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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새

by 박요한


찬란한 저녁노을 아래, 철새 두 마리가 강가에 앉아 있었다. 저녁빛은 그들의 깃털에 녹아들어 연한 황금빛으로 물들었고, 바람은 물결처럼 그들의 몸을 감쌌다. 수컷은 긴 날개를 접고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날의 하늘은 깊고 푸르렀지만, 그의 눈에 비친 것은 어제와 다르지 않았다. 암컷은 그의 옆에서 강물을 응시했다. 물 위로 잔잔히 흔들리는 별빛은 마치 그녀의 마음속에 가라앉은 질문처럼 조용히 퍼지고 있었다.

“이 강도 이제 마지막인가 봐.” 암컷이 말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물결처럼 잔잔했으나 끝자락에는 보이지 않는 금이 가 있었다.

수컷은 대답 대신 깃털을 털었다. 그의 마음속에는 바람처럼 무수한 생각들이 불어닥쳤지만, 한 마디도 입 밖으로 꺼낼 용기가 없었다.

“우리는 늘 하늘을 사랑했는데,” 암컷이 다시 말했다. “그 하늘이 이제 이렇게 멀게만 느껴질 줄은 몰랐어.”

수컷은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하늘은 늘 거기 있었어. 멀어진 건 우리가 아니야?”

그녀는 그의 말에 대꾸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의 눈동자 속에는 작은 물결이 번졌다. 강물이 흔들릴 때마다 그녀의 시선도 흔들렸다.



“기억나? 처음 우리가 이 강가를 날아올랐던 날.” 암컷이 말을 꺼냈다. “그날 바람이 얼마나 따뜻했는지.”

수컷은 가볍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그 바람을 ‘부드러운 이불 같다’고 했지.”

“근데 너는 그때 뭐라고 했는지 기억 안 나? ‘이불도 너무 부드러우면 질식한다’고 했잖아. 참 너답지.”

그의 웃음이 깊어졌다. “그게 뭐 어때서. 난 그게 사실이라고 생각했어. 지나치게 부드럽고 따뜻하면, 숨이 막히잖아.”

“그럼 지금 이 상황은 어때? 이건 숨이 막히지 않아?” 그녀가 물었다.

수컷은 답하지 않았다. 그의 침묵은 바람 속에 녹아들었고, 그 바람은 둘 사이의 공간을 거칠게 흩뜨렸다.

“너랑 나는 항상 어긋났던 것 같아.” 그녀가 말했다. “넌 늘 바람을 향해 날아갔지만, 난 바람을 피하려 했거든.”

“어긋난 게 아니야,” 수컷이 천천히 대답했다. “우리는 같은 하늘 아래 있었어. 그게 전부야.”

“같은 하늘 아래 있어도 서로 다른 방향을 본다면, 그건 같은 하늘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녀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넌 항상 그런 식이야. 철학자처럼 말하면서 정작 중요한 건 제대로 못 봐.” 그녀가 말했다.

“중요한 게 뭔데?” 수컷이 반문했다.

“우리가 왜 이렇게까지 왔는지 말야.”

그는 살짝 한숨을 쉬며 고개를 돌렸다.

“그거야, 네가 자꾸 물고기를 고르고 또 고르다가 시간을 다 보내버린 탓 아니었어?”

“물고기를 고른 게 아니라, 네가 너무 작은 걸 잡아왔기 때문이지!” 그녀가 콧방귀를 뀌었다.

“작아도 정성은 담겨 있었잖아.” 그는 억울하다는 듯 말했다.

“그 정성도 하늘에 날아가버렸나 봐.” 그녀는 씁쓸하게 웃으며 강물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그렇게 유치하고도 서글픈 대화를 나눴다. 서로의 말이 상대를 향한 핀잔이기도 했고, 동시에 마지막으로 나눌 수 있는 친근함의 표현이었다.

해가 저물고, 강물 위로 별빛이 흩뿌려졌다. 수컷과 암컷은 서로를 향해 마지막으로 시선을 마주쳤다.

“네가 없는 하늘은 어떨까.” 수컷이 조용히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갈대숲을 스치는 바람처럼 낮고 부드러웠다.

“아마 더 조용하고 평화롭겠지.” 그녀가 답했다. 하지만 그 말끝에는 보이지 않는 미소가 섞여 있었다.

“네 하늘은 어때? 내가 없으면 더 자유롭겠네.”

“아니.” 그녀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마 더 심심할 거야. 네가 남기고 간 흔적들이 자꾸 떠오를 테니까.”

그들은 동시에 날개를 펼쳤다. 수컷은 그녀의 깃털을 한 번 스쳤고, 그녀는 그의 날개 끝에 살짝 부리를 가져다 댔다. 그것은 인사이자 작별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서로 다른 방향으로 날아올랐다. 하늘은 여전히 넓었고, 바람은 변함없이 그들을 감쌌다. 하지만 그 바람 속에는 이제 더 이상 그들이 함께 머물렀던 온기가 남아 있지 않았다.

멀어지는 그녀를 바라보며 수컷은 생각했다.

‘우리가 다른 길을 간다 해도, 언젠가 같은 바람 속에 다시 머물겠지.’

그녀 역시 멀어지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속삭였다.

‘너는 잊지 못할 거야. 우리가 지나간 모든 하늘과 모든 바람을.’

그들이 지나간 하늘은 어둠 속에 잠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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