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책과 영화

우리를 나아가게 하는 것

『드라이』 닐 셔스터먼, 제러드 셔스터먼

by 두부언니


**내용에 따라 일부 스포일러가 될 수 있습니다.***


자연 앞에서 인간이 보이는 무기력함을
목도할 때, 우리는 무엇을 느낄까?




『드라이』는 대가뭄 앞에서 무너지는 인간의 모습에 관하여 다양한 캐릭터의 시점을 통해 이야기한다. 각 캐릭터가 보여 주는 개성 덕분에 이야기의 전개가 지루 할 틈이 없었다. 모든 캐릭터의 개성이 뚜렷했지만, 작가의 유머가 이처럼 다양한 캐릭터들을 하나로 관통하며 이야기의 흐름을 잡아주고 있었다. 세기말적 이야기 틈틈이 보여주는 작가의 멘트가 조소와 실소 사이의 어딘가를 줄타기하고 있었다.

처음으로 수도꼭지가 말라버린 순간, 사람들이 가장 먼저 한 일은 댐의 수문을 잠그는 일이었다. 물을 보유한 도시들이 댐의 수문을 닫아 방류를 막은 것이다. 마치 수도꼭지를 잠그듯이. 하지만, 수문을 잠가 대가뭄의 재앙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인물은 소설 어디에도 없었다. 소설 속 인물들은 믿으려 하지 않았으며, 입 밖으로 꺼내지도 않았지만 알고 있었다. 이 사태가 한 두 주만에 해결될 사건이 아니라는 것을. 수도꼭지처럼 수문을 잠그는 일 만으로 인간이 강(자연)의 흐름을 마음대로 할 수는 없는 것이다. 물이 빠져 버린 어항 속 물고기가 바닥에 고인 물 한 방울이라도 더 마셔보겠다고 발버둥 치는 것처럼, 사람들은 이미 말라버린 바닥에서 허우적거린다. 그밖에 정치적인 영역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건 '남용 금지법'을 만들어서 물풍선 던지기를 불법으로 만드는 정도였다.


'아마도'라니, 이제 지긋지긋해!
아마도 계엄령 일지 모른다. 아마도 재난 관리청이 급수차를 몰고 올 것이다. 아마도 내일이면 모든 게 나아질 것이다. 당최 확실한 게 하나도 없는 이 사태에 신물이 났다. 80p

이 이야기를 크게 관통하는 키워드 중 하나는 불확실성이다. '아마도' 혹은 '만약에'나 '혹시나'와 같은 단어가 자주 등장한다. 등장인물들은 알았을까? 6월 4일 토요일 오후 1시 32분에 수도꼭지가 말라버릴 것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불확실성 속에 살고 있으면서도, 막상 눈에 띄게 불확실한 상황에 처하게 되면 예민해지고 공격적으로 변한다. 실제로 기상청(에 악감정은 없습니다만)은 일기'예보'가 아닌 날씨'중계'를 종종 하고 있다. 사실 자연을 미리 내다보고 예측하여 다음 플랜을 계산한다는 건, 가만 생각해보면 조금 부자연스러운 면이 없지 않다. 자연은 분명한 불확실의 영역인 것이다. 남태평양 나비의 날갯짓이 기상청이 예보한 태풍의 예상 경로를 바꾸는 일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야기 속 등장인물들에게 확실한 것은 단 하나도 없다. 예상은 빗나가며 기대는 수 차례 무너진다. 그럼에도 그들을 앞으로 나아 가게 하는 건 '만약에'와 '혹시나'다. 아침에 일기예보에서 비가 온다고 말하면, 하늘이 아무리 맑아도 우산을 들고나간다. 소설 속 등장인물들은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나름대로 계획을 세우며, 짧게나마 앞일을 내다보며 더듬더듬 앞으로 나아간다. 누군가가 계속해서 저 앞에 있는 '아마도'를 가리키기 때문이다.


문을 활짝 열어 주든가, 아예 걸어 잠가야 해요. 애매하게 믿기엔 사람들은 너무 복잡해요 194p

우리가 믿을 수 없는 게 자연뿐일까, 인간은 자연보다 더 예측 불허다. 『드라이』는 대가뭄 앞에 사람들이 생존을 위해 어떻게 돌변하는지에 관하여 내적으로도 외적으로도 세세하게 묘사했다. 그중에서도 그들이 당면한 상황을 효과적으로 묘사한 장면이 있었다. 해당 장면(본문 135p)에 대해(자칫 스포일러가 될 것 같아서 에둘러서) 이야기하면, 흔한 재난 이야기에서 처럼 자극적인 장면을 묘사하는 것이 아닌, 물리적인 상황의 묘사를 통해 정신적인 데미지를 주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계속해서 현상을 타개하기 위해 해결을 촉구할 대상을 찾는다. 길을 잃은 양 떼처럼, 통제를 벗어난 영역에 관하여 방향을 일러줄 목자만 목이 빠져라 바라보는 격이다. 나아가 가능하다면 책임까지 전가하고 싶은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얼리사는 애매한 태도가 가져올 수 있는 위험에 대해 이야기한다. '애매하게 믿기엔 사람들은 너무 복잡하기 때문에'


모두가 불난리에 눈이 먼 와중에, 채리티는 기회를 찾았다.(중략) 무조건 자세히 살펴야 한다. 그래야 쓰레기 속에서 보물을 찾아낼 수 있다. 가짜 금반지로 둘러싼 진짜배기 다이아몬드를 알아볼 수 있다. (중략) 채리티는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서둘러 차들을 훑었다. 전력 업체 차량이 눈에 들어왔다. (중략) 채리티는 소화기를 들고 폭발 현장을 향해 거침없이 걸어갔다. 132p

나이가 많은 채리티는 극 중 유일하게 처음부터 끝까지 평정심을 잃지 않는다. 극 초반과 종장에서 그녀는 한결 같이 침착함을 잃지 않는 모습을 보여준다. 심지어 함께 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구성원들 조차, 그 난리통에 외부인에게 잠자리를 내어주고 머리맡에 초코파이를 놓아주는 등 친절을 베푼다. 그런데 그게 그들의 본성이 선해서 그런 것 같지는 않고, 하나 같이 원초적인 욕망을 억누르고 있는 모습이다. 극 중 재키가 '아직도 이해가 안가. 이 사람들은 어떻게 서로 안 싸우지? 여태껏 우리가 봤던 그림이랑은 다르잖아.'라고 이야기한 것처럼, 여하튼 세기말적인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다.

다른 인물들이 이성을 붙드냐 마느냐의 기로에서 여러 차례 갈팡질팡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하는 것과 대조적으로, 채리티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공동체의 모습은 더욱 현실성 없게 다가온다. 작가는 이야기하고 싶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저마다 한오라기 이성의 끈을 붙들고 있는 것처럼, 우리 사회에도 채리티의 공동체와 같은 집단이 작게나마 유지될 수도 있다는 것을. 사실 재난 상황에 침착하기란 어렵다. 사람들은 군중심리에 휩쓸리기 쉽다. 양 떼와 늑대의 무리에 비유되는 이런 모습은, 침몰하는 타이타닉호의 '침착하라'는 방송을 듣고 있는 바닥 칸 승객들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달려 나가는 군중의 무리를 거꾸로 거슬러 오르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먹혀들었다!(중략) 살고자 하는 의지를 잃었을 때조차 서로를 구할 힘은 기어이 우러러 나오는 것이다. 421p

『드라이』에서 이야기하는 생존본능은 조금 다르다. 누구에게나 생존 본능은 있다. 아주 특수한 상황을 제외하고는 우리 안에 살아남고자 하는 욕구가 강하게 이는 것이 보통의 경우이다. 『드라이』에서 이러한 욕구는 책임져야 하는 대상이 있을 때 더욱 강하게 발현한다. 극 중 인물들은 탈수증에 스러져가면서도 본인의 목숨을 지킬 때 보다, 다른 이(동료)의 목숨을 지킬 때 더 필사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비교적 다른 인물들에 비해 계산적인 헨리조차 극의 마지막에는 원하던 대로 '난세의 영웅'이 된 듯한 모습을 보인다. 그들을 신체적 한계에 봉착하여 죽음의 문턱 앞에 다다라서도 옆에 있는 동료를 생각한다. 이러한 모습은 이야기의 전반에 짙게 깔린 인간 본성의 이기심과 대조적인 그림을 그리는데, 이는 마치 생존본능과 책임감이 결합되어 나오는 힘처럼 보인다. 『드라이』에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생존본능은 '나 혼자 살고 보자'하는 단편적인 것은 아닌 것 같다.


이처럼 『드라이』는 재난 상황보다 인간 개개인의 내면을 묘사하는 것에 포커스를 강하게 두고 있다. 개인적으로 심리묘사가 디테일한 글을 선호하는 편이라, 그런 부분에서 흥미롭게 읽었던 것 같다. 불확실성 속에서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다양한 개성의 캐릭터들을 따라가다 보니, 그 안에 조금씩 녹아 있는 나의 내면들과 마주할 수 있었다. 자연이 그러한 것처럼, 우리 또한 난해하고도 불확실한 존재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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