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루만져주기
저희 집은 3대가 시골에서 살았던 평범한 가정이었습니다. 아버지는 3대 독자이셨고 저는 그런 아버지의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많은 사랑을 받은 것 같습니다. 제 밑으로 두 명의 동생들이 있었는데 동생들이 너무 많이 부러워할 만큼 사랑을 받고 자랐습니다. 특히 할머니의 사랑은 특별났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직장문제로 부모님께서 분가를 결정하셨습니다. 아마 제가 초등학교 4학년 때였을 겁니다. 할머니께서는 당연히 반대를 하셨습니다.
17살에 시집오셔서 21살에 혼자되어 오직 아버지만을 보고 사셨는데 그런 아버지가 분가를 한다고 하니 할머니 입장에서는 용납되지 않으셨을 겁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끝내 분가를 결정하셨고, 할머니께서는 저를 할머니에게 두는 조건으로 분가를 허락하셨습니다.
부모님의 분가와 함께 저는 할머니와 같이 살게 되었습니다. 물론 저의 뜻이나 생각과는 전혀 상관없이 말입니다.
그때부터 저는 부모님 특히 어머니에게 버림받았다는 생각과 나를 보내지 않은 할머니에 대한 미움으로 꽤 많은 방황을 했습니다.
할머니는 그런 저의 마음을 아시는지 저에게 지극 정성으로 최선을 다하셨습니다. 그러나 할머니의 사랑이 아무리 지극하다고 한들 엄마의 사랑에 비견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나를 버린 엄마가 미웠고, 나를 곁에 둔 할머니가 싫었고, 내 생각을 물어보지도 않고 결정해 버린 아버지가 원망스러웠습니다.
부모님께서 분가를 하시던 날 계속해서 저를 보시는 어머니의 눈을 애써 외면을 했습니다. 한참을 내 손을 잡고 놓지 않으시던 어머니의 손을 먼저 뿌리쳤습니다. 고개를 들지 못했습니다.
흐르는 눈물을 보이기 싫었습니다. 손도 흔들지 않았습니다. 차 소리가 멀어져 내 귀에서 사라질 때 비로소 눈을 들어 봤습니다.
이미 떠나고 없는 그 길을 한참이나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다시는 엄마를 ‘보지 않겠다’, ‘용서 히지 않겠다’라고 다짐을 했습니다.
그때는 몰랐습니다. 내가 힘들고 아팠던 것보다 더 나를 놓고 가시는 어머니의 아팠을 가슴을.......
부모님께서 분가를 하시고 홀로 할머니와 남은 저에게 끔찍하게 싫은 기억이 있습니다. 친구들과 신나게 놀다가 해가 어스름하게 넘어갈 때쯤이면 친구들은 엄마들의 ‘밥 먹으러와’라는 소리를 듣고 하나둘씩 집으로 돌아갑니다.
그렇게 하나둘 떠나가면 골목은 어느새 저 혼자 남습니다. 뭔가가 모르게 휑한 것이 싫었습니다. 나도 할머니가 아닌 엄마가 데리러 왔으면 좋으련만..... 그렇지 못했습니다.
어떤 날은 나도 모르는 눈물 한 방울이 얼굴에 무심히 ‘툭’하고 떨어질 때도 있었습니다. 아무렇지 않은 듯 닦아 냈지만 자꾸만 흘러내리는 눈물은 어느새 제 얼굴을 가득 적셔버렸습니다.
왜 눈물이 흘렀는지는 모릅니다. 그냥 흘러내립니다. 가슴이 먹먹하고, 무언가 채워지지 않는 것에 서러웠나 봅니다.
가슴을 툭툭 치니 눈물샘이 터져 버립니다. 소리를 내어 울고 싶지만 그러지를 못합니다. 그냥 속으로 울음을 삼켜 냅니다.
눈물은 하염없이 흘러내립니다. 죽을 것 같습니다. 숨을 쉬지 못해 담벼락에 털썩 주저앉아 하늘을 보며 눈물을 애써 삼켜 봅니다. 그때는 몰랐습니다. 그것이 지독한 ‘외로움’이었다는 것을....
동네 친구들이 떠난 골목길에서 한참을 그렇게 멍하게 있다가 터벅터벅 집으로 갑니다. 친구들은 엄마의 손을 잡고 걸어가던 그 골목길을 저는 혼자서 걸어갑니다.
그림자가 그렇게 말없이 따라오는 그 골목길을 느릿느릿 걸어갑니다. 대문을 엽니다. 혹시나 나도 모르게 엄마가 와 있지는 않을까 하는 기대감은 금방 사라집니다.
기대했던 엄마의 자리에는 머리가 하얗게 새신 할머니가 계십니다. 배고프겠다며 얼른 씻고 밥 먹으라는 할머니의 소리를 뒤로 하고 그냥 제 방으로 들어가 버립니다. 그리고 한 장 남은 엄마의 사진을 보며, 엄마가 남기고 간 엄마 냄새가 남아 있는 옷을 붙잡고 한참을 울었습니다.
그냥 보고 싶고, 안기고 싶었나 봅니다. 초등학교 4학년... 한창 엄마의 사랑이 필요했고, 엄마가 보고 싶었던 저는 그렇게 사진 한 장 부여안고 울다가 지쳐 잠이 듭니다.
아침에 눈을 떠 일어나니 언제 차렸는지 밥상 두 개가 제 머리맡에 놓여 있습니다. 하나는 식어버린 밥상이고 하나는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따뜻한 밥상입니다. 아마도 할머니께서 자고 있는 손자가 배가 고파 새벽에라도 일어나면 먹으라고 차려 놓으신 것 같습니다.
몰랐습니다. 할머니도 나만큼 그 저녁 울고 계셨음을요. 손자가 엄마 사진 한 장을 부여잡고 그렇게 울다가 지쳐 잠든 모습을 얼마나 애잔하게 바라보고 계셨을지를.....
대학원에서 상담을 전공하며 참가한 집단 상담에서 어릴 적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먹먹해오는 가슴을 꾹 누르고 담담히 풀어냈습니다. 제 이야기가 끝날 때쯤 저의 이야기를 들은 집단원들의 피드백이 쏟아졌습니다.
‘어머니도 많이 힘드셨겠네요. 이해하시고 용서하세요’
‘많이 힘드셨겠네요. 그래도 부모님들도 많이 힘드셨을 겁니다. 어쩌면 부모님이 더 아프고 상처가 많을 것 같아요’
‘부모님께 사과를 받으세요. 그리고 용서하세요’
‘부모가 되어보니 부모님 마음이 이해가 되더라고요. 선생님께서도 부모가 되면 이해하실 수 있을 겁니다’
‘이제는 부모님을 용서하시고 편안해졌으면 좋겠습니다’
사실 저는 어린 시절의 아픈 기억들에 대해 부모님께 사과를 받거나, 용서를 하거나하는 등의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따지고 보면 부모님께서 저에게 사과할 일도, 제가 부모님을 용서할 일도 아닙니다. 당시 부모님께서 당신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들을 선택하신 것이고, 그 선택이 저에게 상처가 되었을 뿐이지 어느 누구의 잘못이 아닙니다.
그러니 당시 집단원들이 저에게 했던 사과를 받으라니, 용서를 하라느니, 부모님을 위로하라는 말들은 저에게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 이야기들이었습니다.
사실 저는 부모님께 가장 듣고 싶었던 것은 사과나 당시 상황에 대한 변명이 아니라 그저 ‘힘들었구나’, ‘많이 아팠구나’하면서 제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이면 충분했습니다.
상처가 난 사람을 보며 상처의 이유를 묻고, 조심하라는 충고를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전에 해야 될 일은 상처에 약을 발라 주는 것이고, 아프지 않냐고, 많이 아팠겠다고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것입니다.
자녀가 마음에 상처가 났다면 이유를 따져 묻지 마시고, 해결책을 제시하지도 마시고 그저 상처 나서 힘든 마음, 아픈 마음을 어루 만져 주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것만으로 충분합니다. 상처는 그렇게 다루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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