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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부언니 Apr 15. 2020

문제 많은 정원과 미래의 숙련된 정원사들에게

『부자의 언어』존 소포릭, 윌북 출판사




정원에는 인생의 전체 과정,
그러니까 나고 죽는 것이 다 존재한다.


책상 위에 10년 동안 놓여 있던 도토리도, 비옥한 토양에 심는다면 어떻게든 소생해 낼 것이다. 잠자고 있던 씨앗은 신비하게도 거대한 참나무로 자라게 되고, 그 나무는 수 천 알의 열매들을 만들어 낸다. 우리에게는 이 도토리 한 알 보다 큰 잠재력이 있고, 만일 우리가 비옥한 토양에 심긴다면 우리의 개성을 완전히 꽃 피울 수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자기계발서를 정말 읽기 힘들어하는 편이다. 아마도 어릴 적 학교에서 강제로 읽게 시켰던 『Secret』탓인지도 모르겠다.(이 이야기를 담당자가 좋아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책의 영어 원제가 『The Wealthy Gardener』라는 점을 위안삼은 식물 덕후는 책의 마지막 장을 넘기는데 가까스로 성공했다. 그런데 막상 책장을 덮고 보니 이 이야기는 특정 소수의 부자에 관한 것이 아니라, 삶이라는 정원에서 태양을 향해 자라는 우리들의 이야기였다.


부라는 것을 금전적인 물질에만 국한 지었던 나의 편협함을 반성한다. 저자인 존 소포릭(소포라라는 식물을 좋아하는데 이름이 비슷한 것도 마음에 들었다.)은 금전적이고 물질적인 부유함 뿐만 아니라, 심적이고 정신적인 부유함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그는 정원사가 들려주는 우화를 바탕으로 우리가 삶을 어떻게 다각적으로 부유하게 가꿀 수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우리는 30년 동안 삶에 대해 배우게 되고 이어서 다시 30년 동안 갖가지 방향으로 삶을 일구어내며, 마지막 30년 동안에는 그동안 배우고 일군 것들을 수확하게 된다는데, 이는 정원사가 씨를 심는 것부터 시작해 정원을 가꾸는 일과 별반 다르지 않다.





목적이 있는 정원은
씨앗에 얽매이지 않는다.
노력이 중요하긴 하지만, 정원 일은 그게 다가 아니야. 꿀벌이 꽃가루를 나르고, 꽃이 벌을 유혹하고, 씨앗이 비옥한 토양에 떨어지고, 씨앗을 자라게 해 줄 비도 와야 한다는 걸 우린 자주 간과하지.(중략) 자연 속에서 우리는 주위를 둘러싼 조화로운 에너지를 볼 수 있어. 바람을 보진 못해도 나뭇잎이 바스락거리는 건 볼 수 있어.


좋은 정원에는 늘 우리를 일하게 하는 씨앗들이 있다. 그리고 나는 이제와서야 씨앗을 고르는 작업을 하고 있는 것 같다. 꽤 과거에 나는 내 정원의 목적을 어렴풋이 정했던 것 같다.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한 방법에 대해 알 길은 없었지만, 두고두고 꺼내보고 싶은 문구를 만나거나 엔딩 크레딧의 마지막 줄이 사라질 때까지 자리를 뜰 수 없게 만드는 영화를 보게 된 날에는 나도 누군가의 마음에 가 닿는 무언가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겨우 해내곤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마음이 나의 씨앗이었다.


갓 서른이 된 이제 와서야 직장을 옮기고, 글을 쓰거나 혹은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일을 내내 하면서 씨앗을 고르고 있는 것이다. 삼십대가 가기 전에 정원에 씨앗들을 늘어놓을 수나 있을까? 그리고 씨앗은 비옥한 토양에 심어야 한다. 골라낸 씨앗들을 심을 비옥한 토양을 찬찬히 살펴봐야겠다.





정원은 미래에 뭘 하겠다는 생각에 응답하지 않지
꿈도 언젠가 할 행동들에 대답하지 않고


나는 (사실 쥐뿔 아는 것도 없으면서)내 생각이 언제나 옳다고 느끼는 아집을 경계하기 위해 유칼립투스를 곁에 두고 본다. 녹색의 잎을 한 유칼립투스 나무는 800여 가지가 넘지만, 나뭇잎의 색과 모양 등을 기준으로 보아 우리가 육안으로 구별할 수 있는 대표적인 구분은 겨우 세 가지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내가 유칼립투스의 나머지 종류를 육안으로 구분할 수 없다고 해서, 그 나무의 종류가 3가지밖에 되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지금은 사무실 책상 위에 겨우 블랙잭 화분 하나가 있을 뿐이지만, 언젠가 적어도 대표적인 세 종류의 유칼립투스(블랙잭, 폴리안, 구니)는 다 길러볼 수 있게 된다면 좋겠다.


다시 말해, 내가 유칼립투스를 기르는 이유는 눈 앞에 보이는 상황이 나의 기대와 다르기 때문에 필요 이상으로 좌절하거나, 내 마음이 편한 대로 생각하기 위해 현실을 왜곡하고 싶지 않아서다. 판단력이 흐려지면 미래에 대한 계획이나 꿈을 위한 어떠한 행동을 실천에 옮기기가 쉽지 않다. 너무 당연한 이야기지만, 미래는 생각보단 행동할 때 응답하며 꿈은 앞으로 하게 될 행동보다는 지금 하고 있는 행동들에 대답한다.

'어떻게 하지?'는 고민이 아니라는 말을 참 좋아한다. A를 위해 B를 해야지, 혹은 부족하겠지만 C라도 시도해봐야지.라는 등 구체적인 목적과 행동을 설정하는 것이 고민의 시작이라는 의미다.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하지?' 하며 발을 동동 구르는 것은 목적을 달성하는데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을뿐더러, 정신적인 에너지만 소모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아주 오래된 말이지만 우리 조상님들이 '쇠뿔도 단김에 빼라'라고 하신 이유가 있을 것이다.




우리 친애하는 정원사들에게
자신의 길을 선택할 자유를 얻기를
- 부의 정원사 조문 서신 中


인생을 4막으로 나눈다면
나는 지금 여름 즈음을 지나고 있는 셈이다.
무럭무럭 광합성해서 다가올 계절들을 맞이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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