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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벽의 침묵

by 박요한

절벽의 침묵

바람은 절벽 위를 쓸고 지나가며 귓가에 날 선 속삭임을 흘렸다. 오래도록 잊혀진 이곳, 주차장이라 부르기엔 낡고 거칠어진 공간은, 몇 해 동안 단 한 사람도 머물지 않았을 것이다. 절벽 아래로는 파도가 무너져 내리듯 거세게 부딪혔다. 바다의 울림은 끝없는 밑바닥에서 솟아오르는 비명이자, 허공 속으로 녹아드는 한숨이었다.

그 적막을 깨트리며 빨간 차량이 천천히 들어섰다. 라이트를 끈 채로 스르륵 미끄러져 들어오는 모습은 어딘가 익숙하면서도 낯설었다. 차량의 윤곽은 바람에 닳아버린 이 공간과 맞지 않는 선명함을 품고 있었다. 그 붉은색은 마치 오래된 필름 사진 속에 남은 핏빛 잔상처럼 주변의 모든 것을 빨아들일 기세였다.

차가 멈춰 섰다. 모든 것이 정지된 듯한 순간, 차 안에서 움직임은 없었다. 그저 바람 소리와 파도 소리가 붉은 차의 차창에 부딪혔다. 한참이 지나 조수석 문이 천천히 열렸다.

그는 내려섰다. 흙먼지가 굳어 박힌 등산화가 땅에 닿는 순간, 낡은 금속이 부딪히는 소리가 고요 속을 깨웠다. 그가 입은 코트는 지나치게 각진 카라가 서늘한 빛을 띠었고, 그의 중절모는 시간이 멈춘 듯 70년대의 어느 시절을 품고 있었다. 그는 트렁크를 열어 커다란 카메라 가방을 꺼냈다. 무거운 가방을 든 그의 손끝에는 어딘가 쓸쓸하면서도 단호한 떨림이 있었다.

주머니 안에서 동전들이 서로 부딪히며 희미한 금속음이 울렸다. 그 소리는 절벽 위 주차장의 고요를 가로질러, 마치 오래전 이곳을 떠난 누군가의 발소리를 흉내 내는 것 같았다.

그는 절벽 끝으로 걸어갔다. 발걸음은 확고했지만 어딘가 천천히, 마치 그가 밟는 매 순간이 무언가를 작별하는 의식처럼 느껴졌다. 그의 발자국은 이미 굳어진 흙과 섞이며 절벽의 가장자리에 닿았다. 아래로는 한없이 깊고 검은 물결. 바다는 낮게 울부짖으며 무언가를 삼키기를 기다리는 포식자처럼 보였다.

그는 그곳에 서서, 바람과 파도 속에 가라앉은 듯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태어나서 죄송합니다.”

그 한 마디는 바람에 휘감겨 어디론가 사라졌다. 하지만 남긴 여운은 절벽과 붉은 차량, 그리고 바다 위로 길게 퍼져나갔다. 그는 더는 말하지 않았다. 그저 절벽 끝으로 몸을 기울이며, 천천히, 천천히 아래로 발을 내디뎠다.

첨벙.

절벽과 바다, 그리고 주차장 전체를 울리는 거대한 소리가 적막을 찢어 놓았다. 그러나 그 울림은 이내 고요 속으로 다시 흡수되었다. 붉은 차량은 여전히 그곳에 남아 있었다. 차가운 바람이 차창을 핥았고,

바다의 울음소리가 다시금 절벽을 두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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