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학번인 나는 PC방 세대였다. 게임 중 스타크래프트 (이하 스타) 매력에 빠져 헤어 나오질 못했다. 스타를 즐기느라 대학 등급이 낮아졌다는핑계를 대본 적은 없지만 스타 실력으로 대학을 가고 취업도 되었으면 하는 생각을 자주 하곤 했다. 학창 시절 스타 실력으로 전교 1등을 했을 때, 첫 대회에서 우승했을 때 등 남들은 알아주지도 않지만 혼자 자부심을 느끼고 뿌듯해하기도 했다.테란의 황제라 불리는 임요환 선수의 팬이었으며 다모임 아이디로 덕고 임요환을 썼다. 스타크래프트 아이디로는 조커를 썼으며 지금도 메일 및 아이디에 반드시 조커를 넣는다.스타는중3 때부터 군입대 전까지 5년이 넘는 기간 동안 밥 먹고 스타만 했으며 30살이 되기 전까지 15년간 간간히 즐겼던 친구 같은 존재이다. 얼마나 자소서에 스타 얘기를 구구절절했으면 면접을 볼 때마다 질문을 받았다. 특별히 이상형은 없었지만 스타크래프트를 즐기는 이성을 만나보고 싶다는 바람도 있었다(물론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이제는 스타를 즐겼던 아련한 추억만 존재하지만..
얼마 전 유튜브의 신기한 알고리즘은 나를 스타크래프트 오케스트라로 이끌었다. 다시 들으니 가슴이 뭉클해졌다. 수많은 댓글들을 읽으면서 정신없이 좋아요를 누르고 함께 스타를 즐겼던 사람들에게 링크를 공유하는 내 모습이 보였다.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그 음악을 듣고 있다.요즘 참 삶이 퍽퍽하고 고난 아닌 고난의 연속인데 잠시나마 잊고 다시 열정 스타맨으로 돌아간 나를 발견했다. 몇 년 만에 스타를 노트북에 다시 설치하고 꼭 초보만 오라는 방을 만들었다. 상대방과 한 시간이 넘게 인생게임을 펼쳤다. 30대 후반에 들어선 지금 실력은 사라졌을지 몰라도 힘겹게 상대방의 gg를 받아내고 나니 뿌듯함과 보람을 느꼈다. 그와 함께무언가 씁쓸함도..
마지막 게임을 승리로 장식한 후 노트북에 있는 스타를 삭제했다. 지금은 마음껏 스타를 즐기기에는 해야 할 숙제 아닌 숙제들이 너무나 쌓여있는 현실에 씁쓸함을 느꼈던 것 같다. 내 작은 소망 중 하나는 하루빨리 경제적인 독립을 이루어 함께 스타를 즐겼던 사람들과 밤새도록 하는 날이 왔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내게 가슴이 뜨겁고 뭉클함을 줄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는 걸 다시 한번 새기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