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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성철 Jan 02. 2019

실수해도 된단다.

잘하지 않아도 괜찮아

연말이 되면 저에게는 가슴 아픈 기억이 하나 있습니다. 10여 년이 흐렀음에도 생생하게 자립잡고 있습니다.

20대 초반부터 친형처럼 따르는 선배가 있습니다. 형이 없는 저에게 선배는 친형과 같은 존재였습니다.

선배에게는 아들과 딸이 각각 한 명씩 있었습니다. 아들과 딸 모두 참 착하고 바른 아이들이었습니다. 밝고 긍정적이었으며 공부도 곧 잘 했습니다.


늘 무심한 형님이었지만 아들과 딸을 향한 마음은 손발이 오그라들 정도였습니다. 되도록이면 일찍 귀가를 해서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려고 하셨고, 그 좋아하던 술도 아이들에게 본이 죄지 않는다고 끊으셨습니다.

그 정도로 아이들은 형님에게 있어 인생 전부였습니다. 아이들도 그런 형님의 마음을 알았는지 큰 문제일으키지 않고 학교생활을 잘했고, 사춘기도 무난하게 넘겼습니다.


그중 아들은 저를 많이 따랐습니다. 삼촌이라고 부르며 이것저것 질문도 많이 하고, 힘든 일이 있으면 상담도 했습니다. 사람 좋아하고 공부도 꽤 잘하고, 항상 밝고 건강한 아이였습니다. 학교에서 간부도 할 정도로 리더쉽도 좋았습니다.

꿈은 과학자였습니다. 카이스트를 가서 좋아하는 것을 만들고 싶어 했습니다. 성적도 카이스트를 갈 정도는 되었습니다.


그렇게 고3이 되었습니다. 고 3이 되어서도 힘든 내색하지 않고 묵묵히 고 3생활을 이어나갔습니다.  가끔은 저에게 전화를 해서 안부도 전했습니다. 어느 날인가 형님 집에 갈 일이 있어 잠시 들렸는데 아이가 있었습니다. 잠깐 아이 방에 들어가서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공부는 잘되니?’

‘네에. 그럭저럭 이요’

‘그럭저럭? 말이 뭐 그래?’

‘잘된다는 거지요 하하’

‘자식이 싱겁기는? 힘들지는 않아?’

‘음.... 좀 힘들긴 한데. 뭐 참을 만해요’

‘그래? 힘든 거 자꾸 참고 그러면 안 좋은데. 뭐가 제일 힘들어?’

‘음.... 삼촌. 나 사실은 조금 무서워요’

‘무서워? 뭐가?’

‘음.... 그냥요.... 내가 이렇게 하다가 실수할 수도 있고 잘 못 될 수도 있잖아요.... 그러면 다시 제가 일어설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있어요’

'그래? 이제 수능이 가까워져셔 그런가?'

'그럴 수도 있구요..... 근데 자꾸.... 실망시키면 어쩌나 하는 생각도 들고....'

‘많이 부담되나보네. 힘내! 지금까지 잘해 왔잖아.  그리고 너는 잘 할 거야! 그니까 기운내!'

‘네에! 고마워요!’


간단한 대화를 마치고 다시 거실로 나왔습니다. 소파에 앉은 선배에게 물었습니다.


‘00이는 공부 잘된데요?’

‘그렇지 뭐. 워낙 혼자서도 잘하니’

‘그래요? 그래도 이야기를 한 번 해보지?’

‘왜? 뭐라 그래?’

‘그건 아니고....수능도 가까워 지니까 아무래도 불안하지않겠어요? 그러니까 이야기를 한 번 해보면 좋을 것 같아서’

‘잘 하고 있는데 괜스레 들쑤셔서 뭐하려고. 지금처럼만 하면 되지 뭐! ’


정말 그런 줄 알았습니다. 아버지인 선배도, 그리고 저도 말입니다. 그 해 수능을 치고 저녁에 같이 식사를 했습니다. 오가는 대화는 ‘시험 치느라 수고했다라’는 말과 ‘우리는 너를 믿는다’가 대부분의 대화였던 것 같습니다. 평소처럼 분위기는 좋았습니다.

그리고 며칠 후 전화가 한 통 왔습니다. 선배였습니다. 울먹이며, 흐느끼며 힘들게 내뱉은 말은 저를 아연 질색하게 만들었습니다.


‘00 이가.... 00 이가..... 00 이가......’

‘왜 그래요? 00 이가 왜요?’

‘00 이가.....’

‘형! 00 이가 뭐. 왜 그래? 똑바로 이야기를 해봐’

‘00 이가...... 죽.......었.......다. 00 이가......’

‘그게 무슨 말이야? 누가 죽어?’


미친 듯이 차를 몰아 병원으로 달려갔습니다. 선배와 형수는 넋이 나가 있고, 중앙에 00 이가 사진 속에서 활짝 웃고 있었습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씩씩하게 웃고 있던 아이가 싸늘한 시신으로 누워 있는 게 믿기지가 않았습니다.

아침을 먹고 어느 날처럼 ‘다녀오겠습니다’하고 집을 나섰던 아이가 30분 뒤에 아파트 화단에서 시신으로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15층에서 스스로 뛰어내렸다고 합니다. 도무지 믿기지를 않았습니다. 뛰어내릴 일이 없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왜 거기에 있냐고 빨리 일어나라고 고함을 쳐도 상황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정신 나간 놈처럼 장례를 치렀습니다. 화장을 하고 강에 뿌릴 때 다시 한번 오열을 했습니다. 그렇게 밝았고, 목표가 뚜렷했었는데...... 왜 스스로.... 도무지 이해가 되지를 않았습니다.


장례를 치르고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뒤 선배를 만났습니다.  자책하듯이 저에게 말을 했습니다.


‘그냥... 그냥.... 좀 못해도 된다고, 성적 떨어져도 된다고, 그렇게 착하지 않아도 된다고 이야기를 해줄 걸...... 늘 잘한다고, 믿는다고만 했으니..... 얼마나 답답하고 부담이었을까?.....’


잘 마시지도 못하는 술을 털어놓고는 넋두리를 합니다.


‘못해도 된다고, 그렇게 잘할 필요가 없다고.... 그래도 된다고 해줬어야 하는데.... 아이고......’


벌써 그 아이가 스스로 떠난 지 10여 년의 시간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그 아이가 있는 이 나라에서는 도무지 살 수 없다고 먼 나라로 가버린 선배. 아직도 형수님은 그 아이 생일에 차마 먹지도 못할 미역국을 끓인다고 합니다. 그러고는 눈물로 그 하루를 보낸다고 합니다.


예전 스웨덴을 방문했을 때입니다. 스웨덴의 교육청과 학교들을 탐방하면서 놀라웠던 것이 있습니다. 학원이 하나도 없고 고 3도 오후 4시만 되면 집으로 가고 대학까지 무료로 다닐 수 있는 나라, 대학 진학률이 40%남짓 밖에 안되지만 살아가는데 어려움이 전혀 없고, 고등학교만 나오더라도 사회에서 직업을 얻어 충분히 살아갈 수 있다는 것에 놀랐습니다.


그리고 더욱 놀랐던 것은 그들의 교육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학생들의 실수에 상당히 관대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이 추구하는 교육정신을 엿볼 수 있는 장면이었는데 상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학생들이 정규과정을 이탈하면 다시 정규 교육과정으로 돌아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게 되어 있는 우리나라 교육과 상당히 구별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나라는 청소년들이 한 번 실수를 하면 학교는 그것으로 학생의 권리를 박탈해 버리는 것이 당연하게 인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스웨덴은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할 수 있고 청소년 시기는 더욱더 그럴 가능성이 높다'라는 인식 속에서 실수를 하더라도 정규 교육과정 안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시스템을 만들어 놨습니다.

사실 청소년 시기는 다양한 실수와 실패를 통해 많은 것을 배우고 경험합니다.  그래서 실수나 실패를 두려워해서는 안 되는 시기입니다. 그런데 우리 교육은 실수를 용납하지 않습니다.


용납하지 않으니 학생들은 실수를 하지 않으려고 하고, 실수를 하지 않으려고 하니 새로운 것에는 도전하지 않고, 새로운 것에 도전하지 않으니, 발전이 없고 발전이 없으니 성장이나 변화가 없습니다. 공부를 잘해도 언제 떨어질지 모른다는 생각에서 늘 불안해합니다.


우리는 실수로 혹은 잘못된 선택으로 정규 교육과정을 벗어난 아이들을 낙오자 문제아로 부르고 있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흔히 낙오자라 부르는 그들을 위한 교육이 필요해 보입니다.  손가락질하고 질타할 것이 아니라 '실수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희망'을 알려줘야 합니다.


먼저 떠나보낸 녀석에게 제가 아직까지 후회하고 반성하는 것은 ‘실수해도, 실패해도 너의 가치는 변하지 않는다는 것과 잘하지 않아도 좀 못해도 괜찮다’라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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