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러의 힘』 캐런 할러, 윌북
초록이 그렇게 싫었다.
불과 몇 년 전까지 내 주변에 녹색이라곤, 네이버의 초록창뿐이었다. 이상하게 밝은 녹색만 보면 잔디를 한 움큼 입에 물고 있는 듯한 비린내가 나는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어느 스님의 '나뭇잎은 초록의 꽃이다.'는 말을 접하게 되었다. 그 이후로 햇볕이 강렬하게 부서지는 오후에 푸른 잎이 무성한 나무를 아래에서 올려다보는 일을 좋아하게 되었다. 엄밀히 이야기하자면, 그때까지도 초록을 내 일상에 끌어 오진 않았지만 이후에 의식적으로 초록을 자연의 생명력과 연관 지을 수 있게 되었던 것 같다. 그러고 나서 미세먼지가 가득한 하늘을 몇 해간 겪고 난 뒤 지금은 초록을 많이 좋아한다.
우리는 왜 특정한 색에 매력을 느끼는가? 왜 저 사람은 빨강을 신나고 친근한 색이라 하는데, 나는 공격적이고 까다롭다는 느낌을 받을까?
우리는 색을 주관적으로 받아들인다. 위의 내용에서 빨강을 소개한 것과 조금 다른 내용이 있는데, 빨강은 남자들 사이에서 선호되는 색상이라는 것이다. 해당 연구결과를 읽으면서 매트릭스의 마우스가 프로그래밍했던 빨간 옷의 여자가 떠올랐다. 그녀에게 빨간색 옷이 입혀진 이유가 단지 감독(혹은 마우스)의 기호에 따른 것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실제로 다양한 국가와 문화권에서 같은 색을 두고(서양에서는 백색이 신부의 예복인 반면에 동양에서는 죽은 이를 기리는 장례복이듯) 다양한 해석이 존재하듯, 실로 다양한 스펙트럼과 해석 가운데 우리는 색을 향유하고 있다. 그 가운데 색이 우리에게 분명한 영향을 미치고 있음은 자명한데,『컬러의 힘』에서는 이미 익히 들어 더 이상은 새로울 게 없을 것 같은 색채 이야기가 흥미롭게 전개된다. 색에 대한 이야기는 언제 읽어도 총천연의 재미가 있다. 까도 까도 또 나오는 색채의 세계.
잘못된 음이란 없다.
어떤 음이 다른 음보다 더 잘 맞았을 뿐이다.
Thelonious Monk, Pinanist
색채들을 부분 부분 합쳐놓은 것만 보지 말고 전체를 봐야 한다. 우리는 색을 볼 때 따로따로 보지 않는다. 색은 여러 가지가 동시에 작용해서 우리의 감정적 반응을 이끌어내기 때문이다.
저자인 캐런 할러는 색의 각각의 기능을 바탕으로 색상 간의 관계에 대하여 깊게 다루고 있다. 피아니스트인 델로니어스 몽크의 이야기처럼, 잘못된 음이란 없다. 다만 어떤 색상과 인접했을 때 A라는 기능을 하거나, B라는 기능을 할 뿐이다. 불협화음이나 잘못 연주된 음을 들으면 고개를 갸웃거리게 되듯이 색채 또한 마찬가지다. 어떠한 상황에서 어떠한 조화를 추구할지는 전적으로 연주자(사용자)의 재량에 달려있다.
그래서 만들어 보았다. 컬러 팔레트
20대 초반까지는 검정색 옷만을 고집했다. 피부가 어렸을 적부터 까무잡잡한 편이었기 때문에 밝은 색상의 옷을 입으면, 어두운 피부톤이 더욱 부각되어 보일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옷장의 문을 열면 검정 혹은 낮은 채도의 무채색 옷들이 한가득 있었다. 20대 중반에 들어서는 같은 직장의 사수로부터 이런저런 옷을 물려(?)입게 되었는데, 그녀는 내게 어울릴만한 색이라며 가볍고 밝은 색의 옷들을 곧 잘 추천해주었다. 그때 처음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내가 선호하는 색이 곧 나에게 어울리는 색은 아니라고. 마른 장미색(채도가 낮고 중간 정도 밝기의 붉은색)의 립스틱이 나와 잘 어울린다는 사실도 올해 처음 알았을 정도로 아직도 색에 대해 알아가고 있는 중이다.
캐런 할러의 가이드를 참조하여 나름의 컬러 팔레트를 만들어 보았다. 팔레트는 각 용도에 따라 세 가지로 구분하였으며, 각각 나에게 어울리는 색, 내가 좋아하는 색, 내 환경과 조화로운 색으로 구성해보았다. 시간이 지난 뒤 다시 보게 된다면 아마도 기호가 변해있을 것 같다. 지난 20여 년간 한 번도 내 인생에 들어온 적 없었던 초록이 눈에 띄었으니.
Pallet A : 나에게 어울리는 색
주로 입는 옷의 색을 위주로 뽑아보았다. 계절별로 상황별로 입는 옷이야 조금씩 다르겠지만, 여러 시행착오를 거쳐 고른 옷들이 들어있는 지금의 옷장은 10년 전과 비교해 보았을 때 상대적으로 다채로운 편에 속하는 스펙트럼을 보유하게 되었다는 생각이다. (사실 위의 팔레트보다 그레이 계열의 옷이 많은데, 사용한 툴의 PC버전에서 그레이를 선택할 수 없어서 팔레트에 넣지 못했다.)
PalletB : 내가 좋아하는 색
물건을 고를 때 선호하는 색상들을 위주로 뽑아보았다. 자주 구매하는 노트며 메모지, 스티커에서부터 필통이나 핸드폰 케이스 등의 잡화에 이르기까지를 기준으로 보았으며, 과거와 비교하면 이 또한 채도가 많이 높아졌다는 생각이다.
PalletC : 내 환경과 조화로운 색
식구가 많고 물건이 많은 환경에서 생활해서인지 아직 이렇다 할 개인적인 공간을 누려 본 적이 없다. 만약 독립된 살림을 차리게 된다면, 정적이고 고요하여 심적인 안정을 줄 수 있는 색상으로 내 공간을 꾸미고 싶다는 생각으로 색상을 추려 보았다. 따뜻한 계열의 포인트 컬러가 있다면 심정으로 안정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팔레트 제작에 사용된 툴을 아래 링크로 소개한다.
인터렉션이 직관적이며 재밌다. 단, 그레이 계열을 고를 수 없다는 점이 불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