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난 이유는 결국 ‘걱정’이었다.
오늘은 가족과 저녁 외식을 하기로 한 날이었다.
6시, 집 근처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만나기로 했다.
딸아이는 친구와 먼저 약속이 있어 저녁 먹기 전까지 집에 오기로 했다.
하지만 6시가 지나도 아이는 오지 않았다.
전화를 걸었지만 핸드폰은 꺼져 있었다.
배터리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연락할 방법이 없다는 건 생각보다 사람을 더 초조하게 만든다.
혹시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닐까.
길이 서로 엇갈린 건 아닐까 하고 집 근처를 몇 바퀴나 돌았는지 모른다.
괜히 여기저기 아이를 찾으러 다녔다.
이쯤 되면 오는 길에 보이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걱정은 점점 커졌고, 그만큼 화도 함께 올라왔다.
결국 찾지 못한 채 꺼져 있는 아이 핸드폰에 메시지를 남겼다.
‘6시까지 오기로 했으면 약속은 지켜야지.’
‘핸드폰이 꺼졌으면 친구 핸드폰으로라도 연락해야 하는 거 아니야!?’
기다리는 사람의 마음은 왜 생각하지 않는 걸까.
평소에도 약속을 잘 지키지 않던 모습이 떠올라
괜히 더 서운해지고, 더 화가 났다.
지하 주차장에서 기다리던 남편과 둘째에게
결국 예약을 취소하자고 말하려던 순간, 마침 그때 딸아이를 만났다.
반가움보다 먼저 올라온 건 굳어버린 표정과 화난 말투였다. 그리고 그 감정은 고스란히 아이에게도 전해졌다.
딸아이 역시 화가 난 얼굴로 자기 나름의 이유를 쏟아냈다. 핸드폰이 꺼졌고, 그래서 연락을 못 했고, 그런데 엄마는 다짜고짜 화를 냈다는 이야기였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더 화가 났다.
약속시간에 늦은 미안함은 전혀 없고 자기변명만 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결국 우리는 그 상태로 식당에 들어갔다.
아이가 좋아하는 피자를 시키고, 이것저것 음식을 주문했지만 식탁 위 분위기는 전혀 따뜻하지 않았다.
딸아이는 팔짱을 낀 채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꺼져있는 핸드폰만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
유난히 더 멀게 느껴졌다.
나는 화를 참고
“이거라도 먹어”라고 말했지만
아이는 끝내 고개를 저었다.
그 모습에 또 한 번 마음이 상했다.
그날 우리는 같은 테이블에 앉아 있었지만
각자 다른 감정을 먹고 있었다.
돌아와 생각해 보니 내가 화를 냈던 이유는 단순했다.
약속을 어긴 것도 이유지만, 혹시라도 아이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까 봐
그게 너무 걱정됐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마음은 아이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
걱정은 쉽게 화가 되고, 화는 쉽게 상처가 된다.
아이도, 나도
그날은 서로의 마음을 이해할 여유가 없었다.
엄마라고 해서 늘 차분하고 현명할 수는 없다.
그래도 다음에는
조금 덜 화내고,
조금 더 설명하고,
조금 더 기다려봐야겠다.
기다리는 엄마의 마음은 늘 크지만,
그 마음을 어떻게 전할지는 다시 배워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