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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성철 Dec 21. 2018

미워하지만 않으면 됩니까?

사랑한다는 것



신학교를 다닐 때였습니다. 거리가 멀어 학교 근처에서 자치를 했습니다. 제가 사는 집은 세 개의 독립된 방으로 이루어져 있었고, 같은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이 모여 살았습니다. 제가 사는 곳이 제일 중간 방 그 옆으로 남자 선배 한 명과 그 옆방에는 자매 두 명이 살고 있었습니다. 벽 하나를 두고 있는 사이라 친하게 지냈습니다. 하루에 두 끼 이상은 늘 같이 먹곤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못 보던 형제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선배 방에서 나오길래, 친척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형제의 생김새가 여타 다른 사람과는 사뭇 달랐습니다. 머리는 바가지 머리에다가, 옷은 꼬질 꼬질 하고 말은 어눌해서 무슨 말 하는지 모르겠고, 손은 때가 끼어 갈라져 피가 나고(그때가 겨울이라) 키는 작았고 입을 벌리면 고르지 못한 이빨 사이로 침이 흘러내리기 일쑤였습니다.


나이는 저 보다 좀 더 많아 보였습니다. 여하튼 제 비위를 건드리기에 충분했습니다. ‘선배에게 저런 친척도 있었구나’하고 인사를 했는데 별로 친해지고 싶은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되도록 그 사람이랑 부딪히지 않으려고 노력을 했습니다.

그러나 저의 노력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부딪히지 않으려고 해도 같이 밥을 먹어야 했기 때문에 제 의지와 상관없이 만나야 했습니다. 한 사람의 등장으로 즐거웠던 식사시간이 저에게는 지옥 같은 시간으로 변해 갔습니다.


입 안 가득 밥을 넣고 쉴 새 없이 말을 하는 바람에 입에 있던 밥알들이 이리 튀고 저리 튀었고, 그 사람은 그런 것에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웃고 떠들어댔습니다. 정말 곤욕스러웠습니다. 밥숟가락을 놓자니 다른 사람들에게 미안하고, 그렇다고 먹자니 비위가 안 따라주고 그렇게 며칠을 보냈습니다.

점점 선배가 원망스러워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불만은 저만 가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옆의 자매들 또한 무척이나 곤욕스러워했습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 형제가 자매들 방을 노크 없이 불쑥불쑥 열고 들어와 곤란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녔다고 했습니다.


안 되겠다 싶어 선배에게 항의를 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항의를 하러 갔다가 놀라운 이야기만 듣고 다시 돌아와야만 했습니다. 친척인 줄 알았던 사람은 선배의 친척도 아니고 아는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신학교에서 전도를 하고 있던 사람을 마땅히 갈 곳이 없다 길래 같이 데리고 있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얼마나 놀랍고 황당했는지 모릅니다. 친척도 아니고 아는 사이도 아닌데, 그렇다고 정상적인 사람도 아닌 사람을 데리고 같이 산다는 것이 여간 놀라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선배는 당분간이라도 같이 살 수 있도록 부탁을 했습니다. 일단 내키지는 않았지만 저와 자매들은 승낙을 했습니다. 하지만 그 형제의 행패(?)는 날로 심해져 갔습니다. 한 번은 자매들이 옷 갈아입는데 문을 열고는 도망을 가기도 했고 제 방에 들어와 이것저것 뒤져서 엉망으로 만들어 놓기도 했습니다.


정말 화가 났지만 선배를 봐서 참기로 했습니다. 자매들도 매일매일 울면서 제게 와서는 하소연을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우리 미워하지 말고 기도합시다’라는 말만 했습니다.

하지만 미워하지 않는다고 그 형제랑 사이가 좋아지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새벽에 잠이 깨서 밖에 나갔는데 옆방 자매 둘이 새벽기도를 갔다가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저를 부끄럽게 만드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전도사님, 우리 며칠 전부터 새벽기도 나가고 있어요. 가서 저 형제를 사랑할 수 있도록, 품을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있어요’    


새벽기도를 나가서 사랑하게 해달라고 기도를 한다라는 그녀들의 말을 듣고 잠시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았습니다.

초대 교회에 관한 가장 인상적인 말 중 하나는 아리스티 테스라는 사람의 말입니다. 그는 하드리안 황제가 크리스천이라는 이상한 사람들에 대해 알아보라고 보낸 정탐꾼이었습니다. 크리스천들의 행동을 본 아리스티 테네스는 보고서를 제출했습니다. 그의 말은 역사 속에서 사라지지 않고 지금도 메아리치고 있습니다.


                       ‘보십시오! 그들은 서로 사랑합니다’


이게 초대 교회의 모습이었습니다. 서로 사랑하는 모습. 어느 누가 보아도 그 사랑이 드러나는 모습. 어느 누군가가 그들을 감시하기 위해서 몇 달간 만 그들과 같이 하면 그들이 정말로 서로 사랑을 나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이상한 집단. 그것이 바로 교회라는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만약 지금 어느 누군가가 우리들의 교회에 정탐꾼을 보내서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조사를 한다면 과연 우리들의 교회는 어떤 평가를 받을까요? 우리는 가끔 이렇게 말을 합니다.


‘나는 저 사람을 미워하지 않아요’


그리고는 그것으로 자신의 의무를 단 한 것처럼 말을 합니다. 제가 예전에 그랬습니다. 같이 살았던 그 형제를 미워하지 않는 것만으로 난 나의 의무를 다했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미워하지 않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미워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사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불행하지 않는 것이 곧 행복한 것이 아고, 가난하지 않은 것이 부자인 것이 아니 듯 미워하지 않는다고 의무를 다한 것이 아닙니다.


예전 한 형제를 사랑하기 위해서 차가운 새벽을 뚫고 기도하던 두 자매의 모습 속에서 저는 제가 해야 할 의무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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