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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부언니 Sep 21. 2019

잠이 들었으면 좋겠다.

정도로 생각하는게 좋아요.


일이 나 버렸다.
귀는 기어코 시계 초침
움직이는 소리를 의식하고야 말았다.

이제 냉장고 돌아가는 소리며,
공기청정기가 웅웅대는 소리까지
의식하는 것은 시간문제다.




시계는 새벽 1시 18분하고도 24초를 지나고 있었다. 잠자리에 누운 지 꼬박 2시간이 지났지만, 머리는 도무지 식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잠들기 위해 두 눈을 힘껏 감아 보아도 눈꼬리며 미간의 근육만 저려올 뿐 잠이 들 리가 만무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저녁 때 마신 커피가 문제였을까? 어쩐지 산미가 평소 이상으로 강할 때 부터 마음에 들지 않더라니. 아니면 오후 내내 머리를 짜내었기 때문일까? 아직도 머릿속에 활자들이 떠다니는 탓은 간만에 평소 같지 않게 머리를 썼기 때문이란 말인가. 설상가상으로 내일 있을 미팅 내용까지 저 구석에서 눈치를 보며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었다. 그것도 아니라면 예고 없이 물러난 더위 탓에 밀려온 이 시원한 밤공기에 적응하지 못한 탓일까?

우리는 종종 부담감 때문에 유연하게 넘어갈 수 있는 순간들도 어렵게 만들곤 한다. 잠이 들기 위해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잠이 오지 않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잠은 오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이대로 뜨는 해를 맞이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잠이 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 할수록 잠은 더욱 달아나기만 할 것이다. 잠이 오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하는 순간 우리가 깨닫게 되는 것이 있다. 첫째로 불면은 한 두 가지 원인을 해결한다고 해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과 둘째로 그것이 오지 않음을 인정함으로써 편안해진 마음의 틈을 타서 잠이 들어올 것이라는 것이다.



올해 초에 오키나와의 남쪽 끝으로 여행을 간 일이 있었다. 미세먼지가 기승을 부리던 봄이었는데, 매일 같이 잿빛 하늘만 보다가 3박 4일 동안 말갛게 트는 동과 시리도록 파란 하늘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15분 정도 숲으로 난 오솔길을 따라 걸어 나가면, 탁 트인 해변이 인상적인 동네였다. 새벽마다 그 집에 사는 세 마리의 개들과 함께 산책하는 것도 즐거웠지만, 집주인 아저씨가 자전거를 빌려주어서 아침마다 근처 슈퍼나 공원까지 달릴 수 있었던 것도 좋았다. 잘 기억나진 않지만, 거진 20년 만에 타는 두 발 자전거였다. 게다가 발을 살짝만 구르면 반자동으로 나아가는 전기자전거였다. 한 발을 구른 뒤 다음 동작을 떠올리는 나를 자전거는 기다려주지 않았고, 그렇게 나는 몇 번이고 자전거한테 끌려 다녔다. 그래서일까, 자꾸만 주춤거리고 조바심이 났다. 넘어지면 안 된다는 생각에 두 발을 모두 땅에서 떼기가 겁이 났다. 길이 내리막으로 이어는 구간이 가장 공포스러웠다. 이러다간 아침을 사 와서 점심으로 먹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눈앞에 있는 해안도로를 꼭 자전거로 끝까지 달려보고 싶었다.

하루하고 반나절을 구르고 나니 알 것 같았다. 자전거를 탈 때 이미 발을 굴렀다면 다음 일은 생각하지 말고 다른 발을 마저 굴리는 것이 해야 할 일이구나 하고. 넘어지거나 부딪힐까 봐 지레 겁먹고 경직되어서는 제대로 달릴 수 없었다. 계속해서 비틀거리고 불안하게 달려서는 같은 방향이나 마주 오는 사람들에게 불안감을 전염시킬 뿐이다. 넘어져도 괜찮다.



한 발을 굴렀으면 다음 발을 구를 것. 겁먹지 말 것.


잠이 오지 않아도 괜찮다. 더 먼 바다로 나아가기 위해선 힘을 빼는 순간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게 한껏 곧추 세우고 있지 않아도 괜찮다. 어둠을 몰아낼 수 없을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어둠을 인정하는 것이다. 우리에겐 숨 쉴 박자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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