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 청소

2022년 2월 18일

by 이선주

2022년 2월 18일 금요일 저녁 10시 48분. 지금 시간이면 꿈속을 헤매고 있어야 하는 데 2주 동안 글을 올리지 못한 빚이 있어서 거실의 한 구석에서 글을 쓴다.


감사하게도 지난 2주간은 전기가 별 탈없이 잘 들어왔다. 몇 해전부터인지 기억도 흐릿하다. 어느 날부터 갑자기 온 나라에 전기가 부족해서 하루 2시간, 4시간, 길게는 6시간까지 돌아가면서 동네마다 전기를 끊기 시작했다. 처음 몇 달간은 세상이 끝날 것 같이 난리를 떨었는데, 몇 해가 지난 지금은 몇일씩 전기가 안 들어와도, 시큰둥하다. 지금부터 정확히 2주 전, 금요일 오후에 전기가 나갔다가 3일째인 일요일 저녁이 되어서야 들어왔다. 그날 유난히 천둥 번개가 내리치고 많은 비가 내렸는데 변전소가 벼락에 맞았었나?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는데, 여하튼 주말 내내 전기가 들어오질 않았다.


전기가 나가면, 일단 타월을 가져와 냉장고 문을 묶어 놓는다. 습관적으로 냉장고 문을 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하루 동안 전기가 나가면, 별로 불편한 것은 없다. 이틀째로 넘어가면, 슬슬 냉장고의 음식들을 걱정하게 된다. 그래서, 얼음을 사 와서 아이스 박스에 넣고 냉장고에 있는 야채를 꺼내어 보관한다. 그때까지 냉동실의 고기들은 아직 단단히 얼어 있다. 삼일째가 되면, 냉동실의 고기들도 슬슬 녹기 시작한다. 이 때는 방법이 없다. 꺼내서 요리를 하던가. 멀리 있는 전기가 들어오는 친구네로 고기를 옮기는 수밖에. 언젠가는 1주일 넘게 전기가 안 들어온 적이 있었는데, 그때 냉동실에 보관하던 고기와, 냉장실에 있던 야채들을 먹어 치우느라 호강했다. 매일 고기를 먹었으니까. 여하튼 그때 한 결심이 절대로 냉장고를 꽉꽉 채우지 않는다는 것이다. 특히 냉동실은.


몇일씩 전기가 나가면 꼭 해야 하는 일이 있다. 냉장고 청소. 전기가 끊긴 채 하루 반 정도가 지난 순간부터 냄새가 나기 시작한다. 그 냄새는 도저히 음식들을 냉장고에 보관할 수 없을 것 같은 마음을 들게 할 정도로 불쾌하다. 도대체 그 냄새들은 어디 있었던 거지. 추워서 꽁꽁 얼어 있다 풀리는 건가? 이틀 안에 전기가 들어오면 냉장고 청소를 안 하고 무사히 넘어갈 수 있다. 그러나, 삼일 째에 접어들면 참다 참다 드디어 그 힘든 일을 시작하게 된다, 냉장고 청소. 일단 모든 칸막이와 서랍들을 꺼내서 박박 씻어 햇볕에 말리는 동안 바가지에 물을 담아 세제를 풀고 냉장고 내벽들을 씻는다. 냉장고 안이 다 마르면 칸막이와 서랍들을 제 자리에 넣어 놓고 전기가 들어오기를 기다린다. 그런데, 이상하게 언제나 냉장고 청소를 마친 후로는 전기가 들어오기를 기다리는 간절함이 덜해진다.


전기 얘기하면서 물 얘기를 안 할 수도 없다. 전기만큼 자주는 아니지만 물이 안 들어오는 때가 있다. 물에 비하면 전기가 안 들어오는 것은 비교도 안된다. 단 몇 시간이라도 물이 없으면 일상의 거의 모든 활동이 불편해진다. 먹는 물은 비싸게 주고 라도 사서 먹을 수 있는데, 그 외에 음식 준비, 설거지, 샤워, 화장실 사용 등의 모든 것들이 더 이상 일상이 아니게 된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전기와 물은 당연한 것들이었는데 지금은 그것들이 당연하지 않다. 그리고, 우리 집 냉장고는 아주 깨끗하다. 일 년에 몇 번씩 청소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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