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 자체가 고마운 자녀들

욕심도 많으시군요.

by 신성철

아동 청소년을 전문으로 상담하는 꽤 유명한 상담자에게 상담을 받기 위해 다수의 부모들이 상담실을 찾았습니다.

첫 번째 부모의 상담이 시작되었습니다.

부모 : 우리 아들은 초등학교 때는 전교 1등만 했는데 중학교 올라가더니 전교 10등에서 올라가지를 않아요. 이것저것 다해 봤는데.... 속상해 죽겠어요. 어떻게 하면 초등학교 때처럼 성적이 나올 수 있을까요?

첫 번째 부모의 상담이 끝나고 두 번째 부모가 상담실로 들어갔습니다.

부모 : 금방 나가신 분은 뭐 때문에 저렇게 속상해하세요?
상담자 : 자녀 성적이 전교 10등밖에 안된다고 속상해하셨어요.
부모 : 네에?! 전교 10등인데 속상하다고요? 우리 애는 반에서 중간밖에 못해서 속상한데 전교 10등인데도 속상하다고요? 욕심도 많네요..... 저는 우리 애가 전교에서 중간이라도 들었으면 좋겠네요...

두 번째 부모의 상담이 끝나고 세 번째 부모가 상담실로 들어갔습니다.

부모 : 금방 나가신 분은 뭐 때문에 저렇게 속상해하세요?
상담자 : 자녀 성적이 반에서 중간밖에 안 된다고 속상해하셨어요.
부모 : 네에?! 반에서 중간이나 하는데도 속상하다고요? 욕심도 많네요. 우리 애는 한 번도 꼴찌에서 벗어난 적이 없어요... 저는 우리 애가 꼴찌에서 한 번이라도 벗어나면 소원이 없겠네요....

세 번째 부모의 상담이 끝나고 네 번째 부모가 상담실로 들어갔습니다.

부모 : 금방 나가신 분은 뭐 때문에 저렇게 속상해하세요?
상담자 : 자녀가 항상 꼴찌를 해서 속상하다고 하시네요.
부모 : 휴우... 그래도 학교는 가나 보네요. 꼴찌라도 하는 걸 보니..... 욕심도 많네요. 우리 애는 학교를 안 가요... 성적은 상관없으니 학교라도 갔으면 좋겠어요.....

네 번째 부모의 상담이 끝나고 다섯 번째 부모가 상담실로 들어갔습니다.

부모 : 금방 나가신 분은 뭐 때문에 저렇게 속상해하세요?
상담자 : 자녀가 학교를 안 가서 속상해하셨어요.
부모 : 하이고... 욕심도 많으시네요. 그래도 그 집 아들은 집에는 있잖아요. 우리 애는 집에도 없어요. 가출을 밥 먹듯이 해요... 학교는 안 가도 되니까 집에라도 제발 좀 잘 들어왔으면 좋겠어요.

얼마 전 유명 상담자가 진행하는 팟 캐스트에서 들은 내용입니다. 저는 상대적으로 비교해서 나의 상황에 대해 감사하고 위안을 삼는 것에 대해서 반대합니다. 옆집 아이가 꼴찌를 한다고 해서 우리 애가 중간밖에 못하는 것에 감사할 이유는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옆집 아이의 전교 1등 성적 때문에 우리 아이의 전교 5등 성적에 대해 불평하고, 불안해할 필요도 없습니다. 옆집 아이가 전교 1등을 한다고 해서 우리 아이의 전교 5등 성적이 하찮은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무언가를 비교해서 나의 지금 상황에 대해서 위안을 삼는 것은 어쩌면 지금의 현실에 대해 회피하거나 눈감는 행위 일 수 있습니다.

가출한 아들이 집에 오면 부모는 그다음을 반드시 생각합니다. 학교를 안 가고 집에만 있던 아들이 학교를 가기 시작하면 부모는 성적에 대해 신경을 쓰기 시작할 겁니다. 즉 상대적으로 얻은 행복이나 기쁨은 오래가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다만 우리가 한 가지 기억할 것은 자녀를 바라볼 때 우리가 감사하고 위안을 삼아야 하는 것은 우리 자녀가 지금 살아서 내 앞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위대한 심리학자 아들러가 말했듯이 자녀가 지금 살아있고, 내 앞에 존재하는 것 자체가 가장 큰 기쁨이고 감사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예전 전 20대부터 알고 지내던 선배의 큰 딸이 교통사고로 사망한 일이 있었습니다. 소식을 듣고 저도 충격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부랴부랴 장례식장에 도착을 했습니다. 망연자실 앉아 있는 선배의 손을 꼭 잡았습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가 떠오르지를 않았습니다. 그러자 선배가 울음 가득한 목소리로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공부해라.... 일찍 들어와라... 화장하지 말라...... 말 잘 들어라..... 이런 소리 안 했을 텐데..... 그냥 살아만 있어주라고.... 내 옆에만 있어 주라고 그렇게 말해 주고 싶은데.....’

펑펑 우는 선배를 보며 저도 부둥켜안고 한참을 울었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원수 같은 자식이라도 내 앞에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하고 다행한 일입니까?

오늘은 그런 자녀를 한 번 안아주는 것은 어떨까요? 그리고 ‘사랑해’, ‘고마워’라고 속삭여 주는 것은 어떨까요?

자녀는 그저 내 옆에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고맙고 소중한 존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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