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삶이 끝나는 순간, 남자와 여자는 각기 다른 빛줄기에 휩싸였다. 그 빛은 서로 다른 세계로 그들을 이끌었다. 죽음의 문턱에서 그들은 같은 방향으로 날아가리라 믿었지만, 각자의 믿음은 그들을 다른 길로 내던졌다. 눈을 뜬 곳은 상반된 세계였다.
남자의 죽음
남자는 공허 속에서 떠 있었다. 그는 아무것도 느낄 수 없었다. 시간을 잃었고, 공간의 경계를 벗어났다. 주변에는 그저 무의미한 어둠만이 펼쳐져 있었다. 아무것도 없어서, 그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손을 흔들어보지만 손끝은 공기 속에서 사라졌다. 발을 디딤에도 발이 어디에 닿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저 공허 속에서 떠돌며 흘러가고 있었다.
“이게 내가 믿었던 대로구나.” 그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죽음 뒤엔 아무것도 없을 뿐.” 하지만 그가 원하던 그 아무것도 없던 공간이란,
그에게 그렇게 무겁게 다가올 줄은 몰랐다.
그의 존재가 흐려지고 있었다. 그가 느끼는 모든 감각은 점점 사라져갔다. 그는 점점 더 가벼워졌다. 가벼운 기체처럼, 무중력 속에 떠도는 기분이었다. 존재하는 것조차 괴로워졌다. “그렇다면… 내가 이곳에 존재한다는 건, 그저 ‘없음’의 형태인가?”
그는 이를 악물고 한 가지 시도를 했다. 말을 해보려 했지만, 목소리조차 허공에 흩어져 버렸다. 그는 자신을 다그쳤다. “여기서 아무것도 찾을 수 없다면, 존재를 느낄 수 없다면, 도대체 내가 무엇을 위해 존재하고 있는 거지?” 그의 눈앞은 끝없이 펼쳐진 회색의 무질서였다.
여자의 죽음
한편, 여자는 황금빛 들판과 푸른 강물로 가득한 천국 속에서 깨어났다. 그녀의 손끝에서 하늘로 이어지는 강물이 흘렀고, 공기는 한없이 맑았다. 그녀는 미소 지었다.
“내가 말했잖아. 믿는 대로 이루어진다고.” 천국은 완벽했다.
하지만, 아무리 완벽해도, 아무리 아름다워도, 여자는 점차 그 완벽함에 지루함을 느꼈다. 그녀는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곳에서 무엇인가 빠져 있다는 느낌을 떨칠 수 없었다.
“이게 도대체 뭐지?” 그녀는 혼잣말을 했다. “천국이 너무 조용하다.” 그녀는 자신의 목소리를 길게 울려보았지만, 그 반향은 물리적으로 존재할 수 없는 것처럼 단 한 번도 되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이곳에서, 그와 함께 있는 것만큼 기쁨을 느끼지 못한다.”
천국에서, 모든 것이 그녀의 명령대로 이루어졌다. 사랑하는 사람이 그곳에 있었다면 좋았을까? 하지만 그 자리는 공허로 남아 있었다.
여자는 결단을 내렸다. 천국의 규칙을 깨기 위해, 그녀는 스스로 믿었다. “내 천국은 그와 다시 만나는 곳이어야 해. 사후세계의 법칙도 내 믿음대로 바뀔 거야.”
그 순간, 그녀의 천국은 미세하게 흔들렸다. 그리고 어두운 통로가 열리며, 그녀는 그 어두운 길을 걸어갔다. 그 길 끝에서, 그녀는 남자를 만났다.
그가 떠 있던 회색빛 공허 속에서, 그녀는 황금빛으로 빛났다.
“너, 왜 여기 있어?” 남자가 물었다.
“너 없는 천국은 아무 의미가 없었어.” 그녀는 말했다.
“이곳은 너의 천국이 아니야. 여기에 아무것도 없잖아?”
“그렇다면, 이제 너와 함께라면 여기가 내 천국이 될 거야.”
그 순간, 그들의 대화는 공허의 벽을 흔들기 시작했다. 공간에 균열이 생기며, 그들 주위에 금속적인 구조물이 스며들었다. 기계의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게 뭐야?” 남자가 당황하며 물었다.
“우린 죽은 게 아니야.” 여자가 깨달았다. “이건 우리가 상상한 사후세계가 아니야. 이건 실험이야.”
기계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피험자 #042와 #043, 실험 종료. 프로그램에서 탈출하려는 시도를 감지. 시스템 재부팅 중…”
순간, 그들의 기억이 빠르게 복구되었다. 그들은 사실, 인간의 사후세계에 대한 믿음을 분석하기 위해 설계된 시뮬레이션의 참가자였다. 모든 것은 실험이었고, 그들은 서로 다른 신념을 가진 피험자로서 실험을 받았다.
시뮬레이션이 종료되고, 그들은 실험을 관찰하던 과학자들과 마주하게 되었다. 과학자들은 그들에게 말했다.
“실험 종료 후, 원래 삶으로 돌아가거나 이곳에서 새로운 삶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다시 공허로 돌아가는 건 싫어.” 남자가 말했다.
“그리고 나는 네가 없는 천국에는 돌아가지 않을 거야.” 여자가 웃으며 대답했다.
그들은 동시에 대답했다.
“우리는 함께 있을 거야.”
과학자들은 잠시 침묵을 지킨 후,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들은 새로운 시뮬레이션에 들어갔다. 그곳은 공허도 아니었고, 천국도 아니었다. 그것은 그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세계였다.
그곳에서, 그들은 신념이 아닌 서로의 존재가 진정한 의미임을 깨달았다.
공허에서, 그들의 존재는 무한히 확장되었고, 그들은 현실을 넘어선 곳에서 다시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