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매를 통해 사회적 목소리를 내는 소비자들이 늘고 있다.
라이프스타일이 변화함에 따라
우리의 소비 패턴도 점차 복잡해지고 있다.
과거에는 (물리적인 재화의)구매를 통해 물질적인 욕구만을 충족하길 원했다면, 최근 들어서는 제품의 구매와 동시에 정신적, 사회적 욕구까지 충족되기를 바라는 추세가 늘고 있다. 이를테면, 특정 제품을 구매하지 않음으로써 반대의 의견을 표하는 불매라던가, 지지하는 내용과 연관 있는 제품을 구매함으로써 힘을 실어주거나 하는 식이다. 글쓴이의 경우, 어쩐지 비뚤어진 심리가 작용하여 규모가 큰 브랜드의 제품에는 잘 손이 가지 않으며, 사들인 만큼 잘 읽지도 못하면서 1인 출판, 독립출판물이나 문구류에 자꾸만 손이 가는 식인 것이다.
이는 소비자의 라이프스타일이 소비 결정의 요소로써 작용하는 비중이 점차로 커졌기 때문이다. 우리가 어떤 라이프스타일을 지향하며, 무엇을 원하고 어떤 가치에 얼마의 실제 비용을 지불하는지가 중요해지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오늘, 과거보다 더 소비를 통해 다양한 욕구를 충족하기를 바라게 되었다. 소비라는 행위를 통해 사회적 목소리를 내고자 하는 층이 생겨나고 있는 것이다.
더불어 구매를 통해 정서적 욕구를 충족하려는 경우 또한 늘고 있는데, 이러한 작용은 여행의 영역에서 복잡하게 일어남을 볼 수 있다. 우리는 여행길에서 기념을 목적으로 소소한 무언가를 종종 구매한다. 이 경우, 구매하는 제품의 용도가 딱히 내게 쓰임이 있어서 구매하는 경우는 드물다. 누군가는 추억을 목적으로, 누군가는 수집을 목적으로, 누군가는 선물을 목적으로 구매한다. 하지만 관광지 특산품의 경우에는 이야기가 조금 달라진다. 이 경우에는 해당 지역에서 생산되는 양질의 제품을 구매하는 것이기 때문에, 철저히 물리적 필요에 의한 구매를 하기 때문이다.
몇 해 전에 일본의 작은 소도시를 혼자 여행한 적이 있다. 그날 나는 한 여름의 햇볕이 뜨겁게 내리쬐는 거리를 반나절 내내 걸었다. 평소 오래 걷는 것을 힘들어하고 체력이 약해 이동시에는 항상 짐을 간편히 하는 편이라, 손에 무언가를 들고 걸어 다니는 것 또한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데 그 날의 나는 어깨에 멘 가방 한가득 물건을 잔뜩 싣고도 양 손에 쇼핑백을 손가락 마디마다 걸고 있었다. 평소 비싼 값을 치르고 끼니를 즐기지도 않을뿐더러, 기념품이라던지 기타 잡화에 대한 물욕도 없는데, 무엇이 나를 그 뙤약볕에 걷게 했는가 봤더니, 이 사람 저 사람 떠올리며 그들에게 줄 선물을 고르는 게 그렇게 마음이 즐거웠더라. 그 반나절 동안에 사람들이 바글거리는 번화가를 따라 걷다가, 인적이 드문 골목도 들렸다가, 하나 건너 하나씩 한 집에서 만든 것 같이 비슷한 물건들을 진열해 둔 기념품 가게를 수도 없이 들락거렸다. 시골 동네라 속소로 가는 버스가 오후 5시면 끊기는 상황에서 분단위로 시계를 확인하며 그렇게 반나절을 돌아다녔다.
그 거리에서 나는 어떤 사람을 떠올리며, 그 사람과 닮은 표면의 시멘트색 그릇을 고르고, 어떤 목걸이에 지어진 매듭을 보며 다른 이를 떠올렸다. 그리곤 또 다른 이들이 만든 초콜릿이 담긴다면 예쁠 것으로 상상되는 작은 접시도 골랐고, 어떤 분의 요리가 담긴다면 좋을 것 같은 모양의 그릇도 골라 보았다. 마지막으로는 그 사람과 같이 고기를 구워서 찍어 먹는다면 좋겠을 향신료를 가방에 담았다. 그 날 내가 여행지에서 구매한 물건 중에 내것은 작은 문구점에서 집어 든 폭 3mm 남짓의 아무 무늬가 없는 얇은 흰색 마스킹 테이프뿐이었다. 나는 그 거리에서 3만엔 어치의 시간을 샀다. 내 사람들을 떠올리며 그들이 기뻐하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도록, 3만엔 어치의 시간을 구매한 것이다. 수치로 따지자면 6시간이었지만, 무엇에 빗대어 표현할 수 없는 귀한 시간임에는 분명했다.
이처럼 우리는 소비를 통해 물질적 가치는 물론 사회적, 정서적 가치 또한 충족되기를 기대하게 되었다. 과거에 비하여 경제적, 사회적 주체로써 더욱 능동적인 성격을 띠게 된 것이다. 수동적으로 번 돈이지만, 쓸 때 만이라도 능동적으로 써보자 이건가. 돈 벌기는 어려운데 쓰기엔 참 좋은 세상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