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쓰고 싶은 걸까
기록하지 않은 순간들은 빠르게 사라져 버린다.
글은 그러한 순간의 끝을 잡아 멈춰진 시간 속에 가둔다.
다시 들여다보고 꺼내보고 싶었던 순간들이 있다. 글로 기록하면 같은 시간을 살아도 비교적 더 많은 시간을 누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기록하지 않은 순간은 빠른 속도로 사라져 버리기 때문이다.
한 달 전에, 스스로 글을 쓰면서 염두에 두면 좋을 방법에 대해 몇 가지 정리한 적이 있다. 그 이후, 관련해서 몇 가지 생각이 더 떠올랐고, 기억력이 좋지 않기 때문에 역시 글로 정리해보려 한다.
1. 조각보를 잇듯이
글을 쓰고 싶다고 생각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간과했던 사실(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지만)은 앉은자리에서 한 번에 많은 분량을 써 내려가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정방향으로 글을 써 내려가는 방법이 수월한 사람도 있기야 하겠지만, 적어도 나는 그런 종류의 사람은 아니었던 것이다. 기억력이 좋지도 않을뿐더러, 여러 가지를 한꺼번에 기억하려고 하면 당연히 기억해야 할 것들을 잊어버리는 경우도 더러 생기기 때문에,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떠올랐을 때 즉시 기록해 두는 편이다. 한동안 여러 가지 일로 인해 시달렸을 땐 핸드폰과 집 현관 비밀번호를 잊어버린 일도 있었다. 그래서 당시 가족 단톡 방엔 내 비밀번호가 공지사항으로 올라가게 되었고, 엄마는 혹시 나에게 치매기운이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염려로 얼굴에 수심이 가득했었다.
대게 이야기가 떠올랐을 때 차곡차곡 모아 두었다가, 살을 붙일 준비가 되면 부분적으로 내용을 이어서 작성한다. 제목이 먼저 떠오를 수도 있고, 소재가 먼저 떠오를 수도 있으며, 소설의 경우엔 어떤 장면이 먼저 떠오른다거나, 혹은 마지막 장면이 먼저 떠오를 수도 있기 때문에, 처음부터 끝까지 단숨에 써 내려가기가 생각만큼 쉽지 않은 것이다. 일단 써 내려간다. 써내려 가다 보면 머리와 손이 풀리기도 한다. 일단 써놓고 나중에 새로운 눈과 마음으로 가다듬는다. 이와 같이 단편적으로 떠오른 문단들을 하나로 엮으면, 한 편의 글을 완성할 수 있게 된다. 마치 퍼즐을 맞추듯이 미리 준비해둔 문단의 조각들을 이리저리 배치해보며 글을 완성시키는 작업은 마치 조각보를 잇는 작업 같다.
2. 쇼미 더 머니 플로우를 타고
라임을 생각하며 글을 쓰게 되면, 읽는 사람을 즐겁게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우리가 설 곳은 좁고, 바다의 깊이는 가늠할 길이 없어.'같은 식이다. 앞의 문장에서는 'ㄱ'의 된 발음에 유의하여 단어를 나열했다. 한 문장을 두 부분으로 나누어보면 다음과 같다. [우리'가' 설 '곳'은 좁'고'] 이어서 나오는 문장은 [바다의 '깊'이는 '가'늠 할 '길'이 없어.] 보통 3번 정도 라임을 맞추면 리듬이 생기는 것 같다.
따라서, 단어를 선택할 때 시간을 충분히 할애하여 고민하는 것이 좋다. 전반적인 문맥에 어울리며, 글의 리듬감 또한 북돋워 줄 단어를 선택할 수 있다면, 글쓰기가 더욱 즐거울 것이다. 같은 단어를 반복적으로 사용한다거나 요점을 효과적으로 뒷받침해 줄 단어를 찾지 못해 자주 답답함을 겪는다면, 일단 아무 글이나 펼쳐보자. 긴 글이 부담스럽다면 짧은 에세이도 좋고, 시집도 좋다. 다른 글은 어떤 플로우를 타고 있는지 살펴보자.
3. 많이 읽습니다.
너무 당연한 이야기지만, 많이 읽는 것이 좋습니다. 학생 시절 들었던 이야기 중에 '너희 머리에서 무언가 나올 거라는 기대를 버려'라는 이야기를 잊을 수가 없다. 당시 어떻게 해서든 스스로 머리를 쥐어 짜내어 무언가를 만들어 내고 말겠다는, 치기 어린 우리의 모습에 질려버린 교수님이 한마디 했던 것 같다. 사실 틀린 말은 아니다. 인풋이 없는데 아웃풋이 나올 리 만무했다. 따라서, 글이 써지지 않는다면 일단 무엇이든 읽고 보는 것도 방법이다. 쌓아야 내보낼 수 있다. 낮에 읽은 문장들이 머릿속을 떠다니다 마음속의 어떤 것과 만나게 되면, 비로소 이야기가 될 수 있는 것이다.
4. 무엇을 어떻게 볼 것인지에 관하여
우리가 보고 듣고 느끼는 것들이 글이 되기 때문에, 무엇을 보고 들을 것인지 결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미 귀에 인이 박히도록 들어왔던 이야기겠지만, 지금은 정보화시대다. 큰 힘을 들이지 않고 정보를 얻는 것이 너무나 수월해졌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시대상과 반대로 우리가 보는 영역은 생각보다 좁다. 인터넷을 통해 우리가 접하는 정보는 생각 이상으로 한정적이고, 모니터 밖에서 얻을 수 있는 정보의 양과 견줄 것이 못 된다.
모니터로 남산 위에 저 소나무를 바라보는 것과 실제 그 소나무 사이를 걸으며, 밀려오는 저녁 공기를 마시는 일은 비교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무엇을 볼 것인지 어떤 방법으로 볼 것인지에 따라, 나오는 글 또한 같을 수 없다. 그러니 잠시 액정을 덮어놓고 거리로 나가보자. 평소 무심코 거닐던 거리가 오늘 저녁엔 어떤 모습으로 흘러가는지 한 번 살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