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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인가영 Sep 29. 2022

자궁크기가 7cm인데, 10cm짜리 혹이 들어있었다.

30대 여성 30%가 가지고 있는 자궁근종 극복 이야기

 올해가 3개월가량 남았지만, “혹”과 시련만이 가득했던 한 해였다고 말할 수 있겠다. 혹이 있던 부위는 총 두 군데로 유방과 자궁인데, 유방에 있는 혹은 아주 귀여운 정도의 수준이므로 짧게 설명하겠다. 가족력이 있는 나는 6개월 주기로 여성 의원에 방문해 유방 초음파를 보곤 했는데, 초음파 상으로 1cm로 작은 혹에 미세 석회화 소견이 있어 조직 검사 후 제거했다. 언뜻 간단해 보이지만 6시간 정도 입원이 필요하여 꿀 같은 토요일 오전, ‘진공 보조 생검’ 혹은 ‘맘모톰’이라 불리는 시술을 통해 제거했다. 정말 간단한 시술이었지만 몸보신하라고 시어머니가 용돈을 보내주셔서 저녁엔 맛있는 누룽지 오리백숙을 먹고 왔다. 그렇게 주말을 남편의 보살핌으로 상전처럼 보낸 뒤 월요일, 시술 경과를 확인하기 위해 급히 회사에 연차를 냈다. 직장인에게 연차는 목숨과 같아 하루를 대충 허비할 수 없다. 유방외과 갔다가 오후 남는 시간에 무얼 할까 생각을 하다가, 번뜩 자궁 초음파를 보고 싶어졌다.


 아직 산부인과가 낯선 나는 30살, 결혼한 지 갓 2달 된 새댁이다. 그리고 산티아고 순례길을 한 달 동안 거뜬히 걷고 왔을 정도로 체력이 좋다. 그런 내 자궁에 10cm나 되는 큰 혹이 있다고 하는 것이다. 초음파 화면 전체가 하얗길래 저게 자궁이구나 싶었는데 혹이었다. 후에 알아본 결과로는 보통 자궁의 크기가 7cm라고 하는데, 자궁보다 큰 혹이 웬 말인가 싶었다. 사실 자궁근종은 성인 여성 30~40%, 3명 중 1명은 갖고 있을 정도로 흔하게 발생한다고 한다. 그리고 이날 처음 초음파를 봐준 병원 선생님께서는 마치 눈이나 코 성형수술처럼, 요즘은 복강경으로 쉽게 한다며 예쁘게 잘해준다는 말씀을 해주셔서 조금 당황하긴 했다. 그러나 그만큼 별게 아니라는 것처럼 느껴져서 상심이 덜 했는데, 괜히 서러워서 남편을 보자마자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남편도 놀랐을 텐데, 인터넷을 한참 검색하더니 별거 아니라고 토닥여줬다.


 이틀 뒤, 최소 2-3군데 병원을 돌아보며 의료진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병원을 선택하는 것이 좋다는 주변 지인들의 말에, 두 번째 병원에 방문했다. 문제는 이 병원에서부터 시작이었다. 초음파를 보시면서 혹의 크기를 측정하시며 한참 들여다보시더니, 심각한 날숨을 크게 여러 차례 쉬시는 것이다. 진료실은 어둡지, 진료 의자에 누워있다시피 앉아있던 나는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의사 선생님은 혹의 크기가 크고 위치도 좋지 않아 위험성이 따라서, 자신이 없다고 하셨다. 나는 처음 알았다. 의료진이 자신이 없다고 할 때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환자는 할 말을 잃게 된다. 정말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아서 10초간은 가만히 있다가 “그렇군요…” 한 마디 대답을 짧게 해 버렸다. 의사 선생님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대학병원, 3차 병원 진료의뢰서를 써주셨다. 드라마나 영화에서나 보던 의사의 어투와 상황을 마주하니 세상 모든 서러움이 내 온몸 전체를 에워싸는 기분이 들었다. 뾰족하진 않더라도 일부 해결책이나 방법을 말씀해 주시지 않는, 그저 자신이 없다는 말 한마디뿐인 의사 앞에서 울기는 싫어서 꾹 참고 집에 오는 길 내내 울었다.


 세 번째 병원을 가는 날이었다. 두 번째 병원에서 내 현 상황을 정확히 직시하여 마음을 단단히 붙잡고 의사 선생님을 뵈었다. 이틀간 총 3번의 질 초음파를 하는 불편한 마음보다 더 불편한 건 두 번째 병원에서처럼 방법이 없다고 하시면 어떡하나 하는 불안함이었다. 이 병원 의사 선생님은 보다 더 자세하고 친절하게 설명해 주셔서 알게 모르게 위로가 되었고, 무엇보다도 다른 점은 호르몬 주사 치료를 권고해 주셨다. 이전 병원과는 다르게 해결책을 제시해 주시고, 앞으로의 진료 방향성에 대해 그림을 그려주시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이날 냉큼 호르몬 주사를 배꼽 아래에 맞고 왔다. 이 호르몬 주사는 자궁을 일시적 폐경 상태로 만들어 근종은 작아지게 만들 수 있지만 부작용으로는 갱년기 증상인 열감, 안면홍조, 정서 변화, 수면 장애 등이 나타난다고 한다. 이때의 내 두려움으로는 이런 부작용 따위는 가볍게 눈 감을 수 있었지만, 실제로 나는 자다가 갑작스러운 열감으로 이불을 걷고 창문을 열고는 한참 더위를 식히고 잠자리에 들 정도의 부작용을 마주했었다. 

 

 가족들은 그래도 대학병원에서 수술을 해야 한다고 성화였다. 그래서 집 근처 대학병원에 진료 예약을 하려고 봤더니, 제일 빠른 진료 날짜가 3주 후였다. 마침 해외 출장을 앞두고 있던 나는 출장을 마치고 입국해서 진료를 받으면 되겠다 싶어 냉큼 예약을 했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네 번째 병원에 방문했고, 역시 경험이 많은 대학병원 교수님의 면모답게, 담담하게 절개하여 근종을 떼어내자고 말씀해 주셨다. 복강경이 아닌 절개라니, 내 몸에 기나긴 흉터가 생긴다니, 믿기지 않았지만 그래야 확실하고 꼼꼼하게 제거하고 봉합할 수 있다는 말씀에 신뢰가 하늘 높이 솟았다. 어쩌면 이미 처음부터 정해져 있던 결과일 수 있듯, 수술하다가 만에 하나 잘못되더라도 빠른 조치가 취해질 수 있는 대학병원을 선택했고, 수술은 당연히 잘 되어 부단히 회복 중이다.

 

 첫 전신마취, 입원, 수술, 모든 것이 처음이라 낯설지만 동시에 설렜던 이 경험은 내가 삶을 마주하는 태도를 바꿔줬다. 이를테면 일 욕심이 1순위였던 나는, 내 가정과 내 건강이 우선이 되었고 항상 강한 척, 튼튼한 척, 안 힘든 척했던 이전과 달리 더 표현하고 힘들면 쉴 수 있는 상태가 되었다. 역시 사람은 겪어야 변하는 것 같다. 아무쪼록 적당히 힘쓰면서, 충분히 행복하게 잘 지내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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