은 형체들이 문 너머에서 날카로운 울음소리를 내며 뒤엉켰다.
“저건 뭐야?” 나는 뒤로 물러섰다.
“네가 놓아버린 것들.” 그녀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그 안에 묘한 조소가 섞여 있었다. “너는 여기에 올 때 이미 무언가를 잃고 온 거야. 네가 무엇을 놓았는지 기억해 봐.”
나는 문 안쪽을 들여다보았다. 그곳에는 내가 사랑했던 사람들, 잃어버린 기회들, 말하지 못한 진실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날아다니고 있었다. 그것들은 서로를 물어뜯으며 아귀같이 비명을 질렀다.
“나는 준비되지 않았어,” 나는 다시 말했다. 하지만 이번엔 목소리가 떨렸다.
그녀는 내 손목을 잡았다. 그 손길은 따뜻하지도, 차갑지도 않았다. “갈등하지 마. 네가 무엇을 놓쳤든, 이제 돌이킬 수 없어. 여기로 왔다는 건 이미 선택한 거야.”
“내가 선택한 적 없어!” 나는 소리쳤다. 그러나 그녀의 손아귀는 더 강해졌다. 문 너머에서 한 목소리가 들렸다. 그것은 내 목소리였다. 그러나 내가 아닌 듯한, 낯선 억양이었다.
“들어와.”
그 목소리는 단순히 말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명령이었다. 강렬하고 저항할 수 없는 힘으로 나를 끌어당기고 있었다. 문틈으로 나를 끌고 가는 힘이 점점 강해졌다. 발밑에 검은 줄기 같은 것들이 솟아올라 나를 붙잡았다.
“문을 넘는 건 끝이 아니야,” 어머니는 속삭였다. “그건 네가 살아온 삶의 대가야. 네가 그 문 너머에서 무엇을 보게 될지는, 결국 네가 만들어 온 것들에 달려 있어.”
문이 갑자기 더 활짝 열렸다. 그 안에서는 끓어오르는 듯한 불빛과 얼음처럼 차가운 공기가 엇갈렸다. 나는 그 문턱에서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죽음은 우리가 살아온 삶의 그림자일 뿐 아니라, 우리가 버리고 온 것들의 심판이었다. 그리고 그 심판의 끝에서야 비로소 새로운 문이 열린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