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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부언니 Dec 06. 2021

사수는 고를 수 없어도, 책은 고를 수 있잖아요

『기획자의 독서』



사실 나에게도 필요했다. 사수


나도 줘라 사수, 다른 말로는 멘토.

나의 첫 동료는 말을 참 예쁘게 하는 사람이었다. 지금도 전화를 받을 때면 무의식적으로 튀어나오는 업무용 말투와 기회가 될 때마다 옆 사람을 칭찬하기 위해 기울이는 노력 같은 것들은 그때 그녀를 옆에서 지켜보며 몸소 익힌 것이다. 그렇게 때로는 귀동냥으로, 때로는 어깨너머로 익힌 것들을 기반으로 아직까지는 큰 탈 없이 밥벌이를 하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나에게 (정확히 UX)디자이너 사수와 일할 기회는 8 내내 주어지지 않았다. 미생의 장백기와 강대리가 부러울 정도였으니, 디자인적인 요소에 대한 고민을 나눌  있는 상대에 꽤나 목말라 있었던  같다. 아무튼 디자이너가 너무나 보고 싶을 때마다, 나는 서점을 들락거리고 유튜브를 뒤적거리며 트위터를 손에서 놓지 못했다. 그것이 내가   있는 최선이었고, 그들이  나의 사수이자 멘토였다.


평소 결정 내리는 것을 어려워하는 사람일수록 함께 의견을 나눌 상대를 필요로 한다. 결과물에 대한 확신이 없을수록 다양한 피드백이 절실하다. 충분히 고민할 시간과 여건이 갖추어지지 않은 상황일수록 판단력이 흐려지기 때문이다. 논쟁을 마냥 피한다고 능사가 아니다. 문제제기와 해결의 굴레를 자연스럽게 넘나드는 관계가 건강하듯이, 팀도 마찬가지다. 아무튼 필요했다. 논쟁과 해결의 굴레를 자연스럽게 오고 갈 수 있는 디자이너가. 이럴 줄 알았으면 학교생활을 좀 더 열심히 해둘걸 그랬다. 아싸의 업보가 이렇게 돌아올 줄이야.


신속하게 판단(오차범위가 적은)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고 싶었다. 커리어의 만족도를 높이기 위해선 해당 분야에 대한 높은 이해도와 쌓아온 경험을 토대로 갖는 확신이 중요하다. 이런 것들을 갖추어져야 많은 사람들에게 사용될 만한 프러덕트를 만들고, 오래도록 팀원들에게 기억되는 동료로 남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다면, 멘토는 어디에 1

몇 달 전부터 유튜브에서 눈에 띄는 광고가 있다. Youtube에서 만나는 나만의 멘토라는 카피와 함께 돌고 있는 광고인데, TED의 스낵 버전처럼 보이기도 하고 그래, 허우적대는 건 나뿐만이 아니구나 하고 고개가 끄덕여지기도 했다. TMI지만, 요즘 나의 재생 목록에는 정원관리 / 요리 / 여행 / 투자 / 디자인 / 제로웨이스트 혹은 해외 거주민들의 일상생활 채널 등이 자리하고 있다.



그렇다면, 멘토는 어디에 2

우리 팀에도 멘토가 필요한 사람이 한 둘이 아니다. 하지만, 분야가 다른 팀원들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은 정말 개미 발톱의 떼만큼도 없었기 때문에, 죄책감을 덜어보고자 도움이 될 만한 책을 찾아 교보문고엘 들렀다. 그 안을 뱅뱅 돌다가 멈춘 브랜딩 관련 서적 매대에서 팀원들에게 선물할 만한 책을 두 권 찾을 수 있었다.

기획자의 독서

일을 잘하고 싶어서, 나만의 오리지널리티를 찾고 싶어서, 사람과 세상을 이해하고 싶어서 오늘도 책을 읽습니다.

김도영 기획자님의 『기획자의 일』뒷 표지 내용이다. 그 문구에 홀려, 집으로 돌아오는 지하철에 앉아, 한 장 두장 책장을 넘겨보기 시작했다. 선물하기 전에 정말로 그녀에게 도움이 될 만한 내용인지 확인하기 위해, 몇 장만 읽어볼 요량이었다. 하지만, 30분 뒤에 그 책은 선물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렸다.


평소 책을 쫙쫙 펼쳐 읽는 버릇 덕분에, 조금 전까지만 해도 새 책이었던 그것을 새책이 아니게 만들어 버린 것이다. 결국 온라인으로 같은 책을 주문했고, 구매한 책이 이틀 뒤에 도착하고 나서야, 그녀에게 선물할 수 있었다. 책장을 넘기는 구구절절 맞는 이야기의 연속이었다. 허우적거리던 생각들이 제 자리를 찾아 들어가는 듯 한 기분이 되었다. 결국, 일을 잘하고 싶다는 것은 사람을 잘 이해하고 싶다는 이야기가 아닐까.


공감이야말로 맞장구가 아닌 질문이거든요. 그저 '당신 말이 맞아'라는 리액션이 아닌 '저도 그 문제를 한 번 진지하게 고민해볼게요'라는 태도에 관한 것이니까요.

나는 지금의 팀에서 반대는 거절과 다르다는 것을 배웠다. 같은 목적을 향해 나아가는 길에는 반대도 찬성도 제 몫의 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여전히 반대되는 의견을 마주 할 때면 나도 모르게 필요 이상으로 방어적인 태도를 취하며, 몇 번이고 아차 싶어 한다.


생각에 생각을 얹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이제 막 성장하는 팀일수록 이런 일들이 자연스럽고도 빠른 호흡으로 이루어져야 많은 데이터를 쌓을 수 있게 되는 것 같다. 우리 같은 미생들이 할 수 있는 건 거창한 성과보다는 옳고 그름을 차곡차곡 쌓아가는 것에 더 가까울 테니까.


아무튼 사수 없는 주니어와 시니어, 날면서 동시에 비행기 만드느라 숨찬 우리 모두 돈길만 걷도록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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