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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성철 Sep 01. 2021

묻지 말고 기다려 준다는 것

기다리는 마음

학원에서 돌아온 둘째의 얼굴이 어둡습니다. 인사도 하는 둥 마는 둥 자기 방으로 들어가 버립니다.


학원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 싶어 궁금증과 함께 걱정 올라옵니다. 물어볼까 하다가 기다려보기로 했습니다.


잠시 후 둘째가 거실로 나왔습니다.  여전히 얼굴은 어둡습니다. 조심스럽게 물었습니다.



아빠 : 얼굴이  많이 어두 워보이네 

둘째 : 제가요?

아빠 :  그래. 걱정이 가득한 얼굴이다

둘째 : 큰일은 아니고 그냥 학원에서 일이 좀 있었어요

아빠 :  아빠가 걱정 안 해도 되는 일이야?

둘째 : 네에.  걱정 안 하셔도 돼요

아빠 :  그래.  혹시라도 아빠 도움이 필요하면 이야기해. 아빠가 도와줄 수 있는 게 있으면 도와 줄테니까. 언제든지 이야기해.

둘째 :  네에



그렇게 대화를 마무리하려는데 막내가 불쑥 끼어듭니다.



막내 :  형!  이야기해봐라.  무슨 일인데?  친구랑 싸웠나?  아니면 학원 선생님한테 혼났나? 그것도 아니면 여자 친구랑 싸웠나?

둘째 :  너는 몰라도 된다.

막내 : 여자 친구랑 싸웠지?  맞지?

둘째 : 아니거든

막내 : 그럼 뭔데? 이야기해 봐! 아빠가 도와준다잖아

둘째 : 말 안 하고 싶다.  그만 물어라

막내 : 참나! 그게 뭐 큰 비밀이라고 이야기를 안 하나?  혹시 못된 짓 한 거 아니야? 그래서 말 못 하는 거 아니야?

둘째 : 아!  진짜! 그만하라고!  말하기 싫다고 하잖아!



둘째가 막내에게 한 소리 하고는 자기 방으로 들어가 버립니다. 그 모습을 본 막내가 한 마디 합니다.



막내 : 참나... 궁금하구먼. 이야기 좀 해주고 들어가지. 아빠는 안 궁금해?

아빠 : 아빠도 궁금해

막내 : 그럼 아빠가 계속 물어봐. 아빠가 물어보면 이야기할 수도 있잖아.

아빠 : 이야기하기 싫다잖아. 그럴 때는 기다려주는 게 좋아.

막내 : 언제까지? 계속 기다려?

아빠 : 아빠가 생각하기에는 형이 스스로 말해 줄 때까지?

막내 : 휴우.... 어렵구먼



요즘 즐겨보는 드라마가 있습니다. 의사 친구 5명의 이야기를 다룬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 2’입니다.

드라마를 보면서 현실과는 많이 동떨어진 병원 의사 생활에 당황스럽기도 하지만 막장 내용 없이 가슴 따뜻한 에피소드들로 채워진 드리마라 본방사수를 하고 있습니다.


특히 인물들 간의 갈등과 그 갈등을 풀어가는 과정이 너무 재미있고 나름 유익합니다. 갈등을 풀어가는 과정이 상당히 상담적이기도 하구요.


그중 드라마 주인공들이 가진 공통점이 하나가 있습니다. 각기 다른 성격을 가졌음에도 공통적으로 가진 것이 있는데 바로 ‘타인에 대한 궁금증이 있어도 물어보지 않는 것’입니다.


연인관계에서도 물어보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여자 친구의 어머니가 많이 다쳐 병원에 입원을 했는데도 남자 친구는 그것에 대해 묻지를 않습니다. 친구관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글을 읽으시는 분들 중에는 ‘물어보지 않는 것’은 그만큼 그 사람에 대해 관심이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게 아닌가 하는 반문을 하시는 분도 계실 겁니다.


그런데 드라마를 보면 그들이 묻지 않는 이유는 그 사람에 대해 관심이 없기 때문이 아닙니다. 이기적이어서도 아닙니다.


드라마에서도 ‘왜 안 물어보세요?’라고 묻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때 돌아오는 대답은 ‘네가 말하고 싶어 하지 않는 것 같아서’입니다.


그렇습니다.

상대에게 묻지 않는 이유는 딱 하나입니다. 말하고 싶어 하지 않는 상대의 마음을 수용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상대가 스스로 말할 때까지 말없이 옆에서 기다려줍니다.  짜증을 내거나 다그치지 않습니다.


물론 물어볼 때도 있습니다. 자기에게 다 털어놓으라고 말을 하기도 합니다. 그때 상대가 ‘나중에 말할게요’라고 하면 ‘그래. 말하고 싶을 때 이야기해. 항상 니 옆에 있을게’라고 합니다.

저는 이 장면을 보면서 상대가 말해 줄 때까지 묵묵히 기다려 주는 것이 상대에게 큰 힘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흡사 아들러가 힘들어하는 친구가 있을 때 일방적으로 위로하지 말고 그 사람이 그 아픔을 충분히 다룰 수 있도록 지켜보라고 조언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우리는 가끔 가까운 사람의 비밀, 아픔, 마음을 다 알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끊임없는 질문과 나름의 위로를 던집니다.


그러나 가끔은 묻지 않고 말없이 기다려 주는 것이 어쩌면 그 사람에게는 더 큰 힘이 될 수도 있겠구나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11살의 막내는 16살 형을 아직도 이해 못합니다. 자신의 궁금증을 무시하는 형이 그저 원망스러울 뿐이고, 그걸 기다려 주자고 하는 아빠가 이해가 안 될 뿐입니다.  


오늘도 막내의 그런 원망을 다스리기 위해 치킨이 집으로 옵니다. 물론 제 돈이 투자되어서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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