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자폐성 장애를 알게 된 후 지금도 불쑥불쑥 분노와 우울이 튀어나오지만, 그래도 점점 수용의 비중이 커지는 듯하다. 자폐 관련 책이나 영화를 내 손으로 다시 찾아보고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보고 난 후의 이 헛헛한 마음은 무어람...
톰 크루즈와 더스틴 호프만의 '레인 맨'은 비범한 암기력을 가진 자폐 청년이, 이병헌과 박정민의 '그것만이 내 세상'은 피아노 천재인 자폐 청년이, 유지태와 이다윗의 '스플릿'은 볼링 천재인 자폐 청년이 나온다. 우영우, 문상태, 포레스트 검프 역시 비상한 능력자들...
휴... 다 이렇게 천재성이 있다면 얼마나 좋겠냐만은, 자폐인 중에 기억, 암산 또는 예술 분야에 천재성을 보이는 경우는 지극히 드문 일이라 한다. 영화화하기 좋아서 택한 사례일 뿐, 혹은 판타지 같은 허구일 뿐, 자폐라고 모두 천재성을 지닌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그러니 영화 속 주인공의 천재성보다는 자폐적 특징에 더 눈길을 주십사 바라며...
'레인 맨' 영화의 앞부분에는
"감각기능은 비정상이지만 기능을 못하는 것은 아니지. 의사표현을 잘하지 못해. 감정도 우리와는 다르게 느끼지. 그래서 만사가 늘 규칙적이야. 항상 똑같이 행동하면서 스스로를 보호하지."
라고, 의사가 주인공의 자폐성 장애를 축약해 설명하는 장면이 나온다.
위 설명에서처럼, 주인공은 꼭 정해진 시간표대로 TV를 봐야만 하고, 테이블에 메이플시럽과 이쑤시개가 없다고 안절부절못하기도 하며, 신시내티 케이마트에서 산 팬티만 입어야 된다고 고집을 피우는 등 자폐의 강박적 특징을 보인다.
또, 뜨거운 물을 틀자 옛날 기억이 떠올라 자신의 머리를 때리며 괴로워하고, 포옹을 하자 닿는 감각이 싫어 소리치며 뿌리치고, 화재경보기 소리에 놀라 귀를 막고 문에 자기 머리를 계속 부딪치는 등 자폐의 감각적 어려움도 나온다.
자연스레 우리 아들 모습도 겹쳐 보인다.
자신의 하루 일과를 몇 번이고 계속 반복하며 말하고, 소파 위 매트가 조금이라도 흐트러지면 계속 각 잡아 정리하고, 변기 물 위에 작은 거품이라도 있으면 그게 거슬려 계속 물을 내리고, 엄마인 내 머리는 묶지 말고 꼭 풀려 있어야 안심이 되는 우리 아들.
특정 소리들을 무서워하여 귀를 수시로 막고, 그네와 트램펄린에 집착해 더 높이 더 세게 타고, 자기가 좋아하는 알파벳 영상의 볼륨을 높여 주변에 듣기 힘든 소리들을 덮으려 하고, 가지 못하는 곳과 못 먹는 음식도 부지기수인 우리 아들.
양치질 하나를 할래도, 변기물 위에 떨어진 거품이 거슬리고, 수전에서 흘러나오는 물은 계속 만지며 느끼고 싶고, 치약 뚜껑을 눌러 열기엔 소근육은 약하고, 이에 닿는 칫솔 느낌은 너무 싫고 아파서 견딜 수가 없고... 사소하거나 간단해 보이는 일조차도 자폐인에게는 단계단계마다의 도전인 것이다.
"흥, 천재가 웬 말이냐. 자립, 독립이 인생 최대 목표거늘!"
나 혼자만의 볼멘소리가 흘러나온다. 천재가 아니면 뭐 어때. 우리 아들은 얼굴 천재라 하자. 치.
강박과 감각적 어려움을 딛고 열심히 크고 있는, 보통의 자폐 아들과 함께 오늘도 파이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