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두부언니 Sep 19. 2019

안녕, 놀라운 사람

네가 나에게 말해주었잖아.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긴 여행은
삶이고, 사랑이라고.

우리는 여행을 하며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그중 일부와 동행하게 되잖아. 이렇게 함께 여행하는 것 같아도, 사실 우리는 혼자 여행을 하는 거잖아. 같은 장소에서 같은 것을 먹고, 같은 것을 보아도 결국엔 다른 생각을 하잖아. 그래서 함께하는 여행이 더 풍성해지는 걸지도 모르겠어. 혼자만의 여행도 깊이가 있겠지만, 함께하는 여행은 혼자서는 느낄 수 없는 것들을 나눌 수 있도록 도와주잖아. 내가 모르던 나의 말버릇과 습관이나, 네가 모르던 네 눈에 담긴 빛깔과 살의 결을 내가 알아차리는 것처럼 말이야.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들이 더 많은 우리는, 앞으로 지금까지 만났던 사람들보다 더 많은 사람들을 새로 만나고 또 헤어지고 하겠지만, 어떤 순간들은 이렇게 기록하고 기억해두고 싶어. 시간이 지나 언제 들추어봐도 힘이 될게 분명하니까.




모 애니메이션의 누군가가 말했다. '역시 인간은 재미있어.'라고. 제 코가 석자라 내 한 몸 간수하기도 버거운 세상이지만, 그래도 조금 여유를 갖고 내 주변 사람들을 둘러보자. 그들은 알게 모르게 우리에게 부정적이던 긍정적이던 영향을 미치며, 때로는 내가 살아가야 하는 이유가 되어주기도 한다.


유칼립투스는 800여 가지가 넘는 종류가 있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가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구분은 겨우 3가지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800가지로 나눌 수 있는 기준이 있지만, 우리는 겨우 3가지로 구분할 수 있는 만큼의 이름(블랙잭, 폴리안, 파블로)을 붙인다. 우리에겐 800여 가지나 되는 유칼립투스의 종류를 구분할 이유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지만 이 이야기는 우리가 알 수 있는 것들이 얼마나 한계가 있으며, 세상엔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것들 투성이라는 것을 알게끔 도와준다. 살아가면서 뇌의 3%를 겨우 사용할 뿐이라는 일반인의 범주에 우리가 들어 있는 것이다. 사실 우리는 머리카락 한 올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할뿐더러, 살아 있는 동안은 결코 자신의 뒷모습을 자기 눈으로 직접 볼 수도 없다. 비약일지 모르겠으나, 그만큼 우리의 능력이 닿지 않는 곳이 많기 때문에 오히려 작은 것들을 더 자세히 들여다보고 쏜살 같이 흐르는 시간을 잡아 그 흐름에 눈과 귀를 바짝 대고 관찰해야 한다.


하루는 내 연인이 나에게 초등학생 시절 일기장을 보여준 일이 있다. 10살 남짓의 그는 지금의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보다 더 지혜로운 말을 일기장에 적어 두었다. 볕이 좋은 어느 봄날, 아카시아 향기를 맡으며 '아카시아는 햇님이 준 선물이다'라고 적었고, 어느 날은 책을 읽다가 크게 감명을 받았는지 '책을 읽는 것은 지식을 쌓는 것뿐만 아니라 생각을 쌓는 것이다.'라고 적어두었다. 그리고 그가 다니던 학교로 전학 온 아이에게는 '우리 학교는 햇볕이 잘 드는 경치 좋은 곳에 세워져 있어.'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10살 남짓의 아이가 적었다고는 믿기 어려운 표현이었고, 서른을 넘긴 지금 문학적인 감성과는 1도 관계가 없는 일을 하고 있는 그 역시 동의했다. 사실 우리의 문명이 외계의 어느 문명만큼 발달했었는데 빙하기(혹은 소행성 충돌)로 인해 다시 뗀석기 시대에서부터 시작될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심해의 어느 고대 문명의 제단에서 고기술 집약적인 승강기가 발견되었다. 는 말을 들은 것과 흡사한 기분이 들었다.


30년을 넘게 함께 살아온 가족도 서로를 다 알지 못하며, 하물며 스스로에 대해 알기는 갈수록 어려워진다. 우리 안에 800갈래의 길이 있다 해도, 자각할 수 있는 건 3갈래 정도밖에 되지 않을 것이고, 3가지를 9가지로 나누고, 다시 81가지로 나눌지에 대해서는 각자가 선택할 몫이다. 하지만 이것 하나만은 염두에 두면 좋겠다. 우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놀라운 존재이며, 우리가 자각하고 있지 못하고 있는 것들로 인해 우리는 달라질 수 있다. 누구나 그런 것들이 하나쯤은 내면에 자리하고 있을 것이며, 그걸 자각하는 순간 삶은 달라지게 될 것이다. 혹은 우리가 이미 놀라운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내면의 놀라움에 대해 무뎌져 있기 때문에 별 것 아닌 것으로 넘기고 있을지도 모른다. 스스로 알지 못하는 반짝임이라면, 서로가 보아주는 것은 어떨까.



아마도 향수를 만들던 날에 너무 많은 향을 맡아서 후각이 무뎌졌던 것 같다. 어제는 몇 번을 뿌려도 그 전날만큼 향이 잘 나질 않았는데, 오늘 뿌린 향수는 아침에 아침에 뿌린 것이 아직까지 난다. 물론 12시간이나 지난 향은 아침과는 다르게 느껴지지만, 사람에게도 거하게 취하게 되면 일정 부분 무뎌지는 면이 생긴다. 하지만 다행히도 우리의 감각은 금방 제자리를 찾는다.

매거진의 이전글 물건을 산다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어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