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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점이 두 가지면, 사는데 충분하고도 남아.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by 두부언니


단 한 번도 '좋아하는 영화감독은 누구냐'는 물음에 제대로 대답할 수 없었다. '감독보다는 영화의 내용을 보고 좋아하는 편'이라는 둥 둘러댔지만, 사실은 영화에 무지했기 때문에 섣불리 대답하기가 조심스러웠던 것 같다.


몇 해 전에 <어느 가족>과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라는 영화를 재밌게 보았다. 그리고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과 <환상의 빛>이라는 영화를 좋아한다. 부끄럽게도 앞서 말한 모든 영화의 감독이 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얼마 전에 알게 되었다.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신작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이 얼마 전에 개봉했다. 줄곧 일본 영화만 작업해오던 감독의 첫 프랑스 영화 소식이다. 그의 영화는 대개 관계에 관한 날것 그대로의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그런 성격과 프랑스 영화의 온도가 너무나도 적절하게 맞아떨어졌다는 생각이다.


이를테면 누가 누구를 낳고, 누구를 낳았기 때문에 형성된 가족의 관계가 아닌, 각 인물들이 자의적으로 맺게 되는 관계 자체에 주목한다. 그렇기 때문에 각 인물을 더욱 독립적이고 입체적으로 보여주어, 가족이라는 개념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그런 감독의 프랑스 영화라니, 집순이를 침대 밖으로 불러낼 합당한 이유에 부족함이 없었다.





기억은 믿을게 못돼


영화는 생업을 배우로 삼아온 파비안느와 그녀의 딸 뤼미르의 관계를 주로 다룬다. 평소 뤼미르는 엄마를 고집불통의 노배우로 여기며, 서로가 서로에게 상처 주지 못해 안달이 난 듯 보인다. 뤼미르는 엄마인 파비안느보다 파비안느의 오랜 친구인 사라와 더 많은 마음을 주고받은 것처럼 보인다. 뤼미르는 오히려 친모인 파비안느와 적대적인 관계를 보이는데, 사라의 죽음을 파비안느의 탓이라 여기기도 한다.


극의 진행에 있어 기억은 믿을게 못되지 못한다는 이야기가 종종 등장한다. 파비안느는 뤼미르에게 이야기한다. '기억은 연기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아. 추억도 있다가 없다가 하는 거지. 이 세트장, 네가 어렸을 땐 그렇게 커 보였었다면서'.


파비안느는 연기자다. 40년을 함께 해온 매니저 뤼크에게 사과를 할 때조차, 시나리오 작가가 본업인 뤼미르에게 대사를 써달라고 이야기한다. 배우는 주어진 대본을 바탕으로 연기한다. 뤼미르는 파비안느의 자서전 발간을 축하하기 위해 파비안느를 찾아왔다. 영화의 큰 흐름을 좌우하는 이슈는 대개 이 자서전에서 비롯된다. 자서전의 내용이 실제 파비안느의 삶과 많이 다르기 때문이다. 임의로 가감되었으며, 삭제되고 왜곡된 부분 또한 상당하다. 아무리 기억이 믿을게 못된다지만, 이토록 만들어진 삶을 살아내는 엄마를 보며 뤼미르는 종종 파비안느에게 고개를 가로젓는다.


대배우다운 파비안느의 면모에 주변인들이 상처 입는 듯 보이지만,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가족이라는 울타리는 그 상처들을 상쇄시킬만했던 것 같다. '기억은 믿을게 못돼'라는 대사가 나오는 부분이 또 있는데, 영화의 끝 무렵에 뤼크가 엄마라면 진저리를 치는 뤼미르를 앉혀 놓고 이야기하는 부분이다. 이 부분은 앞서 파비안느가 이야기한 기억에 관한 이야기를 다시금 생각하도록 만든다.


"넌 촬영이 끝나면 엄마 연기만 따라 했잖니."

"정말요? 기억 안 나요."

"기억은 믿을게 못돼"






장점이 두 가지면
사는데 충분하고도 남아.


파비안느의 애인인 자크는 평소 빈말이나 거짓말을 할 줄 모른다. 그의 그런 점이 단점이라고 파비안느는 이야기한다. 하지만 자크에게는 장점이 두 가지 있었으니, 바로 사과가 빠르다는 점과 맛있는 티라미수를 만들 수 있다는 점이다. 파비안느는 자크에게 그걸로 살아가는데 충분하다고 이야기한다.


파비안느는 평소 직설적으로 이야기하는 것 같아 보이지만, 실은 극 중에서 가장 본심을 숨기고 있는 인물이다. 자서전에서 특히 그녀의 솔직하지 못함이 면밀히 드러난다. 뤼미르와 뤼크가 분노하는 정도로 미루어 짐작하건대, 출판 관계자의 의견이 반영되었다고 보더라도 실제 그녀의 삶과 전혀 다른 이야기가 적혀 있는 듯 보이기 때문이다.


이는 스스로에 대해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본심과 다른 이야기를 하는 뤼미르와는 다르다. 파비안느는 스스로에 대해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본심을 이야기하지 않는 듯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가 간혹 가다 내뱉은 본심(자크에게 이야기한 것처럼)이 더 크게 와 닿는지도 모르겠다.


차 한 잔도 직접 내려먹지 않을 만큼 손 하나 까딱하지 않는 파비안느가 살아가는데 장점 두 가지만으로 충분하다고 이야기하는 부분은 실로 의아하다. 그녀는 누구보다 살아가는데 많은 것을 필요로 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런 그녀는 종종 반려견과 함께 중국식당을 찾아 혼자 점심을 먹는데, 그곳에서는 아무도 그녀를 알아보지 못한다. 자신을 알아보는 사람이 하나도 없는 중국 음식점에 개를 데리고 가 북적이는 손님들 사이에서 개와 함께 음식을 나눠 먹는다.


어쩌면 그녀의 해야 할 일이 연기이기 때문에 대배우의 부유하고 거만한 삶을 연기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그녀 역시 살아가는데 두 가지(개와 중국음식)만로 충분했는지도 모르겠다.





여담이지만, 극 중 '마농'이라는 인물은 이번 작품이 첫 출연작이라는 '마농 끌라벨'이 연기했다. 유일하게 본명과 같은 이름의 배역을 맡은 배우다. 짙은 눈썹과 또렷한 이목구비, 허스키한 목소리의 그녀는 극 중 신인 배우 역할을 연기했는데, 그 캐릭터가 강렬해서 크레딧이 올라간 후에도 오랜 시간 동안 그녀의 목소리가 귓전을 맴도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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