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살이가 힘들고 지쳐도 온전한 내 편 하나만 있으면 살아지는 게 인생이라. 내가 니 편 해줄 테니 너는 너 원대로 살라."
영화 '계춘할망'의 대사가 꼭 우리 할머니가 내게 해 준 말씀과 쏙 닮아서 놀랐던 적이 있다.
늘 바쁘셨던 부모님을 대신해 외동인 나의 주 양육자이자 베프를 자처하셨던 우리 할머니.
내가 스무 살 때 할머니께서 돌아가셨으니까... 20년간의 할머니와의 추억은 지금 40이 넘은 나에겐 모두 20년도 더 지난 과거인데... 그 온기는 지금도 내게 소중히 남아있다.
내 등을 토닥여 주었던 할머니 손의 그 가락지 빛깔을, 나를 안아주었던 할머니 품의 그 스웨터 감촉을, 함께 덮고 자던 그 이불의 냄새를, 늘 나를 북돋아주던 할머니의 그 따스한 음성을 나는 기억한다.
참 인정스러웠던 우리 할머니는 늘 입버릇처럼
"조선 팔도 강산에 하나뿐인 우리 딸"이라고 나를 불러주셨다. 그토록 간절히 기다린 아들 손주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내가 특별히 뭘 잘하는 재주가 있다거나 곰살맞은 손녀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늘 무조건적인 사랑을 내게 베풀어 주셨다.
1916년생이신 할머니가, 학교도 제대로 못 다니셨던 우리 할머니가 요즘의 내로라하는 학자들의 '존재 자체의 사랑'을 내게 실천하셨던 것이다.
'어떤 것은 사랑을 받고 있기 때문에 가치가 있다.'는 말처럼 있는 그대로의, 존재 자체를 향한 사랑은 내가 긍지를 갖고 살게 해 준 단단한 밑거름이 되었다.
그런 나는 내 삶에서 얼마나 사랑을 흘려보내며 살고 있는가.
대답은 부끄럽게도 '머쓱, 글쎄올시다.'이다. 요즘 몸이 안 좋아 부쩍 더 예민해진 아들에게 짜증으로 맞받아치고 있는 못난 애미다. 자폐 성향상 냄새나 식감에 민감해서 약을 잘 먹어내지 못하고 토하기 일쑤라 한번 아프면 오래가는 아들인데, 이런 아들을 온전히 받아주기엔 나는 품이 작은 못난 애미라는 걸 여실히 느끼고 있다.
감히 할머니만큼은 아니어도 사랑 많은 마음 부자 엄마가 되고 싶은데... 난 언제나 니 편이라고 따스히 말해주고 싶은데... 현실은 아휴 이거 원...
무조건적인 사랑을 상기하고 감사하는 데 그칠 게 아니라 나 역시 있는 그대로의 아들을 사랑하길, 아들과 또 다른 이들에게 사랑으로 보탬이 되는 존재가 되길... 내 힘으론 안되니 제발 도와주시라 간곡히 기도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