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단편집

새벽

by 박요한


끝없이 고요한 새벽.

눈을 떴다.

심장은 천천히 움직였고, 창밖의 바람은 아무것도 흔들지 않았다.


며칠째, 아니 더 오래 전부터 그는 돌을 던지듯 감정을 깊은 곳으로 가라앉혀 왔다.

기쁨은 한 번, 슬픔은 또 한 번.

질투, 아픔, 지루함, 부끄러움, 피곤까지.

하루마다 하나씩 심연으로 가라앉혔다.


이제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가슴 속은 텅 비어, 돌이 부딪히는 소리조차 나지 않았다.


천장을 바라보다가 거울 앞에 섰다.

낯선 얼굴이 그를 응시했다.

빛도, 그림자도 묻지 않는 얼굴.

눈과 코와 입은 단지 윤곽일 뿐, 표정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는 손끝으로 얼굴을 더듬었다.

피부는 살아 있었으나, 살아 있음의 증거는 보이지 않았다.

눈동자는 닫힌 호수 같았다.

입술은 말의 흔적을 지운 흙처럼 말라 있었다.


거울 속의 그는, 그가 아니었다.

그의 자리는 점점 옅어졌다.

새벽의 고요가 그를 삼키고 있었다.


어느 순간, 기억의 부스러기들이 먼지처럼 흩어졌다.

기쁨도, 분노도, 눈물도 모두 허공 속으로 사라졌다.

남은 것은 비어 있는 껍질, 아니 껍질조차 부스러져 가는 느낌.


그는 거울 앞에 앉아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새벽은 무한히 깊어지고 있었다.


거울 속의 얼굴은 사라졌는지, 남아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그저, 무언가가 희미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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