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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직장인조커 Apr 24. 2020

사표 내는 날

오래된 시작

 숨이 막혔다. 차량 내비게이션 화면이 나오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스마트폰 내비게이션을 작동시키면 간단한 일인데 그땐 그런 생각을 할 겨를도 마음의 여유도 없었다. 그 날은 아침 7시에 화상회의가 있는 날이었다. 미리 가서 회의 준비를 해야 했는데 압박감이 묵직하게 밀려왔다. 가슴이 답답해지고 숨이 막혀오는 것 같았다. 발령을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았던 때라 가는 길을 제대로 알지 못했으며 시간도 촉박했다. 전에도 종종 내비게이션이 오작동되었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오랫동안 시동을 꺼놓거나 다음날이 되면 다시 정상 작동이 되었다. 하필 아침 회의를 가는 이 시점에 내비게이션이 고장났다는 불평보다 긴박한 상황 속에 처하자 당황해하는 내 모습에 순간적으로 혐오감이 느껴졌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기적적으로 내비게이션이 정상 작동이 되었다. 오류 상태가 된 다음 운행 중에 정상 작동이 된 적은 처음이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도 씁쓸한 생각도 들었다. 그 당시에는 내비게이션이 말썽을 피우지 않더라도 출근길은 항상 마음이 무겁고 두려움에 지배당했다. 사표를 내는 날 문득 그날의 기억이 생생히 떠올랐다.


 금융권에 다니면서 항상 실적에 관한 압박과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다. 사회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서인지 경험도 내공도 부족한 터라 이겨내고 견디는 방법을 알지 못했다. 처음에는 금요일이 오기만을 간절히 기다렸다면 어느 시기부터는 주말조차 즐겁지 못했다. 어차피 다시 월요일이 올 테니까 말이다. 매일 반복되는 출근길의 고통은 나의 자존감을 더더욱 떨어뜨렸다.


출근길은 항상 마음이 무겁고
두려움에 지배당했다.

"매일 소풍 가는 기분으로 출근을 해야 한다"


 회사에 다니며 내가 들었던 말 중에서 가장 현실감이 떨어지는 말이었다. '도대체 어떤 정신병에 걸리면 이 지옥 같은 곳을 소풍 가는 기분으로 출근할 수 있단 말인가'. 사회 초년생이었던 눈에 비치는 선배들의 모습에 비하면 내 자신이 한없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그들도 분명 나 같은 신입사원 시절이 있었을 테지만 내가 경력을 더 쌓은다고 한들 그들처럼 될 자신도 용기도 없었다. 그렇게 나는 회사에 사표를 냈다. 시간이 흐른 후 이직을 했지만 출근길이 고통스러운 건 마찬가지였다. 직장이라는 정글에서 실적 압박, 인간관계 등의 위험요소들은 혹독할 만큼 나를 괴롭혔다. 도대체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곰곰이 생각을 해봤다. '실적이 존재하는 회사에 다녀서 이런 불행이 생기는 거라면 실적 없는 곳을 다니면 과연 소풍 가는 기분으로 출근할 수 있는 희망이 보일까?' 3군데의 대기업을 경험하고 고작 내린 결론이었다. 그동안 내가 걸어왔던 길이 아닌 다른 분야에 도전하기에는 열정도 에너지도 바닥이 나버린 상태였다. 운이 좋게 새로운 분야에 취업한다고 한들 어제와 별반 다르지 않은 오늘과 내일이 있을 것이라는 불길한 확신이 들었다. 미 약해질 때로 약해져 버린 내 모습을 보며 절망감을 느꼈으며 그런 감정마저 지겨워질 때쯤 우연히 한 권의 책을 읽게 됐다. 책 쓰기에 관련된 책이다. 저자 또한 나처럼 직장생활을 해왔던 사람이었는데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이후 사표를 낸 이력이 신기하기도 하고 부럽기도 했다. 그 책을 읽으며 무엇보다 내게 힘을 주었던 것은 저자 또한 자살을 생각할 만큼 직장생활이 힘들었으며 그걸 극복하는데 책 쓰기가 큰 힘이 되었다는 것이었다. 


 언젠가 성공을 하면 책을 쓰고 싶었던 나는 미래가 아닌 지금 당장 시작하자는 결단을 내렸다. 또한 새로운 일에 시작할 용기도 의욕도 없던 나는 책 쓰기라는 목표를 세우고 도전해야겠다는 강한 집념이 생겼다. 학창 시절 금융권 취업이라는 꿈이 생긴 이후 오랜만에 생긴 꿈이었다. 책 쓰기 강에 참석을 해보고 이미 책을 출판한 작가들을 만나 조언도 구했다. 책 쓰기 전용 노트북을 구매하고 쓰고자 하는 주제와 관련된 책을 수집했다. 넉넉하진 않았지만 모아둔 돈과 퇴직금으로 당분간 생활은 가능했다. 첫 책의 주제는 취업과 일로 정했다. 보통 스펙을 지닌 평범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성공적인 취업을 위한 내용을 담는 것이 목표였다. 내가 겪은 시행착오와 교훈을 담아 엮으면 괜찮은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푼 기대와 설렘을 가지고 책 쓰기를 시작했지만 곧바로 난관에 봉착했다. 일 초고를 쓸만한 장소를 찾지 못했다. 도서관에 쓰려고 하니 여러모로 제약이 많았다. 집에서 쓰려고 하니 두 돌도 안된 아들 덕분에 집중도 안되었다. 처음 책을 쓰는 것 자체도 힘든 일인데 제대로 된 장소도 찾지 못하는 나를 보며 그냥 포기하고 취업이나 하자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부푼 기대와 설렘을 가지고
책 쓰기를 시작했지만 곧바로
난관에 봉착했다

 그동안 여러 가지 꿈이 생기고 잠깐 동기부여가 되었지만 자주 포기를 하곤 했다. 이번만큼은 결코 포기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늦기 전에 글을 쓰기 위한 최적의 장소를 찾아야 했다. 차를 타고 시내부터 교외까지 카페, 공터 등 내게 맞는 최적의 장소를 분석하고 물색했다. 그 결과 주차, 식사, 풍경 등 나만의 글쓰기 동굴을 찾아냈다. 매일 아침 글을 쓰러 가는 출근길에 비로소 소풍 가는 기분으로 출근하는 것이 무엇인지 실감할 수 있었다. 글을 쓰다가 막히면 차에 들어가 악을 지르기도 해보고 노래를 흥얼거리며 머리를 식혔다. 매일 꿈을 완성해가는 시간이 흐를수록 내 꿈 통장의 잔고는 커져가며 만기가 점점 다가온다는 희망을 가졌다.


 초고를 완성할 수 있을지, 원고를 받아줄 출판사가 있을지 등의 걱정, 근심 따위는 귀가 때 아장아장 걸어오며 내 다리를 토닥여 주는 아들의 손길로 매일 떨쳐낸다. 어린 아들의 해맑은 얼굴을 마주하다 보면 내 마음속에 생겼던 거대한 소용돌이 같은 공포는 어느덧 찻잔 속의 태풍이 되어버린다. 내겐 천금보다 귀한 청춘이 있다. 오늘도 나는 청춘의 봄을 가져다 줄 소망이 담긴 꿈과 함께 소풍 가는 기분으로 출근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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