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기할 나와 마주치기 싫어서
어릴 땐 하고 싶던 게 진짜 많았다.
아틀란티스를 찾아 나서는 고고학자가 되고 싶었다가도,
그림 좀 그린다고 칭찬받고는 캐릭터 디자이너가 되고 싶었다.
친구 따라 미용 배우겠다며 헤어디자이너를 꿈꾸기도 했고,
연예인도 되고 싶었다. 당연히.
그런 마음은 어른이 된 후에도 사라지지 않았다.
회사만 옮기면 지루했던 일상이 더 괜찮아질 것 같았고,
새로운 자격증 공부를 하면 뭔가 달라질 것 같았다.
속초로 이사 오면 인생 리셋도 가능할 줄 알았다.
근데 결과는?
똑같았다.
회사도, 공부도, 새로운 시도도 결국엔 또 그만뒀다.
그래서일까.
요즘은 아예 시작을 안 한다.
누군가 무엇을 제안하면 ‘그건 좀…’이 먼저 튀어나온다.
공휴일에는 남편과 함께 쉬어야 해서, 지역이 시골이니까, 수입이 불안정해서.
솔직히 말하면,
그냥 하기 싫은 걸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데 익숙해졌다.
내가 못나서가 아니라 그저 상황이 좋지 않아서 못하는 거라고 스스로를 위로한다.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핑계.
시작하지 않으면, 실패하는 나도 없으니까.
근데 가끔은 문득 생각을 한다.
이렇게 계속 ❛ 안 하는 사람 ❜ 으로 살아도 되나?
‘어차피 또 포기할 나‘와 마주치기 싫어서
나는 자꾸만 시작 자체를 미뤄버린다.
예전엔 뭐든 궁금했고, 배우고 싶었는데
요즘은 그 마음도 사라졌다.
자신감 넘치던 어린 시절에는 이런 회피형 인간이 이해되지 않었다.
그런데 지금, 바로 내가 그렇다.
새로운 시작은 늘 무섭다.
잘 안 될 것 같으면, 실패 전에 핑계를 찾아 시작하지 않는 게 편하다.
그러면 상처도, 자존심 상할 일도 없어지니까.
시작하지 않으면, 실패하지 않은 나만이 남는다.
하지만 ‘시작 없이 실패하지 않은 나’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시작조차 하지 않은 채 가만히 있는 나.
누가 누르지도, 막지도 않았는데
혼자서 주저앉아버린다.
이런 내가, 나도 너무 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