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서 해라
상황 1
막내가 요즘 즐겨먹는 음료수가 있는데, 제가 근무하는 대학에서 직접 생산하는 ‘감식초 화이버’입니다. 새콤한 맛이 나는 데도 막내는 엄청 좋아합니다. 탄산음료보다는 감식초를 좋아하니 부모로서는 다행이다 싶습니다. 문제는 많이 먹는다는 것입니다.
오늘도 냉장고 문을 열고 감식초 두 병을 들고 나옵니다. 한 병만 들고 나와도 될 텐데 한 손에 한 병씩 들었습니다.
막내 : 아빠~ 나 이거 먹어도 돼요?
아빠 : 먹고 싶으면 먹어도 돼~
막내 : 그래요? 두 병 다 먹어도 돼요?
아빠 : 그래. 네가 먹고 싶으면 먹어.
막내 : 네에~ 근데 이거 그냥 마셔요? 아님 다른 거랑 섞어 먹어요?
아빠 : 그건 네가 알아서 하면 된다. 네가 먹고 싶은 대로 먹어
막내 : 네에~~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막내는 냉장고로 가서 먹다 남은 콜라를 들고 나와 컵에 따릅니다. 그리고는 감식초를 콜라가 있는 컵에 따릅니다.
아빠 : 왜 그렇게 먹어!
막내 : 네에?
아빠 : 그걸 왜 콜라에 섞어 먹어! 그냥 먹지!
막내 : 아빠가 알아서 먹으라고 했잖아요.
아빠 ; 그건.......
상황 2
혼자 방학 중인 막내는 아침, 점심, 저녁을 집에서 해결합니다. 아침은 저랑 같이 먹고, 저녁은 다 같이 먹는데 점심은 막내 혼자서 해결해야 되는 날이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 막내는 점심 걱정을 많이 합니다.
아빠 : 나 출근한다. 점심 잘 챙겨 먹어라
막내 : 아빠~ 점심 뭐 먹어요?
아빠 : 네가 먹고 싶은 거 알아서 냉장고에서 찾아 먹어.
막내 : 네에~~
이른 퇴근을 하고 집에 왔습니다. 막내가 점심을 잘 차려먹었는지 걱정이 되어 물었습니다.
아빠 : 오늘 점심 잘 챙겨 먹었어?
막내 : 네에. 라면 끓여 먹었어요?
아빠 : 라면?
막내 : 네에. 라면 한 개 끓여 먹었어요.
아빠 : 왜 라면을 먹어! 엄마가 아침에 반찬 맛있게 잘해 놨던데 밥을 먹지.
막내 : 라면이 맛있어요.
아빠 : 그렇다고 자꾸 끓여 먹으면 어떡해!
막내 : 아침에 아빠가 점심 알아서 챙겨 먹으라고 했잖아요
아빠 : 그건.......
분명히 저는 막내에게 ‘네가 스스로 알아서 해’라고 했는데 정작 막내가 스스로 알아서 하는 행동에 대해 잔소리를 하고 있습니다.
사실 제가 막내에게 ‘알아서 해’라고 했을 때는 ‘네가 원하는 것을 해’가 아니라 ‘아빠가 원하는 것’ 안에서 무언가를 하라는 이야기입니다. 결국 부모가 자녀에게 ‘알아서 스스로 해’라는 말속에서는 부모가 뭘 원하는지 잘 생각해보고 결정하라는 이야기입니다.
당연히 부모의 ‘스스로 하라’는 말속에도 부모가 시킨 것에 대해서 ‘네에’하고 알아서 하라는 의미가 숨어 있습니다.
‘양말 벗어서 빨래 통에 스스로 갖다 놔라’
‘깨우기 전에 알아서 일어나서 준비하자’
‘잔소리하기 전에 알아서 스스로 방 치우자’
‘스스로 스마트 폰 좀 그만하자’
‘공부 좀 알아서 스스로 해라’
자녀에게 ‘스스로 알아서 하라’는 것은 절대 자녀가 원하는 것을 마음대로 하라는 것이 아닌 거지요.
만약 부모가 ‘네가 알아서 스스로 하라’고 이야기할 때에는 진심으로 자녀가 알아서 스스로 한 것에 대해서 ‘존중’할 줄 알아야 합니다.
존중이란 나의 기대와 다른 타인의 행동을 그대로 수용하는 것입니다.
자! 지금부터 자녀가 진짜 알아서 하는 것에 대해 ‘존중’ 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