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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직장인조커 May 27. 2020

이상형과 스타크래프트

스타크래프트 오케스트라

 03학번인 나는 PC방 세대였다. 게임 중 스타크래프트 (이하 스타) 매력에 빠져 헤어 나오질 못했다. 스타를 즐기느라 대학 등급이 낮아졌다는 핑계를 본 적은 없지만 스타 실력으로 대학을 가고 취업도 되었으면 하는 생각을 자주 하곤 했다. 학창 시절 스타 실력으로 전교 1등을 했을 때, 첫 대회에서 우승했을 때 등 남들은 알아주지도 않지만 혼자 자부심을 느끼고 뿌듯해하기도 했다. 테란의 황제라 불리는 임요환 선수의 팬이었으며 다모임 아이디로 덕고 임요환을 썼다. 스타크래프트 아이디로는 조커를 썼으며 지금도 메일 및 아이디에 반드시 조커를 넣는다. 스타는 중3 때부터 군입대 전까지 5년이 넘는 기간 동안 밥 먹고 스타만 했으며 30살이 되기 전까지 15년간 간간히 즐겼던 친구 같은 존재이다. 얼마나 자소서에 스타 얘기를 구구절절했으면 면접을 볼 때마다 질문을 받았다. 특별히 이상형은 없었지만 스타크래프트를 즐기는 이성을 만나보고 싶다는 바람도 있었다(물론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이제는 스타를 즐겼던 아련한 추억만 존재하지만..

 얼마 전 유튜브의 신기한 알고리즘은 나를 스타크래프트 오케스트라로 이끌었다. 다시 들으니 가슴이 뭉클해졌다. 수많은 댓글들을 읽으면서 정신없이 좋아요를 누르고 함께 스타를 즐겼던 사람들에게 링크를 공유하는 내 모습이 보였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그 음악을 듣고 있다. 요즘 참 삶이 퍽퍽하고 고난 아닌 고난의 연속인데 잠시나마 잊고 다시 열정 스타맨으로 돌아간 나를 발견했다. 몇 년 만에 스타를 노트북에 다시 설치하고 꼭 초보만 오라는 방을 만들었다. 상대방과 한 시간이 넘게 인생게임을 펼쳤다. 30대 후반에 들어선 지금 실력은 사라졌을지 몰라도 힘겹게 상대방의 gg를 받아내고 나니 뿌듯함과 보람을 느꼈다. 그와 함께 무언가 씁쓸함도..

 마지막 게임을 승리로 장식한 후 노트북에 있는 스타를 삭제했다. 지금은 마음껏 스타를 즐기기에는 해야 할 숙제 아닌 숙제들이 너무나 쌓여있는 현실에 씁쓸함을 느꼈던 것 같다. 내 작은 소망 중 하나는 하루빨리 경제적인 독립을 이루어 함께 스타를 즐겼던 사람들과 밤새도록 하는 날이 왔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내게 가슴이 뜨겁고 뭉클함을 줄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는 걸 다시 한번 새기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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