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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성철 Jul 16. 2022

미리 좀 하자!

미루지 맙시다

퇴근하는 길 집 근처에서 하교하는 둘째를 만났습니다. 가방을 메고 힘없이 터벅터벅 걷고 있는 둘째를 보니 제 고등학교 시절이 생각나 짠합니다.



아빠 : 이제 오는 거야? 

둘째 : 네에

아빠 ; 저녁은 먹었어?

둘째 ; 아니요... 아직

아빠 : 그래? 아빠도 아직 안 먹었는데 저녁 먹고 들어갈까?

둘째 : 음.... 네에

아빠 : 뭐 먹고 싶어?

둘째 : 음... 아무거나요

아빠 : 아무거나? 오랜만에 고기 먹을까?

둘째 : 네에. 전 괜찮은 거 같아요

아빠 : 그래 그럼 고기 먹자. 집에 누가 있으려나?

둘째 : 아마 막내가 있지 않을까요?

아빠 : 그래? 전화해 보자



차를 주차하고 둘째와 아파트 정문을 나서며 막내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아빠 : 어디야?

막내 : 집이요

아빠 : 혼자 있어? 엄마나 형 없어?

막내 : 없어. 나밖에 없어. 지금 혼자 외롭게 쓸쓸히 있어

아빠 : 좋은 시간 보내고 있구먼

막내 : 엥? 뭔 소리?

아빠 : 밥 먹었냐는 소리지~~

막내 : 헤헤헤~~ 안 먹었는데

아빠 : 작은 형이랑 고기 먹으러 갈까 하는데 같이 가자

막내 : 고기? 음...... 고기라..... 음..... 고기......

아빠 : 설마 지금 고민 중?

막내 : 음..... 그게.... 사실은....... 숙제를 덜 해서.... 숙제가 급한데...... 음......

아빠 : 먹고 하면 안 되나?

막내 : 그게.... 숙제가 많아..... 많아도 너무 많아...... 짜증 나게 많아.....

아빠 : 그래? 숙제가 그렇게 많아서 우짜노?

막내 : 그러니..... 학원 숙제가 너무 많아.... 숙제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

아빠 : 그래서 못 간다고? 그럼 저녁은 어쩌려고?

막내 : 음........ 오늘은 그냥 집에 있는 밥 먹을게.. 아쉽구먼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막내의 목소리에 아쉬움이 가득합니다. 평소 고기라면 자다가도 일어나는 막내인데 숙제 때문에 고기를 포기해야 하니 속상하고 아쉽겠지요.


그렇게 막내에 대한 안쓰러운 생각이 드는데 순간 미리미리 숙제를 해 놓지 않은 막내에게 화가 나기 시작합니다. 속상함이 화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러니까 숙제 좀 미리미리 진작에 좀 해 놓지. 늘 놀다가 막판에 하려니까 힘들지’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옵니다.


그러나 차마 밖으로 내지 못하고 그냥 속으로 담아두었습니다. 왜냐하면 더 속상하고 화나고 아쉬운 건 막내니까요. 그런 녀석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봤자 잔소리밖에 더 되겠습니까?


둘째와 식당으로 들어가 고기를 먹으며 애먼 둘째에게 하소연합니다.



아빠 : 진작에 속에 좀 해 놓으면 얼마나 좋아. 정신없이 놀다가 꼭 시간이 다 되어서 허둥지둥 숙제를 해야 되나? 안 그래? 

둘째 : 그... 렇.... 죠....

아빠 : 너는 안 그러지?

둘째 : 네에?.... 고기가 맛있네요



둘째도 지금 막내와 별 다를 게 없는 상황인가 봅니다. 밥상 앞에서 괜한 소리를 한 것 같아 미안해집니다. 사과의 의미로 고기를 둘째 그릇에 살포시 놓아줍니다.


그리고 막내를 위해 3인분 포장을 했습니다. 집에 가서 막내 먹여야겠습니다. 아빠보다 더 속상할 막내를 위해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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