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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

by 박요한


나의 이름은 이네아.

나는 늘 세상과 조금씩 엇박자를 내며 살아왔다. 사람들은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어울리지 못하는 사람이라 불렀다. 하지만 나는 생각했다. 어울릴 필요가 없다고. 나는 달랐다. 나의 다름은 불편함이 아니라 어떤 신비였다. 다른 이들이 보지 못하는 세계의 숨결을 느낄 때마다, 그 신비는 내 안에서 작고 뜨겁게 부풀어 올랐다.

“왜 그렇게 혼자 있길 좋아해?”

사람들이 내게 묻는 질문은 언제나 똑같았다. 하지만 나는 그 말에 답하지 않았다. 내가 답을 내릴 필요도 없었다. 그들은 내 세계를 이해할 수 없었다. 내가 세상을 이해하지 못하는 만큼, 그들 역시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고독은 차갑지 않았다. 오히려 고요 속에 웅크릴 때면 몸 안에서 희미한 음악 같은 것이 흘러나왔다. 그 소리는 나를 단단히 감쌌고, 현실을 떠나 다른 세계로 인도했다. 나는 확신했다. 내가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 이유는, 내가 어디선가 오고 있다는 증거라고. 언젠가 그 세계가 나를 데리러 올 것이다.

달빛이 마을을 비추던 그날 밤, 모든 것이 시작되었다.

그날 나는 집단 속에서 흘러나오듯 빠져나와 숲으로 향했다. 그 숲은 내 유일한 피난처였다. 오래된 나무들은 침묵의 언어로 나를 이해해 주었고, 나는 그들의 그늘 아래에서만 편안히 숨을 쉬었다.

하지만 그날 밤은 달랐다. 공기가 이상하게 떨리고 있었다. 달빛은 종잇장처럼 얇게 나무 위에 내려앉았고, 숲은 무언가를 기다리는 듯 숨죽여 있었다.

그때였다. 바람이 내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다.

“이네아…”

그 소리는 분명히 바람이었지만, 동시에 바람이 아니었다. 그것은 나를 부르는 목소리였고, 나는 두려움과 호기심 사이에서 한 발짝 내디뎠다.

그러자 땅이 울렸다. 내가 서 있는 발치에서 금빛이 퍼져 나왔고, 그 빛은 순식간에 거대한 문을 그려냈다. 문은 이 세상에서 볼 수 없는 정교한 문양들로 뒤덮여 있었다. 나무와 별과 눈 모양이 새겨진 손잡이를 붙들고, 나는 망설임 없이 문을 열었다.

문 너머는 내가 알던 세상과 전혀 달랐다.

하늘은 보랏빛으로 뒤덮여 있었고, 나무들은 검은빛을 내뿜으며 빛났다. 공중에는 물고기 같은 생명체들이 물결치듯 떠다녔다. 그들은 날개 대신 빛으로 이루어진 꼬리를 휘날렸고, 그 꼬리가 스치자 공기에서 달콤한 향기가 피어났다.

나는 숨을 삼켰다. 여긴 내가 알던 현실이 아니었다.

“여긴 어디지…”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긴 네가 속한 세계야.”

뒤돌아보자, 나와 똑같은 얼굴을 한 소녀가 서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나와 달랐다. 그녀의 눈빛은 깊고 어두운 비밀을 품고 있었다.

“너는 누구야?”

“나는 너야. 그리고 너는 나야. 이네아, 너는 네가 어디에 속해 있는지 모르고 있었을 뿐이야. 네가 찾아 헤매던 특별함은 여기 있어.”

그녀는 손을 뻗어 내 손을 잡았다. 그녀의 손끝은 차갑고 단단했지만, 동시에 따뜻했다.

그녀의 손에 이끌려 나는 그 세계를 걸었다.

나무들은 우리가 지나갈 때마다 속삭였다. 그 소리는 언어가 아니었지만 모든 것을 설명해 주는 듯했다. 나는 그제야 깨달았다. 내가 고독 속에서 불편하지 않았던 이유는, 이 세계가 내 안에 숨어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내가 세상에서 ‘다르다’고 느꼈던 모든 순간은, 이 세계가 나를 향해 속삭였던 신호였던 것이다.

하지만 이곳에도 규칙이 있었다. 공동체가 있었다. 나는 그곳에서 외롭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의 말이 떠오를 때마다 마음 한구석이 먹먹해졌다.

“이네아, 특별함은 혼자만의 것이 아니야. 우리가 함께할 때 그 특별함은 더 강해져. 너는 여기서도 어울릴 줄 알아야 해.”

나는 그제야 깨달았다. 내가 평생 느껴온 고독과 거리감은 특별해지고 싶다는 욕망이 아니었다. 그것은 진짜 나를 찾고 싶은 갈망이었다. 내가 진짜로 속할 세계, 진짜로 어울릴 수 있는 공간을 향한 희망이었다.


나는 이제 이곳에서 살아간다.

고독은 여전히 나의 일부다. 하지만 이제는 그 고독이 나를 가둔 벽이 아니라 나를 지키는 고요함이라는 것을 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나는 이 세계와 어우러진다. 내가 가진 신비로움은 혼자가 아니라 함께일 때 비로소 빛난다는 것을 알았으니까.

나는 이제 더 이상 떠도는 존재가 아니다. 이 세계와 나는 하나가 되었고, 그 안에서 나를 찾아간다.

고독 속에서 혼자라는 것은, 다른 목소리들을 불러오는 일이었다. 그 세계에서 나는 더 이상 외롭지 않았다. 아니, 외로움 자체가 모양을 바꾼 것이었다.

어느 날 밤, 보랏빛 하늘 아래, 나는 다시 숲 가장자리로 걸어갔다. 나무들은 바람에 속삭이는 듯했고, 공중을 떠다니는 물고기들이 나를 따라 움직였다. 공기에는 낯설고 익숙한 냄새가 섞여 있었다.

“왜 그렇게 나약하게 굴어?”

낮고 거친 목소리가 내 등 뒤에서 들려왔다. 돌아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것은 나였다. 하지만 나와 같지 않았다.

그녀는 어둠 속에서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나와 같은 얼굴, 그러나 입가에는 냉소가 서려 있었다. 눈동자는 날카로운 칼날 같았다.

“넌 이 세계를 얻었으면서도 여전히 혼란스러워하네. 네가 원하던 특별함을 손에 넣었잖아. 그런데 왜 만족하지 못해?”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녀는 내 마음을 꿰뚫어 보고 있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더 많은 ‘나’들이 나타났다.

어느 날은 한껏 유쾌한 얼굴로 웃는 내가 나왔다. 그녀는 모든 것을 즐기고 있었다. 나의 고독조차도.

“고독은 얼마나 멋진 선물이야. 혼자라는 건 세상을 마음대로 조각할 수 있다는 뜻이야. 다른 사람들의 기대나 규칙에 얽매이지 않아도 되잖아. 넌 진짜 자유를 가졌다고.”

그러나 그날 밤, 또 다른 내가 나타났다. 이번엔 작고 연약한 소녀 같은 모습이었다. 그녀의 눈은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이네아, 우리가 여기 있어도 되는 걸까? 이곳은 정말 우리의 자리일까? 네가 우리를 잘못된 길로 끌어들이고 있는 건 아닐까?”

그녀의 목소리는 떨렸다. 내 안에서 파고드는 의심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그들은 내 안에서 끊임없이 싸웠다. 냉소적인 나, 유쾌한 나, 두려워하는 나. 그들은 내가 걸어가는 길 위에서 서로를 물어뜯고 있었다.

“넌 너무 약해. 고작 두려움 때문에 이 세계를 떠나겠다고?”

“자유로울 수 있다는 건 얼마나 멋진 일이야. 네가 왜 그렇게 고민하는지 모르겠어.”

“하지만 이곳이 틀렸다면? 우리가 모두 잘못된 선택을 하고 있다면?”

그들의 목소리가 얽히고설켜 내 머릿속에 메아리쳤다. 그날 밤, 나는 도저히 견딜 수 없어 숲 한가운데로 뛰어나갔다. 보랏빛 하늘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있었다. 공중의 물고기들은 모습을 감췄고, 나무들은 고요하게 죽은 듯 서 있었다.

나는 숨을 헐떡이며 땅에 무릎을 꿇었다. 내 안의 목소리들이 울려 퍼졌다. 그들은 점점 커져 갔고, 마치 온 몸을 갈가리 찢어놓을 것 같았다.

그때였다.

“이네아.”

가장 조용한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고개를 들어보았다.

그곳에는 또 다른 내가 서 있었다. 그녀는 아무런 감정도 없는 평온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눈동자에는 깊은 어둠이 잠겨 있었다.

“너는 지금 네 자신을 이해하려고 하고 있어. 그래서 우리를 불러냈어. 하지만 기억해. 우리 모두 너야. 그리고 네가 우리를 어떻게 다룰지는 너에게 달려 있어.”

그녀의 말은 칼처럼 날카로웠다.

“고독 속에서 너는 우리를 만들어냈지만, 우리에 휘둘릴 필요는 없어. 특별함은 우리를 갈라놓는 게 아니라 우리를 하나로 묶는 힘이야. 우리 모두를 받아들이고, 나아가야 해.”


나는 그녀를 바라보며 떨리는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다른 나들, 냉소적이고 두려워하고 유쾌했던 나들이 천천히 내 주위로 모여들었다.

나는 그들을 하나씩 바라보았다. 그들은 모두 나였다. 고독 속에서 태어난 나의 얼굴들, 나의 목소리들.

그날 밤, 나는 스스로를 하나로 묶어냈다.

내 안에서 울려 퍼지던 목소리들은 조용해졌고, 나는 고요 속에서 다시 걸을 수 있었다. 고독은 더 이상 나를 찢어놓지 않았다. 그것은 내 안에서 하나의 세계로, 조화로 바뀌었다.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특별하다는 것은 모든 것을 배제하고 혼자가 되는 것이 아니었다. 고독조차 나의 일부로 받아들이며, 내 안의 모든 나를 품는 일이었다.

그렇게, 나는 고요속에서 나를 완성해 갔다.

고요 속에서 눈을 뜬 순간, 나는 현실로 돌아왔다.

숲은 여전히 오래된 나무들로 둘러싸여 있었고, 밤공기는 차갑고 조용했다. 문도, 보랏빛 하늘도, 공중을 떠다니던 물고기도 모두 사라졌다. 하지만 내 안에서 느껴지던 묵직한 무언가는 여전히 남아 있었다.

나는 모든 것을 기억했다. 그 세계에서 만난 나의 목소리들, 얼굴들. 고독 속에서 만들어낸 나의 조각들. 그들을 하나로 받아들이고 나서야 나는 완전해졌다. 하지만 그 완전함이 현실로 돌아온 후에도 유지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었다.

현실은 언제나 뚜렷했다. 그리고 뚜렷함 속에서 나는 흔들렸다.

마을로 돌아온 나는 사람들의 시선 속에 다시 섰다. 그들은 여전히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아니, 이번에는 내가 그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너 요즘 왜 그래?”

익숙한 목소리가 귓가를 때렸다. 친구였던 사람, 가족이었던 사람들이 날 바라보는 눈빛은 섬뜩할 만큼 차가웠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할 수 없었다. 내가 그들의 세계를 떠났다는 것을 설명할 수 없었으니까.

어느 날, 나는 길을 걷다가 돌연 소리쳤다.

“왜 그렇게 나약하게 굴어?”

그 목소리는 내가 낸 것이었다. 하지만 내 의지가 아니었다. 냉소적인 내가 현실로 스며들어 내 입술을 열고 있었다.

사람들은 나를 놀란 눈으로 바라보았다. 누군가는 두려움에 뒷걸음쳤고, 누군가는 나를 이상한 사람 취급하며 고개를 저었다. 나는 그들의 시선 속에서 얼어붙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내 안의 목소리들은 현실 속에서도 모습을 드러냈다.

가장 평범한 대화 속에서도 유쾌한 나는 웃음을 터뜨리곤 했다. “괜찮아! 세상은 이렇게 재밌잖아!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마!”

그러나 그 뒤에는 두려워하는 내가 속삭였다. “그게 맞는 걸까? 이 길이 틀렸다면? 우리가 여기 있어도 되는 걸까?”

그 목소리들은 겹겹이 쌓여 나를 갉아먹었다. 사람들과 대화하다 보면 어느 순간 내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웃고 있었던 것 같은데, 그게 내가 아니었다. 나는 냉소적인 나와 두려워하는 나, 유쾌한 나 사이에서 끊임없이 균형을 잃어갔다.

한밤중, 거울 앞에 서 있던 나는 거울 속에서 웃고 있는 나를 보았다.

하지만 나는 웃고 있지 않았다. 거울 속의 나는 나를 비웃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럴 줄 알았어. 넌 결국 실패했어. 그 세계를 떠나오더니 이렇게 망가져버렸지.”

나는 거울을 향해 손을 뻗었지만, 손이 떨려 멈췄다. 거울 속에서 또 다른 내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우리는 괜찮지 않을 거야. 모든 게 잘못됐어. 우리가 여기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거울 속의 나는 셋이었다. 냉소적이고 조롱하는 나, 불안으로 가득 찬 나, 그리고 그 뒤에 희미하게 웃고 있는 유쾌한 나. 그들이 현실 속으로 침투한 것이다.

나는 소리를 지르며 거울을 쳤다. 깨진 거울 조각들이 바닥에 흩어졌지만, 나는 내 얼굴을 볼 수 없었다. 그것은 안도였다.

사람들은 점점 나를 피했다. 그들은 내 안에서 뒤섞이는 목소리들을 알지 못했고, 나는 그들에게 내 혼란을 설명할 수 없었다. 그들은 단순히 나를 이상하다고 여겼다.

“그만해! 너 자신 좀 제대로 챙겨!”

누군가 내게 소리쳤다. 하지만 나는 그 말에 답할 수 없었다. 그때 내 안에서 또 다른 목소리가 속삭였다. “너는 왜 설명하려고 해? 넌 원래 그들과 달라. 네 자리는 여기가 아니야.”

그 목소리는 진실 같았지만 동시에 거짓 같았다. 나는 점점 더 깊은 혼란 속으로 빠져들었다.

어느 날 밤, 나는 다시 숲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문을 찾으려 했다. 문은 보이지 않았다. 문은 내가 떠나온 세계에만 존재했다. 하지만 나는 알았다. 문이 없어도, 그 세계는 여전히 내 안에 있다는 것을.

나는 고요한 숲 한가운데 서서 속삭였다.

“조용히 해. 다들 조용히 해.”

내 안의 목소리들은 하나씩 잠잠해졌다. 냉소적인 나, 두려워하는 나, 유쾌한 나, 그리고 고요한 나. 나는 그들에게 말했다.

“내가 너희를 받아들였듯, 너희도 나를 받아들여. 우리는 함께 갈 거야.”

그 순간, 숲의 나무들이 흔들리고 바람이 불었다. 마치 그 세계가 나를 부르는 듯했다. 하지만 나는 문을 찾지 않았다. 나는 이제 알았다. 내가 있는 곳이 그 세계의 일부라는 것을. 현실과 고독, 그리고 내 안의 나들이 모두 하나로 이어져 있다는 것을.

사람들은 여전히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는 괜찮았다. 그들이 이해하지 못해도 나는 내 안의 혼란과 갈등을 안고 살아갈 수 있었다. 나는 나의 조각들과 함께 걸어가기로 했다. 냉소도, 두려움도, 유쾌함도 모두 나였다.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특별함이란 완벽함이 아니라, 모순을 품고 살아가는 힘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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