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의지가 안 생기는 사람들은 매번 부여잡을 것을 만들어요.
삶의 의지가 안 생기는 사람들은 매번 부여잡을 것을 만들어요.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내 삶이 의미가 없는 것 같거든요. 제게는 그게 그림이었고 일이었고 기록이었고 여행이었고 가족이었어요. 이런 것들이 언젠가는 저를 끌고 갈 방향타가 되어주더라고요.
그런데 이상해요. 6개월 전부터 도무지 삶에 대한 의지가 되살아나질 않는 거예요. 불이 꺼져서 눅눅해진 숯에 아무리 불을 붙이려 한들 연기밖에 피어오르지 않잖아요. 얼굴의 여섯 구멍에서 연기밖에는 피어오르지 않는 것 같은 6개월이었어요. 여전히 좀 그래요. 다시 불씨를 되살려보려고 뜨개질도 해보고 책도 보고 글도 적어보는데, 도무지 나아지지가 않아요. 예전에는 뭐든지 부여잡기만 하면 그게 삶의 의지를 만들어 주었는데 지금은 무엇을 부여잡아도 손아귀가 헐거워요.
어제는 작년 12월 6일에 돌아가신 할머니의 첫 번째 기일이었어요. 아침부터 이상하게 기분이 가라앉는 거예요. 원인을 알 수 없어 답답한 마음에 이것저것 해보아도 마음은 나아지지 않았어요. 결국 퇴근 후 예전 직장 동료와 식사 중이던 남편에게 오늘은 많이 늦지 말아 달라고 문자하고 말았어요. 밤늦게까지 혼자 집에 있을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에요. 오랜만의 술자리라 원하는 만큼 있게 하고 싶었는데 손가락이 먼저 나갔네요. 괜히 제사 지낸다고 이것저것 차리면 눈물이 날 것 같아서 그냥 조용히 넘어가려고 했어요.
그런데 귀가한 남편의 손에는 차례주와 배, 양갱이가 들려있었어요. 비닐봉지를 보자마자 쏟아진 눈물은 상을 펴고 절을 두 번 하고 그 앞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는 동안 계속 흘렀어요. 사실 흘렀다기보단 목놓아 대성통곡을 한 것에 가깝긴 한데요. 그냥 할머니한테 못해준 것만 생각나고 후회되는 일만 떠올라서 그냥 슬펐어요. 이미 떠난 사람 앞에서 울어봤자 아무 소용이 없다는 걸 아는데 내 마음이라도 후련해지자는 생각으로 양껏 울어버렸어요.
삶의 의지가 안 생기는 사람들은 매번 부여잡을 것을 만들어요.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내 삶이 의미가 없는 것 같거든요. 그런데 있잖아요. 되돌아보면 그렇게 부여잡았던 지푸라기들이 진흙을 밟지 않을 짚신이 되고, 비를 막아주는 도롱이가 되고, 우리 식구가 머물 초가집이 되어 있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